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공정위가 패싱(건너뛰기)된 건가요?”

요즘 공정거래위원회 안팎에서 자주 들리는 말입니다. ‘경제 검찰’ ‘재계의 저승사자’ 소리를 듣던 공정위에 왜 이런 말이 도는 걸까요? 바로 공정위가 핵심 업무로 추진하는 ‘온라인 플랫폼법’ 때문입니다.

공정위가 네이버, 구글 등 플랫폼 사업자의 ‘갑질’을 규제하기 위해 만든 온라인 플랫폼법은 지난달 26일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공정위는 이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버젓이 정부안이 있는데도 국회 여당 의원들은 경쟁적으로 의원입법안을 내고 있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간사인 김병욱 민주당 의원 등 12명은 국무회의 직전인 25일에, 같은 당 민형배 의원 등 10명은 27일에 법안을 냈습니다. 이미 국회엔 작년 12월 전혜숙 의원(민주당) 등 12명이 낸 법안도 있습니다. 다들 정부안보다 규제 강도가 쎕니다.

게다가 여당에는 공정위가 낸 정부안을 못마땅하게 보는 기류가 형성돼있습니다. “정부안이 입점 업체를 보호하기에는 물러터졌다”는 것이죠. 윤관석 정무위원장과 박용진 의원도 정부안을 벼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정부안과 의원안은 이달 임시국회에서 함께 심사됩니다. 하지만 현재 분위기라면 정부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얘기가 벌써부터 나옵니다. 정부안이 국회 심사를 받기도 전부터 비토당하자 공정위 내부에선 “이럴려면 정부가 왜 있느냐” “또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되는 것 아니냐”는 한탄도 나옵니다.

공정위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닙니다. 작년 12월 국회에서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이 통과될 때도 공정위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당시 공정위는 핵심 권한인 전속고발권(공정위만이 검찰에 공정 거래 사건을 고발할 수 있는 권한)을 일부 폐지하는 내용의 정부안을 냈는데 불과 몇 시간 뒤 여당이 전속고발권을 유지하는 수정안을 통과시킨 것입니다. 당시 공정위는 핵심 법안의 내용이 180도 바뀌는데도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아 존재감 없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습니다. 여당에 질질 끌려다니면서도 의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한 공정위의 무기력과 복지부동이 공정위 패싱을 낳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