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 애플과 자율주행 전기차 생산을 위한 협력 방안을 협의 중인 사실이 8일 확인됐다. 이 같은 소식에 이날 현대차 주가는 20% 가까이 급등했다. 그러나 양사의 협의는 아직 초기 단계로, 두 회사가 이른바 ‘애플카’ 양산을 위해 실제 손을 잡는 데까지는 여러 난관을 넘어야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는 이날 공시를 통해 “다수 기업에서 자율주행 전기차 관련 공동 개발 협력을 요청받고 있으나, 초기 단계로 결정된 바 없다”고 공시했다. 이날 증시에서 ‘애플이 2027년 애플카 출시를 위해 현대차그룹에 협력을 제안해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가가 폭등한 데 따른 것이다.

애플 전문 매체 맥루머스에서 예상한 애플 자율주행 전기차‘애플카’의 상상도. /맥루머스

업계에 따르면, 애플카 생산을 위한 협력은 애플이 먼저 현대차에 제안했다. 다만 애플은 현대차뿐만 아니라 글로벌 자동차 및 전장 업체 다수에 협력 제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은 2014년부터 ‘프로젝트 타이탄’이라는 이름으로 자율주행 전기차 개발을 시작했다. 초기엔 자율주행 시스템 개발에 집중했으나 2019년 테슬라 부사장 출신을 임원으로 영입하면서 완성차를 목표로 한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에는 ‘첫 애플카가 이르면 2024년 출시될 수 있다’는 현지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애플의 전기차·배터리 개발 능력이 초기 단계여서 실제 양산 시점은 훨씬 늦춰질 것이란 반론이 만만찮다.

애플이 세계 5위 완성차 업체인 현대차와 손을 잡는다면 애플카 개발과 양산 논의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애플이 복수 완성차 업체에 협력을 제안하는 건 미국 전기차 브랜드 테슬라의 전철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소프트웨어 업체로 출발해 자체 제작에 나선 테슬라는 양산 초기 차량 완성도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반면 현대차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 판매 4위에다 최근 자체 개발한 전기차 플랫폼도 발표할 만큼 양산 능력과 기술력을 고루 갖췄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중국·러시아 등 세계 7국에 완성차 공장이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애플로서는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개발 및 수급도 쉬워진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애플이 현대차를 통하면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등 높은 품질의 배터리를 합리적인 조건에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차도 애플과 공동 개발이 이뤄진다면 테슬라에 비해 부족한 차량 운영체제(OS), 앱 콘텐츠 등 기술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애플카를 생산하며 전기차 분야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업계에서는 애플이 애플카의 개발과 디자인은 자신들이 독점하고 생산만 폭스콘에 위탁하는 아이폰 모델을 적용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굴러다니는 스마트폰이자 반도체·센서·커넥티드 등 IT(정보기술)의 총아로 꼽히는 자율주행차 노하우를 타사와 공유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현대차는 그런 방식의 협력 모델은 수용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용권 신영증권 연구원은 “자동차를 위탁 생산하는 사업의 수익성은 2~3%로 극히 낮다”며 “현대차 정도 규모의 회사에 위탁 생산 이미지는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현대차그룹 관련 주가가 일제히 올랐다. 현대차는 전날보다 19.42% 오른 24만6000원을 기록했고, 현대모비스(18.06%), 기아차(8.41%) 등 계열사도 덩달아 상승했다. 업계 관계자는 “양사의 협력 내용에 대해 알려진 게 거의 없는데도 단순 기대감만으로 주가가 폭등했다”며 “아직 성사 가능성도 미지수인 만큼 신중하게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