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코로나 사태 이후 증시의 큰 세력으로 등장한 ‘동학 개미’가 경제정책에 미치는 입김도 점점 세지고 있다. 심지어 3년 전 정책을 뒤집고 ‘경제 사령탑’ 노릇을 해야 할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사표를 받아낼 정도다. 표심(票心)을 신경 쓰는 정치권이 동학 개미에게 구애하는 데다, 시중 유동자금을 부동산 대신 증시로 흘러가게끔 하겠다는 정책 기조가 맞물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픽=김성규

◇무서운 동학 개미, 3연승 따냈다

지난 3일 국회에서 홍남기 부총리는 “사표를 냈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직접적인 계기는 주식 양도세를 부과하는 기준이 되는 ‘대주주’의 기준을 둘러싼 갈등이었다. 현행법에서 국내 주식 투자로 번 돈(양도 차익)에는 세금이 안 붙는다. 다만 특정 주식을 10억원 이상 들고 있으면 ‘대주주’로 간주해 최대 33%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정부는 내년부터 이 기준을 3억원으로 낮추겠다는 입장이었다. 지난 2017년 결정한 정책이다.

여기에 동학 개미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주식 3억원을 들고 있는 게 무슨 대주주냐”는 이유에서였다. 대주주 취급을 받지 않으려는 ‘왕개미’들이 연말에 매도 물량을 쏟아내 주가가 폭락할 수 있다는 불평이 쏟아졌다. 홍 부총리 때문에 주가가 떨어진다는 뜻을 담은 신조어 ‘남기락(홍남기 부총리 이름과 한자어 락(落))’이라는 말까지 돌았다.

개미들은 불평에 그치지 않았다. 홍 부총리 해임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 20만명 넘게 참여했고,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에는 ‘홍남기 해임’이 실시간 인기 검색어로 오르기도 했다. 그러자 야당은 물론, 여당도 대주주 요건 유지를 요구했다. 결국 정치권의 압력에 홍 부총리는 입장을 굽히며 “책임지겠다”는 취지로 사표까지 낸 것이다. 홍 부총리를 ‘데스노트’에 올린 동학 개미가 완승하는 모양새다.

앞서도 동학 개미는 증시 관련 제도에서 연이어 승전고를 울렸다. 정부는 지난 3월 코로나 사태로 증시가 무너지자 증시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공매도(空賣渡)를 6개월간 금지하기로 했다. 한시 조치가 끝나는 9월을 앞두고 개미들은 공매도 금지를 연장하거나 아예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공매도 금지를 내년 3월까지 연장하는 건 물론, 각종 제도 개선책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국회에서도 불법 공매도 처벌을 강화하거나, 특정 종목에 한해 공매도를 허용하는 등의 법안을 내놨다.

기재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금융 세제 개편안’ 관련 논란에서도 동학 개미는 절반의 승리를 거뒀다. 당초 기재부는 국내 주식으로 2000만원 넘게 번 투자자에게 양도 차익 20%를 세금으로 물리는 대신, 증권 거래세는 현행 0.25%에서 0.15%로 낮추는 안을 들고나왔다. 그러나 동학 개미들이 “사실상 증세”라며 반발하면서 5000만원 이상 번 사람에게만 과세하는 내용으로 수정됐다.

개인 투자자의 월별 순매수 금액 추이

◇개인 투자자 표심 구애에 ‘부동산 잡겠다’ 정책 기조 겹쳐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들은 올해 들어 10개월 연속으로 순매수를 기록했다. 한 달도 빼놓지 않고 주식을 사들였다는 말이다. 특히 코로나 사태 초기였던 지난 3월에는 11조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부었다. 올해 처음 주식을 한다며 ‘주린이(주식+어린이의 합성어)’를 자처하는 초보 투자자들도 대거 늘었다.

이들은 주식을 살 땐 개인 투자자이지만, 투표소에 들어갈 땐 유권자다. 여야 가리지 않고 ‘동학 개미 수호대’를 자처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정부가 내놓은 정책을 개인 투자자들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정치권이 나서 정책 수정을 요구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개인 투자자가 많아질수록 표심을 신경 쓰는 정치권에서 이들 요구를 민감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도 동학 개미에게 비교적 우호적이다. 시중 자금이 부동산으로 쏠리지 않게 하려면, 증시를 매력적인 투자처로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에 증시를 떠받쳐온 개인 투자자를 응원하고 주식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개인 투자자에게 직접적으로 구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