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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 남편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롤러코스터의 이상순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이상순이 유명해지면 그의 음악도 덩달아 알려져야 할텐데, TV는 이상순이 이효리 조연에 머물기를 강력히 요구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음악은 철저히 도구일 뿐이다. 음악을 목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은 시청률 기근에 허덕이다가 말라 죽고 만다.

롤러코스터의 ‘어느 하루’는 덜 알려진 밴드의 덜 알려진 노래다. 그러나 2000년대 한국 대중음악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곡이다. 단순한 드럼 비트 두 마디에 이어 일렉트릭 기타가 역시 단순한 음을 연주하며 등장하고 이어 조원선의 노래가 시작된다. 왜 롤러코스터를 조원선의 밴드라고 했는지 그 음색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조원선은 이 노래가 담긴 앨범 ‘일상다반사’의 모든 노래를 작사했고 거의 모든 곡을 작곡했다.

이상순

조원선은 가창력의 가수가 아니다. 라이브 음정이 불안정하고 심지어 녹음된 노래에서도 호흡이 짧다. 그러나 이상순이 일렉 기타 두 대로 만들어 낸 절묘한 반주에 조원선의 나른한 보컬이 아니라면 절대로 이 노래는 완성될 수 없었다.

조원선의 노래는 특이하게도 오른쪽 스피커에서만 들린다. 일부러 그렇게 녹음한 것이다. 2절까지 다 부른 뒤 2분 58초쯤 베이스가 본격 입장하면서 비로소 보컬도 양쪽 스피커에서 모두 나온다. 이후 끝날 때까지 조원선은 “우아이 야이이야아이” 하는 일종의 허밍만 부르는데, 바로 이 부분이 조원선의 음색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조원선

1999년 데뷔해 2000년대 중반까지 활동한 롤러코스터는 당시 외국 음악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애시드 재즈를 본격 도입한 팝으로 한국에 없던 음악을 만든 3인조 밴드다. 맏형 격인 지누(최진우)가 베이스와 프로그래밍을 맡고 이상순이 기타를 쳤다. 이상순이 기타를 다루는 솜씨는 ‘어느 하루' 2분 35초쯤부터 시작되는 두 대의 일렉 기타 조합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왼쪽 스피커에서는 땡글땡글한 기타가, 오른쪽에서는 동글동글한 기타가 각자의 사운드를 내며 절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히치하이커

지누는 롤러코스터를 중단한 뒤 작곡가로 활동하다가 2015년 ’11(일레븐)’이란 곡을 발표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히치하이커’란 이름으로 등장한 그는 직접 만든 뮤직비디오에서 알루미늄으로 만든 방화복 같은 것을 입고 나와 춤을 췄다. 노래 가사는 “아바바바”가 거의 다였다. 이 음악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어 ‘강남스타일을 이을 뮤직비디오’라는 평을 받기도 했고 스포티파이 재생 순위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상순은 롤러코스터 이후 김동률과 함께 ‘베란다 프로젝트’라는 음반을 낸 것 말고는 딱히 음악활동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범 유희열계로 분류될 만한 그는 역시 그런 이유로 TV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효리와 결혼하면서 갑자기 유명해졌다. 음악으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에겐 유명해지고 말고가 아무런 의미 없는 일이다.

작년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장난처럼 그룹을 만들어 ‘다시 여기 바닷가’라는 노래를 크게 히트시켰다. 이 노래 작곡가가 이상순이다. 원곡은 일부러 경박하게 편곡했고 또 그렇게 불렀지만, 이상순이 직접 부른 ‘다시 여기 바닷가’는 꽤 준수한 포크록이다.

조원선은 여전히 음악 동네에서 싱글도 발표하고 다른 뮤지션 앨범에 참여하기도 하고 있다. 그 가운데 윤상 앨범에서 부른 노래 ‘넌 쉽게 말했지만’이 매우 인상적으로 그의 특장을 보여준다. 윤상의 음악이 일종의 현상으로 받아들여지던 1992년 발표된 이 노래는 윤상의 목소리가 너무 약하고 가느다라서 하이라이트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그 아쉬운 부분을 조원선의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이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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