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5세대 이동통신) 시대가 열린 지 1년 남짓하지만 벌써 6G(6세대 이동통신) 시장 선점을 위한 미국과 중국 간 기술전쟁이 시작됐다. 미 의회가 먼저 선전포고를 했다. 미 의회는 지난 3일(현지 시각) 공개한 ‘국방수권법안(NDAA·국방예산법) 2021’에 ‘위험한 5G 또는 6G를 쓰는 국가에 미국 병력 주둔 재검토’ 조항을 넣은 것이다. 미군이 주둔하는 동맹국은 5G는 물론이고 6G도 쓰지 말라는 압박이다. 6G는 아직 지구 상에 없는 일반인에게 낯선 기술이다. 내년에야 한국·유럽·일본·중국 등 주요 기업들이 국제표준기구에 모여 정의와 주요 기술을 정하는 회의를 시작하는 정도다.

10년 뒤에나 상용화가 예상되는데도 미 의회가 6G를 국방 관련 법률에 집어넣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5G에서 중국 화웨이의 압도적인 기술 앞에 참패한 미국이 6G에선 중국의 싹을 밟으려는 계산된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국내 대기업의 관계자는 “중국과 6G 기술 협력을 했다간 자칫 안보 위협이라는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며 “6G만큼은 중국과 연구 협력하지 말라는 사실상 협박”이라고 말했다.

◇5G 참패한 미국, 절치부심 6G

6G는 5G보다 10~50배 빠르고, 도달 공간도 지상은 물론이고 10km 상공까지 커버하는 기술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대로라면 6G 기술 주도권도 5G 때 가장 많은 표준특허를 낸 중국이 쥘 수 있다. 전 세계 5G 표준특허 가운데 20% 이상을 화웨이와 ZTE가 제공했다.

미국은 테크 최강국이지만 유독 통신장비 시장에선 약한 모습을 보였다. 세계 통신장비 기업 톱5에 미국 기업은 하나도 없다. 미국은 지난 10월 마이크로소프트와 페이스북, 버라이즌, 퀄컴 등 쟁쟁한 테크 기업이 참여한 ‘넥스트G 얼라이언스’를 출범시키며 “앞으로 10년간 6G의 미국 리더십을 확립하겠다”고 했지만 핵심인 통신장비 회사는 미국 기업이 아닌, 삼성전자(세계 5위)와 스웨덴 에릭슨(2위)이 들어갔다. 미국 혼자 힘으론 6G에서도 중국의 독주를 막기 어렵다. 윌리엄 바 미 법무부 장관은 지난 2월 한 콘퍼런스에서 “미국과 동맹국이 유럽 통신장비기업 노키아나 에릭슨 등의 지배적인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세계 첫 6G 위성 쏜 중국

미국이 먼저 6G 기술전쟁의 불을 댕긴 듯 보이지만, 사실 중국은 이미 지난달 7일 산시(山西)성 타이위안(太原)인공위성 발사센터에서 세계 최초로 6G 인공위성(텐옌-5호)을 쏘아 올렸다. 이 위성은 우주 공간에서 6G의 주파수로 유력한 테라헤르츠 대역 실험을 진행한다. 2~3년 전부터 선행 기술을 개발해 일부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제재로 휘청거리는 통신장비 강자 화웨이를 대체할 샤오미·오포 등 ‘화웨이 2중대’도 6G 기술 개발에 나섰다. 중국 샤오미의 레이쥔 창업자는 5월 “6G 연구를 시작했다”고 선언했고, 오포는 3년간 500억위안(약 8조원)을 연구 개발비로 쓰겠다고 발표했다. 화웨이도 캐나다에 6G 연구소를 설립했다.

몰락한 테크 왕국 일본도 6G에 참전했다. 일본 통신업체 NTT는 올 7월 NEC에 지분 출자하고, 100여 일본 기업과 함께 ‘6G 통신장비’에 도전하겠다고 발표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30년 세계 빅3 탈환을 위해 ‘덴덴(電電)패밀리’가 다시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덴덴패밀리는 3G 때만 해도 세계 최고를 자부한 NTT와 일본 전자기업 간 협력 모델이다.

6G 패권 전쟁에서 한국은 ‘캐스팅 보트’를 쥔 입장이다. 세계 최초로 5G 통신을 시작한 국내 통신업체는 차기 인프라의 선두 주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삼성리서치 산하에 차세대통신연구센터를 설립하고 6G 선행 기술 연구를 진행 중이고, 글로벌 표준화를 주도하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미국 버라이즌이 8조원대 5G 장비 물량을 삼성에 몰아준 것도 미국 측의 러브콜이란 분석도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손승현 국장은 “미국이 6G를 데이터 속도만 빨라진 기술이 아니라, 전혀 다른 형태의 망기술로 끌고 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1만2000개 인공위성을 쏘아, 세계 인터넷망을 구축하는 테슬라의 계획도 큰 틀에선 6G 기술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