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한국 기능성 화장품 업체 기베스트는 지난 3일 일본 홈쇼핑 채널에서 마스크 팩 제품을 소개했다. 1시간 방송 예정이었지만 40분 만에 완판됐다. 13일엔 일본 지상파인 TV아사히 홈쇼핑에서 15분 동안 마스크 팩을 소개했는데 이틀 동안 6000만엔(약 6억1000만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기베스트는 2018년에도 일본 시장 문을 두드렸지만, 이듬해 7월 일본의 반도체 수출 규제와 한국 내 반일(反日) 정서 탓에 1년 만에 사업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최근 일본 내에서 식품·화장품 등 한국산 제품이 큰 인기를 끌자 다시 진출을 시도해 성과를 거둔 것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 강제 징용 배상 문제 등을 두고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최악이었던 한일 관계가 다시 시작된 한류 열풍, 윤석열 대통령 당선 등으로 빠르게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기업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식품·화장품 등 원래부터 인기 있던 품목은 물론, 제조업체들까지 일본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오는 7월 초 서울에서 3년 만에 ‘한일 재계 회의’를 열고 한일 관계 정상화를 지원할 계획이다.

◇얼어붙은 한일 관계, 다시 풀리나

현대자동차는 판매 부진으로 철수했던 일본 시장에 다시 진출한다. 13년 만이다. 전기차 아이오닉5와 수소차 넥쏘를 우선 출시하고, 오는 5월부터 온라인 주문 접수를 시작한다. 내연기관차는 도요타 등 일본 전통 자동차 업체들에 밀렸지만, 상대적으로 일본 기업이 뒤처진 전기차 부문에서는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대차는 일본 자동차 전문지와 유튜버 등을 대상으로 시승 행사를 여는 등 사전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뭘 갖다 놔도 잘 팔리는 수준”이라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일본에서 20년 이상 화장품·식품을 판매해 온 한 무역업체 대표는 “한국에서 유튜버들이 리뷰한 제품이면 일본 업체들이 판매할 수 있는지 먼저 연락해 온다”며 “엄청나게 매운 것으로 유명한 ‘불마왕라면’ 같은 것도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니 일본 업체들이 물어오더라”고 했다. 샴푸·보디워시 등을 판매하는 태남생활건강 관계자는 “가격이 싼 목욕·샤워용품은 일본에선 매력이 떨어진다는 게 정설이었는데, 최근엔 이 제품들도 인기가 높다”며 “2월부터 일본 판매를 시작했는데 한 달 동안 매출 1억원을 올렸고, 올해 10억원 정도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21일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2018년 305억달러(약 37조원)였던 대일 수출은 2020년 251억달러까지 급감했다가 지난해 301억달러를 기록했다. 대일 수입도 2018년 546억달러에서 2019년 475억달러로 감소한 뒤 작년엔 2018년 수준을 회복했다. 장상식 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자동차, 석유화학 중간제품, 철강, 반도체 등을 중심으로 교역이 회복됐다”며 “다만 2019년 문제가 됐던 반도체 제조 장비, 정밀화학 회복세는 더디다”고 했다.

◇한일 정권 교체도 영향

서로에 강경한 자세를 취했던 양국 정권이 교체됐거나 교체가 임박한 것 역시 한일 무역 정상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다. 일본에선 지난해 10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취임했고, 한국 역시 오는 5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할 예정이다.

일본 자동차 기업의 1차 협력사에 플라스틱 금형 부품을 납품하는 한 업체 대표는 “2019년 양국 관계가 악화했을 때는 일본 측 거래처에서 ‘한국 발주를 자제하라는 원청 측 지시가 있다’며 주문을 꺼렸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오는 7월 초 서울에서 열리는 한일 재계 회의가 한일 관계 복원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행사는 일본의 대표 경제 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과 함께하는 연례 회의지만, 코로나 영향으로 2019년 11월 일본 도쿄 회의를 끝으로 한동안 열리지 않았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21일 윤석열 당선인을 만난 자리에서 “경제계가 경직된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데 돕겠다. 민간 경제 협력 채널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정부 간 협력이 활성화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