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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쯤 생각나고 또 듣게 되는 노래가 ‘봄날은 간다’이다. 우리나라 대중음악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됐다는 이 노래는 시인들이 꼽은 최고의 노랫말로도 유명하다. 조용필과 나훈아가 각각 녹음한 곡으로도 이름났다. 두 사람이 같은 노래를 부른 적이 있던가. 아마도 흔치 않을 것이다.

1953년 백설희가 처음 녹음한 ‘봄날은 간다’는 손로원이 작사하고 박시춘이 작곡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하는 1절 첫 소절이 가장 유명하지만, 이 노래 가사의 백미는 “봄날 간다”가 아니라 “봄날 간다”에 있다.

영화 '봄날은 간다'

당신이 작사가라면 “알뜰한 그 맹세에” 뒤에 “봄날이 간다”를 쓰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이’ 대신 ‘은’을 씀으로써 손로원은 이 노래를 문학의 경지에 올려놓았다. 소설가들이 ‘는’을 쓸까 ‘가’를 쓸까를 두고 하루 종일 머리를 싸매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후대에까지 남을 고전이 되느냐 한번 읽히고 잊히는 범작이 되느냐가 주격 조사에 달려있다.

조용필 ‘봄날은 간다’는 1984년 발매된 비정규 앨범에 실려있다. 조용필은 ‘창밖의 여자’ 이후 무수한 비정규 앨범을 녹음했는데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전혀 소개하지 않고 있다. 자신의 앨범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제작자의 무리한 요구에 등 떠밀려 녹음한 음반들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영화 '봄날은 간다'

조용필은 이 노래에서 최전성기였던 1980년대 전형적 창법과 음색을 들려준다. 1옥타브에서는 여지없이 비음이 섞여있고 2옥타브로 올라갈 때면 소리의 압력을 높여 정확하게 찌르는 창법이다. 특유의 음 꺾기는 여전하지만 기본적으로 스트레이트한 창법이며 악보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다.

나훈아가 부른 ‘봄날은 간다’는 훨씬 장식적이다. ‘간드러진다’는 표현이 잘 어울릴 만큼 음표들을 갖고 논다는 생각이 든다. 한 마디 안에서도 음마다 강약이 다르고 아주 미묘하게 음을 흔들며 노래한다.

영화 '봄날은 간다'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부분에서 그의 노래 특징이 나타난다. “고름”의 ‘ㄹ’ 발음을 “RRR” 식으로 순식간에 굴린다. 후렴구에서는 한 마디 안에서 포르티시모와 피아니시모를 쓸 만큼 기교를 부린다.

이미자 장사익 최백호 임지훈 말로 등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지만 가장 특이한 리메이크는 한영애 버전이다. 일단 전주를 들어서는 절대로 이 노래가 ‘봄날은 간다’일 것이라고 예측할 수 없다. 악보를 완전히 해체해 재조립한 듯한 이 노래에서 한영애는 자신의 매력을 맘껏 뿜어낸다. 어쿠스틱 기타와 드럼을 두드러지게 녹음해 클래식이 된 이 명곡의 서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대개의 리메이크 버전이 2절까지만 부르는 데 그쳤지만 한영애는 3절까지 모두 불렀다. 노래를 마무리하는 스캣(scat)도 일품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

원곡은 아마도 6.25 전쟁통에 남자를 잃은 여자의 애절한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성황당 길에도 가보고 역마차 길에도 나가보고 신작로에도 서성대보지만, 그리운 사람을 되찾는 일은 속절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 그런 사연을 하나씩 갖고 있다. 그렇기에 이 노래를 들으며 위로를 얻는다. 시대와 개개인을 뛰어넘고 아우르는 가사와 강약 고저가 분명한 멜로디가 이 노래의 힘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봄날이 가는 모양을 지켜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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