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25)씨는 중3 때부터 최근까지 아빠한테 150억원을 증여받았다. IT(정보통신) 분야 사업을 일궈 재산이 2000억원쯤 되는 아빠가 아내 이름으로 페이퍼컴퍼니 세운 후 회삿돈을 빼돌려 아들에게 증여한 것이다. 이 돈으로 A씨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고가 주택에 살면서 람보르기니와 911, 페라리 등 모두 합쳐 13억원어치 고가 외제차 3대를 몰고 다니는 호화 생활을 하고 있다. 국세청은 A씨에 대한 아빠의 증여가 증여세를 제대로 물지 않은 편법 증여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17일 A씨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노정석 국세청 조사국장은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탈세 혐의자 61명에 대해 오늘 세무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국세청이 탈세 혐의자로 의심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다. 먼저 A씨 같은 ‘불공정 탈세 혐의자’ 유형 38명이다. 이 가운데 16명은 20·30대 영앤리치(Young&Rich)로서 뚜렷한 소득원이 없는데 부모 등의 편법 증여로 재산을 불린 경우다.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앞서 미리 기초자료를 조사한 결과, 16명의 평균 재산은 186억원이고, 평균 시가 42억원 규모의 레지던스, 137억원 어치의 꼬마빌딩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브리핑하는 노정석 국세청 조사국장 /국세청

◇꼬마빌딩 사주고, 아빠 돈으로 리모델링 “증여형 밸류애드”

수영장 등 편의시설을 갖춘 호텔과 오피스텔이 결합된 형태인 레지던스는 건축법시행령에 따른 생활숙박시설이다. 한경선 국세청 조사2과장은 “레지던스는 LTV(주택담보대출비율) 규제나 전매제한 규제를 받지 않아 부자들 사이에서 아파트의 대체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다”며 “A씨 등 조사 대상 영앤리치는 부모 등이 운영하는 법인이 사업용으로 취득한 후 실질적으로 자식 등 가족이 주거용 호화 별장으로 사적 사용하거나 주택으로 임대하면서 월세 등 임대소득 신고를 누락하는 경우가 많다고 봤다”고 했다.

꼬마빌딩은 연면적(延面積·건물 각 층의 바닥 면적을 합한 전체 면적) 100~3000㎡, 시가 30~300억원 규모의 근린생활·판매·업무 시설을 국세청이 따로 분류한 것이다. 부모가 자녀와 공동 명의로 건물을 사들인 이후에 리모델링으로 가치를 끌어올렸다고 했다. 이들은 리모델링에 든 비용을 부모가 부담하면서 편법 증여를 하는 ‘증여형 밸류애드(Value add)’ 수법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고 국세청은 전했다. 불공정 탈세 혐의자로서 나머지 22명은 40대 이상으로서 숨긴 소득으로 초고가 레지던스·꼬마빌딩·회원권 등을 취득한 호화·사치 생활을 한 경우라고 했다.

◇코로나 피해 자영업자 대상으로 고리대업… 최고 연 300% 이자 받아 서울 재건축 투자

조사 대상이 된 두 번째 유형을 국세청은 ‘민생침해 탈세 혐의자’라고 표현했다.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상대로 한 불법 대부업자, 건강 불안 심리를 악용해 폭리를 취한 의료기·건강식품 업체, 고수익을 미끼로 영업하는 유사투자자문 업체 등 23명이다. B씨는 금융감독원에 대부업체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사정이 어려운 자영업자에게 고리대업(高利貸業)을 했다.

경기 부진과 코로나 여파로 은행 등 1금융권은 물론이고 저축은행, 캐피탈업체 등 2금융권 대출까지 막힌 식당 주인 등 자영업자들이 대상이 됐다. 금리는 작게는 60%에서 많게는 300%까지 올라갔다. 대부업법(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한 법정 최고 이자율은 연 24%인데, 열 배가 넘는 폭리를 받았다. 이자를 은행 계좌 이체로 받지 않고 현금을 직접 걷어 국세청에 이자 소득을 신고하지 않았다. B씨는 이 돈으로 상가임대업과 의류사업을 불렸고, 아내 이름으로 서울 강남구와 양천구, 성동구 일대의 재건축 예정 아파트를 세 채 이상 사들였다고 국세청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