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아프간 파병을 떠나면서 7살, 12살 두 아들과 포옹하며 눈물을 흘리는 브라이언 아이쉬./넷플릭스

미국 역사상 가장 길었던 전쟁에도 끝이 보인다. 미국 정부는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를 비호한 아프가니스탄 무장조직 탈레반과 지난해 2월 첫 평화 합의를 체결했다. 이어 테러 20주기를 맞는 오는 9월 11일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모든 주둔 미군을 철수하기로 했다. 계획대로 된다면 20년 만의 전쟁 종식이다.

전쟁의 종식이 기쁘기보다 어딘지 찜찜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상 무장세력에 대한 미국의 항복 선언으로 느껴져서다.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고 알카에다 수뇌인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탈레반 세력은 여전히 아프간 국토의 최대 절반을 장악한 상태다. 미군 철수 발표 이후엔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을 벌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결국 탈레반이 군사적 승리를 거둘 것이라 예측한다.

2010년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 되는 미군들의 모습./넷플릭스

그동안 미국이 이 전쟁에 희생한 건 돈 2조 달러(2400조원) 뿐만이 아니다. 미군 2400명이 숨졌고 2만여 명이 다쳤다. 전쟁에서 승리해도 희생된 이들과 그 가족에겐 비극이다. 그래서 전쟁은 국가의 일인 동시에 가족의 일이다.

뉴욕타임스 기자들이 아프간 전쟁에 파병된 브라이언 아이쉬(Brian Eisch) 가족을 10년 간 가까이서 지켜보며 카메라에 담았다. 브라이언은 17년 간 군인으로 복무한 싱글 대디다. 아프간에서 작전 도중 다리를 잃었지만, 국가를 위해 몸을 던졌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간다. 다큐멘터리 ‘아버지 군인 아들(Father Soldier Son)’은 평범한 아버지와 두 아들을 할퀴고 간 전쟁의 참혹함을 비춘다. 중간중간 수년씩을 건너뛰며 드문드문 풀어가지만 그 사이의 삶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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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군인 가족의 10년

2010년 9월 첫 휴가를 받아 미국에 복귀한 브라이언 아이쉬와 두 아들의 모습./넷플릭스

전쟁이 8년째에 접어들던 2010년, 당시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에 미군 3만명을 추가로 파병한다. 7세 ‘조이’와 12세 ‘아이작’ 두 아들을 홀로 키우던 브라이언 아이쉬도 이때 파병 갔던 군인 중 하나다. 아이들이 눈에 밟혔지만, 군인으로서 나라의 부름에 응하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라 여겼다. 다큐멘터리는 아프간에서 첫 6개월을 보낸 브라이언이 2주 간의 짧은 휴가로 아이들과 재회하며 시작된다.

“지금 아빠가 나서지 않으면 밤에 너희들 머리 위로 총알이 날아다닐 거야”. 아이들을 삼촌에게 맡기고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간 지 불과 몇 주 만에 그는 탈레반이 점령한 마을을 습격한다. 아프간 경찰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다리에 기관총을 맞았다. 왼쪽 다리에 두 발, 오른쪽에 한 발. 의사는 다리 절단을 권유하지만, 그는 일단 버텨본다. 군인으로서의 힘과 권위를 포기할 수 없다. 그에게 건강한 육체와 남성성은 자존감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브라이언의 둘째 아들 조이./넷플릭스

파병 전 건강하고 밝은 표정의 아버지와 부상 후 신체적·정신적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버지의 모습이 대비된다. “다쳤다고 전역하진 않겠다”던 강한 아버지도 고통 앞에선 무너지고 만다. 아이들도 그 아픔을 함께 겪는다. 어릴 적 ‘아빠가 밤사이 총에 맞지 않을까’ ‘누군가 몰래 아빠를 공격하지 않을까’ 불안에 떨며 잠에 들던 아이들은 오랜 기간 불안과 우울을 겪는다. 미국엔 부모가 전쟁에 배치된 기간이 길수록 아이들이 학교와 집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 다큐멘터리가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전쟁은 가족의 일이다”

2010년 아프간에서 제작진과 인터뷰하는 아버지 브라이언의 모습. 파병가며 그가 가장 두려워한 건 변해버릴 자신의 모습이었다./넷플릭스

아프간 파병 초기 브라이언이 가장 겁냈던 건 총도 죽음도 아니었다. 전쟁을 겪고 무기력하게 변해버릴 자신의 모습이었다. “아이작의 친구 아빠가 이라크 다녀와서 달라졌다고 하더군요. 전 그런 아빠가 되기 싫습니다”. 그의 다짐은 6개월도 가지 못해 좌절되고 만다.

다큐멘터리엔 브라이언이 미국으로 복귀하고 3년 간 공백이 있다. 가족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는 그들의 표정으로 알 수 있다. 브라이언은 전역했고, 여자친구가 생겼고, 아이들은 부쩍 자랐다. 그러나 그동안 그의 고통은 점점 커져만 갔다. “지금 저는 짐짝이죠. 재향군인회와 군대에게 말입니다. 그들이 저를 돌봐주니까요. 보조금에 의지해서 살고요. 이젠 저의 쓸모가 사라진 거죠.”

아이들이 만지며 ‘돌덩이같이 단단하다’고 놀라던 아빠의 몸엔 근육 대신 살이 붙었다. 따뜻하고 강하던 아버지는 혼자 걷기도 어려워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의미 없는 비디오 게임을 하며 보낸다. 3년 간 다리를 자르지 않고 버티던 브라이언은 결국 다리 절단을 결정하고 의족을 차게 된다.

2014년 다리를 절단한 후 여자친구와 집으로 돌아가는 브라이언의 모습./넷플릭스

아버지는 어린 아들들에게 강인함을 강요한다. 어릴 적 자신처럼 레슬링을 잘하길 원하고, 강한 군인으로 크길 바란다. 아이들은 그 기대에 부응하기 쉽지 않다.

아들 아이작은 말한다. “힘들어요. 자신을 희생하고 나라를 위해 싸우는 건 숭고한 일이죠. 하지만 아빠가 평생 안게 된 저 부상이 그럴 가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대학에 가서 경찰이 되고 싶단 아들의 꿈을 꺾게 하고 군 입대를 종용하는 모습은 한국의 정서로는 낯설게 느껴진다. 일자리가 없는 가난한 마을,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선 군 입대 말고 특별한 진로가 없는 미국의 현실이기도 하다.

점점 멀어지는 부자관계도 안타깝다. 아버지는 “우리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강하다. 아이들과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하지만, 보는 사람들은 카메라 너머로 그들의 거리를 느낀다. 첫째 아들이 이라크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무기력하게 군에 입대해 좌절하는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는 2년 후에도 여전히 말단 병사이고, 아버지가 이룬 성과를 따라가지 못해 괴로워한다.

◇목숨 걸고 지킬 가치 있는 나라

지난 4월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가 천안함 장병 사망 원인 재조사에 착수했다가 각하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 전준영 천안함생존자 예비역전우회장이 본인의 SNS에 올린 이미지./페이스북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에서 나라를 지켰다는 자부심과 긍지로 세상을 버텨내는 아버지 브라이언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현실과 대비된다. 미국의 상이군인훈장인 ‘퍼플 하트'를 받은 그는 사랑하는 국가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받는다. 집안 곳곳에 성조기를 걸어두고 항상 ‘아프간 참전 용사’ ‘강한 육군’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는다. 그의 집 벽엔 이런 문구도 적혔다. ‘모두가 조금씩 희생할 때 모든 것을 다 바친 이들도 있다(All gave some, some gave all)’. “다리 잃을 가치가 있었나요?”란 질문에도 당당하게 답한다. “물론이죠!”.

우리 현실은 어떤가. 지난 4월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가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난 천안함 폭침 원인 재조사에 착수했을 때, 한 천안함 생존자는 본인 소셜미디어에 이렇게 썼다. “군인 여러분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 마세요. 저희처럼 버림받습니다”. 우리는 비무장지대에서 북한의 목함지뢰로 두 다리를 잃었던 장병에게 ‘전상’ 아닌 ‘공상’ 판정을 내렸던 나라,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천안함 폭침이 ‘북한 책임’임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 나라, ‘천안함 재조사’ 운운하며 나라 위해 희생한 장병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나라에 살고 있다.

국가를 지켜냈다는 군인의 자부심은 두 나라가 같은데,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 대한 대우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씁쓸함이 느껴진다. 모든 군인이 목숨 걸고 지켜내고 싶은 나라. 미국의 진짜 힘은 이런 곳에서 나온다.

아버지처럼 강한 군인이 되기를 꿈꾸던 둘째 아들 조이의 모습./넷플릭스

개요 다큐멘터리 l 미국 l 2020 l 1시간 39분

등급 15세 관람가

특징 전쟁이 군인 가족에게 남긴 것

평점 로튼토마토🍅91% IMDb⭐7.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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