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장항리 절터의 불상대좌에 새겨진 사자 모양 부조. 무섭기 보다는 익살스런 표정으로 독특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담앤북스 제공

오는 일요일(5월 8일)은 어버이날이자 불기(佛紀) 2566년 부처님오신날이지요.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자연은 온통 초록으로 물든 가운데 마침 야외에선 마스크도 벗고 다닐 수 있게 됐지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주변 사찰을 찾는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근대 이전 전통 사찰은 자연 환경이 잘 보존된 생태 학습장이자 다양한 공예, 미술품이 즐비한 미술관이기도 했지요. 사찰에 숨어있는 다양한 상징물을 미리 알고 가보시면 어떨까요?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까요.

최근 국내 연구자들이 사찰의 다양한 면모를 알기 쉽게 해설한 책이 많이 나와있습니다. 그 중 몇 권을 통해 사진과 함께 흔히 지나치기 쉬운 사찰의 재미있는 상징물을 알려드릴까 합니다.

경주 장항리 사지 불상대좌의 사자상 전체 모습(왼쪽)과 우사인 볼트의 포즈. /담앤북스, 뉴시스

작년에 출간된 ‘절집의 미학’(김봉규 지음·담앤북스)은 전국의 사찰들을 일주문(一柱門)부터 법당 주변 그리고 누각과 해우소(화장실)까지 두루 훑었습니다. 제 눈길을 끌었던 사진이 한 장 있습니다. 경주의 폐사지인 장항리 사지에 있는 불상대좌의 사자상입니다. 불상이 놓였던 받침대에 새겨진 사자입니다. 그런데 ‘백수(百獸)의 왕, 사자’의 무서운 위용이 아니라 새끼 사자인 듯 귀엽고 익살스럽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취한 포즈가 재미있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왼팔은 쭉 뻗고 오른팔은 접은 모양인데요. 저는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세계적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가 경기 후 왼팔을 쭉 뻗는 독특한 세리머니를 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상당히 묘하게 닮지 않았나요? 제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걸까요? 물론 우사인 볼트가 경주의 이 사자상을 보고 따라한 것은 아니겠지요.

전남 화순 운주사의 이형 석탑들. 일반적인 석탑과는 전혀 다르고 오히려 현대적 디자인을 연상케 한다. /담앤북스 제공

전남 화순에는 전설의 ‘천불(千佛) 천탑(千塔)’으로 유명한 운주사가 있습니다. 운주사에는 보통 형태와 다른 이형(異形) 탑과 불상이 많은데요. ‘절집의 미학’에도 그 중 몇 개가 사진으로 실렸습니다. 발형(鉢形)다층석탑이 우선 눈길을 끕니다. 이 탑은 마치 공깃돌이나 주판알 같은 둥근 돌 4개를 포개놓았습니다. 스님들의 식기인 발우(鉢盂)를 포개놓은 듯하다 해서 ‘발형(鉢形)’이라고 부른답니다. 이 탑은 언제 누가 세웠는지, 왜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졌는지 등이 모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운주사에는 또 원형다층석탑도 있습니다. 납작하고 둥근 돌을 겹쳐 포개놓은 형상이지요.

전남 구례 화엄사 구층암의 모과나무 기둥(왼쪽)과 경북 문경 김룡사 대성암의 해우소. 구층암의 스님들 거처인 요사채는 모과나무를 둥글게 다듬지 않고 원래 모양 그대로 살려 기둥으로 썼다. /담앤북스 제공

영남일보 기자인 저자는 해우소까지 놓치지 않았네요. 뒷간, 측간, 변소 등으로 불리던 사찰의 화장실은 통도사 경봉 스님이 ‘근심을 해결하는 곳’이란 뜻의 ‘해우소(解憂所)’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격이 달라졌지요. 사찰 해우소 가운데는 순천 선암사와 송광사가 유명하지요. 이런 사찰의 해우소는 재래식이지만 바닥이 깊고 통풍이 잘 됩니다. 그리고 배설물 위에 왕겨나 재, 낙엽 등을 덮어 자연 퇴비를 만들지요. 그래서인지 냄새도 생각만큼 지독하지는 않습니다. 수세식 화장실에 밀려 전통 사찰에서도 사라지는 추세이지요. 이 책에는 일반적으론 덜 알려진 문경 김룡사와 부속 암자인 대성암 해우소 사진이 실렸습니다. 저는 처음 사진을 보고 나무로 만든 큰 건물인 줄 알았습니다.

충남 공주 마곡사의 혓바닥으로 콧물을 닦는 익살스런 용 조각. /불광출판사 제공

사찰문화유산 답사 전문가인 노승대씨의 저서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불광출판사)는 어린이와 함께 사찰을 찾을 때 훌륭한 안내서가 될 듯합니다. 사찰 안팎에 깃들어 있는 온갖 동식물 조형물을 소개하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경주 불국사엔 석가탑과 다보탑만 있는 게 아닙니다. 불국사 대웅전 처마에는 흰 코끼리가 있지요. 경북 포항 보경사에는 나무로 만든 사자 조각이 있습니다. 전남 해남 미황사의 기둥 초석엔 게와 자라 등이 새겨져있고요. 충남 공주 마곡사 천왕문에선 혀를 쑥 내밀어 콧물을 닦는 용(龍)도 볼 수 있습니다. 또 전남 영광 불갑사에는 기둥을 따라 내려오며 수달을 쫓는 용이 있는데요. 쫓는 용과 쫓기는 수달의 다급함이 얼마나 생생한지, 과거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를 방불케 할 정도입니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나도 이 사찰에 가본 적이 있는데, 왜 이런 걸 못 봤을까’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입니다.

불국사 대웅전 처마의 흰 코끼리(왼쪽)와 전남 영광 불갑사 기둥의 수달을 쫓는 용. /불광출판사 제공

저자 노승대씨는 1975년 광덕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0여년간 수행하다 하산한 이력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설명이 더 설득력이 있지요. 가령 사찰 주변에 생물이 많이 상징물로 깃들어있는 것은 임진왜란이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가혹한 현실세계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은 민초들에게 사찰은 ‘피난처’였다는 것이죠. 불교식 해석으로는 중생을 극락세계로 데려다주는 ‘반야용선’이 사찰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찰을 배[船]로 보니 그 주변은 바다가 된다는 것이지요. 도깨비, 삼신할미가 사찰에 깃들게 된 것은 불교 사찰이 모든 민간신앙까지 포용했기 때문이지요.

경북 문경 김룡사 명부전의 염라대왕상. 머리 위에 금강경을 이고 있다. /불광출판사 제공

노승대씨는 최근 ‘사찰에는…’의 속편격인 ‘사찰 속의 숨은 조연들’(불광출판사)도 펴냈습니다. 이번 책은 ‘명부전(冥府殿)의 존상들’ ‘절집의 외호신’ ‘보살과 나한’ 등으로 구분해서 사진과 함께 설명하지요. 영화 ‘신과 함께’에서 주인공이 저승에 갔을 때 심판하는 왕들이 바로 불교에서 나왔다는 걸 알 수 있지요. 또 사찰에 들어갈 때 만나는 눈알을 부라리는 사천왕, 금강역사 등이 인도에서 시작해 중국과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까지 어떻게 변모하며 전해졌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학술적으로 깊이 있게 사찰의 상징물을 공부하고 싶은 분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사찰에 살고 있는 스님들도 “우리도 무심히 지나친 걸 잘 정리했다”며 이 책을 주문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