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 3000명 정도인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기업 한전KDN은 작년 1~3분기 정규직 70명을 채용했지만, 고졸은 1명도 없었다. 주택 전력계량기 점검 등을 하는 이 회사는 2015년부터 680명을 뽑았는데, 고졸은 3명뿐이다. 회사 관계자는 “고졸 출신을 일부러 뽑지 않은 것은 아닌데, 면접 과정에서 학력을 가리는 블라인드 면접 등으로 오히려 대졸 출신이 많이 들어온 것 같다”고 했다.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코로나19로 취업 못 한 스무 살들의 일자리 보장' 사회적 교섭 요구 7차 행진'을 진행하고 있다. 2020.12.27 /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제공.

17일 기업 공시 분석 기관 CEO스코어가 공공기관 알리오에 공시된 국내 공기업 36곳 현황을 조사한 결과, 작년 1~3분기 고졸 출신을 한 명도 뽑지 않은 공기업이 17곳(47.2%)에 달했다. 국내 공공기관 360곳 가운데 자체 수입이 많지 않은 국민체육진흥공단 등 준정부기관 95곳과 예술의전당 등 기타공공기관 209곳을 뺀, 36곳의 공기업(한국전력과 가스공사 등 시장형 공기업 16곳과 조폐공사 등 준시장형 공기업 20곳)을 기준으로 조사했다. 이 가운데 절반쯤이 고졸 채용을 외면했다.

36개 공기업 가운데 고졸을 1명도 뽑지 않은 곳은 2015년 6곳, 2016년 7곳, 2017년 7곳, 2018년 6곳, 2019년 5곳이었는데 지난해 급격하게 늘었다.

지난해 경기 침체에 코로나 사태까지 덮치면서 최악의 고용 한파가 고졸 등 고용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불어닥친 가운데 공공기관조차 고졸 채용을 외면했다는 것이 숫자로 드러났다.

정부는 ‘고졸 취업 지원 확대’를 100대 국정 과제 가운데 하나로 내세웠고, 2019년부터는 공공기관 고졸 채용 비율을 20%로 늘리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지만, 고졸 비율은 오히려 줄었다.

2019년 19.4%였던 공기업의 고졸 채용 비율은 지난해 1~3분기 13.6%로 쪼그라들었다. 공공기관 채용 공시가 시작된 2015년 이후 최저치다. 준정부기관과 기타공공기관을 합친 공공기관 360곳 기준으로 봐도 지난해 1~3분기 고졸 채용 비율이 8.8%로 2019년(10.2%)보다 줄었다.

상당수 공공기관은 코로나 등 여파로 채용이 줄어 고졸 채용을 못 했다. 가령 코로나 유행에 따른 거리 두기 여파로 운영이 중단된 강원랜드는 작년 1~3분기 전체 채용 인원이 3명이었고, 이 가운데 고졸 출신은 없었다. 하지만 일부는 채용이 늘었는데도 고졸 채용이 줄었다. 한국남동발전은 신규 채용이 2019년 135명에서 작년 1~3분기 156명으로 늘었는데, 같은 기간 고졸 채용은 16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으로 고졸 취업 문이 더 좁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경기 부진에 코로나 여파로 지난해 고용 한파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이런 경우 적극적인 고용정책을 써야 할 정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