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동일교회 이수훈 목사가 지난 5일 주일 예배 후 어린이들을 안아주고 있다. 이 교회는 주일 1부 예배를 세대 통합형 '온세대 예배'로 드리고 있다.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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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 없는 열매는 없지요”

“어려운 아이들을 돌보려면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합니다. 다행히 저희 아이들은 잘 자라줘서 감사한 일이지요.”

지난주 ‘아이 키워주는 교회’ 당진 동일교회 기사가 나간 후 지인 한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교회 이수훈 목사님이 어려운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작 자기 자식은 선교사에게 보내서 키웠다고 들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과 자신의 아이들이 함께 있으면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을 것 같아서 그랬다는 것이지요.

머리가 띵했습니다. 이 목사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별 이야기를 다 들으셨네요. 맞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초등학교 마치고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 계시는 선교사님께 보냈어요”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이유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차별하게 될까봐’ 였답니다. 이 목사님은 아들이 둘 있습니다. 지금 30대 초중반이라고 합니다.

“우리 아이가 제 품에 덤비면 어려운 가정 아이는 위축돼”

이 목사님이 이야기한 사정은 이랬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희생했지요. 왜냐하면 내가 우리 아이들을 품고 앉아 있으면 홀로 된 분들의 자녀는 슬퍼지지요. 그러니 우리 아이들을 보내고 어려운 집 아이들을 케어했지요. 그렇게 아이들을 보내고 과부나 이혼녀의 아이들을 내 아이들처럼 키웠어요. 차별을 받을까봐 우리 아이들을 떼어냈지요. 우리 아이가 제 품으로 덤비면 저쪽 아이는 위축이 돼요. 도저히 우리 아이들 데리고 그 아이들을 돌볼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 졸업 후에 다 보냈어요. 선교사님들께 보냈어요. 필리핀 민다나오로 보냈어요. 둘째 아이는 미국에 계신 목사님이 사정을 보고 데려가셨죠. 남들 보기에는 유학처럼 됐는데, 그 목사님 집 서재에서 자랐어요. 다행히 둘 다 잘 컸어요. 아이들이 몇 년생인지는... 지금 서른 다섯, 서른 하나 이렇게 됐어요. 별 수 없는 거죠. 희생 없는 열매는 없어요.”

이 목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주위를 살펴보면 어려운 가정이 많다고 했습니다. 특히 남편과 사별하거나 이혼한 여성은 생활을 꾸려야 하기 때문에 가정을 돌보기 어렵지요. 이 목사는 지역에서 이런 가정의 어린이를 친정집처럼 맡아 길렀답니다. 교회 부설 어린이집에서 돌보기도 하고 아파트를 얻어서도 길렀다지요. 또 명절 때면 이런 가정의 엄마와 자녀들을 강원도 등의 호텔로 초대해 사흘씩 쉬면서 맛난 것도 먹고 왔답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런 과정을 통해 엄마들이 열심히 살아갈 삶의 희망을 찾게 되지요.”

명절 땐 사별-이혼 가정 호텔로 초대

지난해에는 한 가정을 서울로 이사하도록 도왔다고 했습니다. 28살에 아이 셋을 둔 상태에서 남편과 사별한 여성의 가정이었답니다. 막둥이는 유복자였답니다. 목사님은 엄마가 돌봄센터에서 일하도록 주선하고 교회 옆의 아파트를 구해서 식구처럼 지냈다고 합니다. 드디어 막둥이가 대학에 입학하게 되자 이 목사는 아이들을 불러놓고 “엄마도 이젠 엄마의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하고 “여기에 계속 있으면 이대로 늙어버린다”며 엄마도 서울로 이사해 제2의 인생을 살라고 했답니다. 그러면서 이 목사는 “지금도 어려운 분들 많아유”라고 했습니다.

지난번 기사에는 어린이집과 방과 후 학교 위주로 소개했지만 사실 이 목사님은 당진 지역의 소외된 어린이, 청소년들을 돌봐왔습니다. 가슴 아픈 사연도 많았답니다. 거리에서 만난 한 중학생 소녀가 대표적입니다. 그 소녀는 여름인데도 긴 치마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막대기 하나에 의지해 다리를 절고 있었답니다. 또 한 아이는 시장에서 장사하는 할머니 밑에서 한 방에 네 명이 살고 있었는데, 온몸을 기우뚱 거리며 다니고 있었답니다. 뭔가 이상해서 병원에 데려가 엑스레이를 찍어봤다지요. 결과는 충격적이었답니다. 지팡이를 짚은 소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다리가 부러졌는데 치료를 받지 않아 어긋난 채로 뼈가 자라고 있었고, 기우뚱 거리며 걷던 아이는 선천적으로 발바닥과 발등이 뒤집히고 고관절이 빠진 상태였다지요. 이 아이들은 서울의 종합병원에서 여러 차례 수술을 받고 완치됐답니다.

감동적인 것은 당시 병원에서 아이들의 사연을 듣고는 치료비를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때 많이 울었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병원비로 모금한 성금으로 각각 집을 지어줬답니다. 입주식은 성탄절 직전인 12월 23일이었는데 당진 지역 지도자들을 초대했답니다. 가구와 가전제품은 물론 양말과 내의까지 기증받아서 새로 장만해드렸답니다. 그렇게 입주식을 했는데 뜻밖에 온 가족이 다 뛰어나왔답니다. “이건 우리집 아니다”라면서요. 목사님은 “그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약한 자와 함께 버텨내는 것은 힘들지만 보람은 많다고, 돌아오는 열매는 크다고 했습니다. 그 아이들을 사랑으로 품어서 온전한 사회인으로 길러내는 것이 보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어려운 사람 찾아다니셨지 않나”

교회가 어떤 역할까지 감당해야하는지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 목사는 “예수님도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다니지 않으셨느냐”고 했습니다. 이 목사님의 어려운 이웃 사랑, 아이들 사랑이 변함없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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