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 포스1′ 255, ‘덩크 로우’ 260, ‘이지 폼 러너’ 265 신어요. 발볼러인데 조던1 하이 사이즈 뭐 해야 될까요? 전문가 분들 부탁드릴게요” (나이키매니아)

온라인에서 운동화를 사려는 MZ세대의 최대 고민은 사이즈입니다. 신발은 같은 사이즈도 브랜드와 모델에 따라 길이, 너비, 모양이 조금씩 다릅니다. 착용감은 천차만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대면’으로 신발을 샀다가 환불·반품을 하는 수고를 감수하는 것보단, 매장 찾아 직접 신발을 신어보는 것을 선호합니다.

신발 사이즈 추천 앱 ‘펄핏’은 ‘신발은 온라인으로 사기 어렵다’라는 통념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펄핏은 ‘찰칵’ 한 번에 93%의 정확도로 발 사이즈를 측정하고, 8만개의 신발 데이터와 매칭해 모델과 사이즈를 추천합니다. 비용은 무료입니다. 앱은 출시 2년 반 만에 누적 가입자 수 60만명, 월 평균 방문자 수 12만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왜 온라인으로 딱 맞는 신발을 살 수 없을까?’라는 이선용(34) 대표의 물음이었습니다. 서울대를 나와 글로벌 컨설팅 회사를 다니던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동대문에서 신발을 구해 일일이 사이즈를 재고 다녔다고 합니다. ‘사장의맛’은 이 대표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이선용 대표가 본사 사무실에 보관된 신발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펄핏은 8만 개 넘는 신발 모델의 사이즈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모델별로 사이즈를 데이터화하기 위해 신발을 구해 일일이 길이, 너비 등을 잰다고 한다./박상훈 기자

◇일상적인 물음이 시작...60만 명 움직인 앱

신발은 온라인에서 사기 어렵습니다. 비대면으로 고객의 발에 맞는 신발을 추천해준다는 것은 수만 가지 발, 신발 사이즈의 데이터를 조합해 알맞은 ‘짝’을 찾아준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신발 사이즈 추천 서비스를 시작하게 됐나요?

“음식, 가구, 옷…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시대가 됐는데, 왜 유독 신발은 어려울까 생각했어요. 신발을 주문해서 신어보면 발 볼이 꽉 끼거나, 길이가 생각보다 긴 등 불편한 경우가 많아요. 반품하고 새로운 제품을 찾아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이상 똑같은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사람의 감(感)이 아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면 완벽한 핏(Perfect-Fit)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비대면’으로 발 사이즈를 정확히 잴 수 있나요?

“학습하는 AI 엔진이 있어서 가능해요. AI는 고객의 발 사진으로 사이즈를 측정하는데, 이때 걸리는 시간은 1분 미만, 측정 오차 범위는 1.4mm 이내예요. AI는 데이터가 쌓일수록 정확해져요. 2020년 첫 출시 때는 측정 정확도가 80%였는데, 현재는 93%까지 올라왔어요.

–사이즈를 기준으로 제품을 추천해주는 건가요?

“맞습니다. 데이터 베이스에 저장된 신발 모델 중에서 사이즈가 맞는 것을 추천해줘요. 현재 운동화와 여성 구두만 추천이 가능한데, 최근에 이용자가 늘면서 ‘카테고리를 늘려달라’, ‘스타일도 분석해달라’는 문의가 많아졌어요. 그래서 신발마다 ‘태그’를 달아서 스타일을 고려한 추천 서비스도 준비 중입니다.”

펄핏 앱에서 발 사이즈를 측정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화면. A4용지 위에 발을 올리고, 바지를 발목 위까지 올린 상태에서, 위에서 아래로 찍으면 된다./펄핏 앱 화면 캡처

–AI 엔진을 만들기 힘들었을 거 같아요.

“2018~2019년까지 만 2년을 쏟아부었어요. 사람 발은 길이, 너비, 모양이 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길이는 맞는데, 볼 너비가 좁다’는 등 불편을 느끼는 거죠. 이걸 해결하려면 AI가 다양한 데이터를 학습해야 하는데, 데이터를 모으고, AI의 러닝 기술을 연구하는 등 준비할 게 많았어요.”

–AI 기술이 핵심인 사업인데, 개발자들은 어떻게 구했어요?

“채용 공고를 올리고, 지인 소개도 받았어요. AI 엔진은 한 번 만들면 끝나는 게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계속 보완하는 후속 작업이 중요해요. 그래서 전 직원 35명 중 70% 정도가 개발자입니다. 모두 풀타임 근무에 직접 채용입니다.”

–2016년부터 사업을 했다고 들었는데, 그때는 뭘 했나요?

“여성 구두 전문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했어요. 목표는 같았어요. ‘온라인으로 신발을 살 수 있는 시대를 열자’. 고객이 쇼핑몰에 회원 가입을 할 때 발 사이즈 정보를 입력하게 했어요. 이걸 바탕으로 고객의 발 사이즈에 맞는 신발을 추천해주는 식이었어요. AI가 없어서 100% 수작업으로 했죠. 당시 저희 제품을 동대문에서 구해서 팔았는데, 일일이 사이즈를 재고, 고객의 사이즈와 비교해서 제품을 추천해줬어요.”

–소위 말하는 ‘노가다’였네요.

“당시 직원이 저를 포함해 3명이었는데, 사이즈 데이터를 정리한 모델만 1000개가 넘어요. 힘들었지만 그때 가능성을 봤어요. 데이터가 많을수록 더 많은 제품을 추천해줄 수 있고, 각 데이터를 학습해서 정확한 사이즈를 추천해줄 수 있는 AI가 있다면 사업을 키워나갈 수 있겠다 싶었던 거죠.”

/자료=펄핏

◇”더 늦으면 안 되겠다”...억대 연봉 화려한 커리어 멈춘 이유

이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직후 IBM 계열의 컨설팅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월급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취직 후 3년이 지나면서 창업을 꿈꿨다고 합니다. 중학생 때부터 사업가가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만든 무언가를 전 세계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사랑했으면 한다는 바람. “더 늦으면 안 되겠다”는 각오로 인생의 큰 전환기를 만듭니다.

–사업을 하고 싶어서 경영학과에 갔나요?

“아무래도 대학 전공 중에서는 가장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선택했어요.”

–서울대 갈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데.

“저는 사업을 하고 싶었지, 공부에는 크게 욕심이 없었어요. 근데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한국의 수능은 어느 나라의 입시 과정보다 경쟁이 치열하다. 여기서 살아남으면 세계 어디를 가도 못할 거 없다’고 했어요. 거기에 홀딱 넘어가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죽기 살기로 공부했고, 운 좋게 좋은 대학에 들어간 거죠.”

–경영학과라면, 창업 준비하는 선후배들이 많았을 거 같네요.

“의외로 그렇지 않았어요. 다들 행정고시, 사법고시 등 시험을 준비하는 분위기였어요.”

–중학교 때부터 꿈이었던 창업 대신 취업을 한 이유는 뭘까요.

“사회 경험을 해보고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조언이 많았어요. 컨설팅 회사에서 사업 보는 안목을 기르는 것도 좋아 보였어요. 글로벌 기업인 IBM 컨설팅에 입사해 하루 3시간 자면서 주 7일 일했어요. 2년 차쯤 되니까 일도 손에 익어서 회사에서 인정받고,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죠.”

–직장 생활이 재미있었는데 왜 그만뒀어요?

“정해진 대로 사는 것 같았어요. 서울대 졸업하고 취직해 높은 연봉을 받는 것. 이러다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걸 못할 거 같더라고요.”

–대학, 직장이 자기 사업에 도움이 됐나요?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고 투자해주지는 않아요. 문전박대(門前薄待) 많이 당했어요. 다만, 먼저 창업한 선배들을 찾아뵙고 배움을 청할 수 있는 건 큰 장점인 거 같아요. 컨설팅 회사에서 사업 보는 안목을 기르고, 다양한 인맥을 쌓은 것도 도움이 됐어요. 그러나 정답은 없어요. 있다면 ‘JUST DO IT’일 거 같네요. 사업은 좋은 아이템과 확신만 있다면 빨리 시작할수록 좋아요. 해보면서 공부를 더 할지, 사회 경험을 쌓을지 고민해도 늦지 않아요.”

이선용(34) 대표가 펄핏 앱 화면을 커다란 스크린에 띄워 보여주고 있다. 펄핏 앱은 발 사이즈에 맞는 운동화 추천앱으로, 2020년 출시 이후 2년 여만에 누적 가입자 수 60만 명을 돌파했다. /박상훈 기자

◇전 세계 사람들의 신발 선택 솔루션이 되는 날까지

펄핏의 사이즈 기반 신발 추천 서비스는 현재 자체 앱뿐만 아니라 사뿐, 프로스펙스, 슈마커 등 5개사의 신발 판매 웹사이트에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신발 주문 시대’를 꿈꾸는 펄핏은 지난 2020년 12월 25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지난 4월에는 40억원의 후속 투자를 받았습니다. 이 대표는 아직 멀었다고 말합니다. 펄핏의 목표는 전 세계 사람들의 신발 선택 솔루션이 되는 것입니다.

–펄핏은 이용이 무료던데, 수익 구조가 어떻게 되나요?

“펄핏의 수익은 크게 3가지입니다 앱에서 판매가 이뤄질 때 고객사로부터 받는 위탁 수수료, 광고 수익, B2B 솔루션 사용료입니다.

–현재 매출은 어느 정도예요?

“투자사와의 계약 조건상 밝힐 수 없습니다.”

–앞으로의 사업 계획은 뭔가요?

“B2B 솔루션을 늘릴 계획이에요. 현재 펄핏은 국내 5개 회사에 B2B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는데, 해외 이커머스 사이트까지 진출하는 게 목표입니다. 신발을 온라인으로 살 때 사이즈 때문에 골치 아픈 건 외국 소비자들도 마찬가지니까요.”

–사업 전망은 어떤가요?

“온라인으로 신발을 주문하는 한 사이즈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지 않아요. 운동화, 구두 등 일상화 뿐 아니라 골프화, 축구화, 농구화 등 운동 전용 신발은 소비자가 착용감에 더 민감하고, 선택이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발 사이즈뿐만 아니라 움직임까지 정교하게 데이터화해서 선택을 쉽게 만드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신발 사이즈 때문에 고민하는 모든 이들의 솔루션이 되고 싶어요.”

펄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