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내포문화숲길' 정기 총회 후 스님들과 신부님들이 함께 손하트를 만들며 기념촬영했다. /내포문화숲길 제공

새해 들어 페이스북을 뒤적이다가 흥미로운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스님들과 신부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손가락 하트를 만들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내포문화숲길 정기 총회’ 기념사진이었습니다.

내포(內浦)란 충남 가야산 인근 지역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바다가 육지 안으로 쑥 들어와 있다는 뜻이지요. 지리적으로는 서산, 당진, 예산, 홍성을 가리킵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내포에 대해 “충청도에서는 내포(內浦)가 가장 좋다.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200리쯤에 가야산이 있다.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열 고을을 함께 내포라 한다. 지세가 한 모퉁이에 멀리 떨어져 있고 또 큰 길목이 아니므로 임진(壬辰)과 병자(丙子)의 두 차례 난리에도 여기에는 미치지 않았다. 땅이 기름지고 평평하다. 또 생선과 소금이 매우 흔하므로 부자가 많고 여러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 집이 많다”고 썼답니다.

내포문화숲길 안내도. 5가지 테마에 총연장 320킬로미터에 이른다. /내포문화숲길 제공

내포 지역은 또한 역사적으로 종교색이 강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지요. 불교로 보면 원효대사가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로 유학가려다가 해골물을 마시고 유학의 뜻을 접은 곳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한국 근현대 불교의 중흥조로 꼽히는 경허 스님과 만공 스님 등이 수행한 조계종 제7교구 교구본사인 수덕사의 관할 지역입니다.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마애삼존불도 이 지역에 있지요.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내포 지역은 ‘첫 단추’와 같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1821~1846) 신부님의 고향이 바로 솔뫼성지, 당진입니다. 내포 지역에는 솔뫼성지뿐 아니라 해미읍성 등 순교 성지가 즐비합니다. 엄청나게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내포 지역을 찾은 것도 이런 역사적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 지역이 불교와 천주교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기도 쉽지 않지요. 종교담당기자인 저도 수덕사 따로, 솔뫼성지와 해미성지 따로 가본 적은 있습니다만 한꺼번에 두 종교를 아우르는 순례 혹은 답사를 해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 스님들과 신부님들이 주축이 돼 사단법인 ‘내포문화숲길’을 만든 것이 벌써 10년이 넘었더군요.

시작은 2010년이었습니다. ‘내포문화숲길’ 초대 이사장인 수덕사 전 주지 옹산 스님께 문의해보니 당시 가야산 일대에 터널을 뚫고 차도(車道)를 내고 송전탑을 세우는 등 개발 움직임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개발하면 관광객의 접근성은 좋아지겠지만 원래의 고즈넉한 느낌은 사라지지요. 그래서 당시 옹산 스님이 나서서 수덕사 스님들을 중심으로 가야산 지키기 운동을 펼치다가 ‘내포문화숲길’ 사단법인까지 만들게 됐다고 합니다. 옹산 스님은 “선조들이 수천년 동안 다니면서 만들어진 산 길의 맛과 멋이 있는데 자동차가 다니는 대로를 뚫으면 다 망치겠다 싶어서 나서게 됐다”고 했습니다. 시작은 개발 반대였지만 결과는 더 멋진 내포문화숲길 가꾸기가 된 것이지요.

내포문화숲길 중 '원효 깨달음의 길'을 스님들과 신부님들을 비롯한 순례단이 걷고 있다. /내포문화숲길 제공

처음에는 가야산 국유림 내에 10킬로미터 코스로 시작했지만 사단법인이 만들어지고 계속 탐방로를 이어서 현재 ‘내포문화숲길’은 5개 테마 길, 총연장 320킬로미터에 이르는 탐방로가 이어지게 됐답니다. 5개 테마는 ‘원효 깨달음 길’ ‘내포 천주교 순례길’ ‘백제부흥군길’ ‘내포 역사인물 길’ ‘내포 동학길’ 등으로 구성되며 세부적으로는 31개 코스로 구성됩니다. ‘내포 역사인물 길’은 윤봉길 의사의 사당인 ‘충의사’에서 시작해 이응노 화백의 생가에 이르는 길입니다. 내포문화숲길에서는 좀 떨어져 있지만 만해 한용운 선생, 김좌진 장군의 생가도 충남 홍성에 있지요. 워낙 ‘스토리’가 풍부한 만큼 체험학습장으로도 인기가 높고 지난해 11월에는 ‘국가 숲길’로도 지정됐습니다. 한꺼번에 모두 답사하기는 너무 길지만 자신의 관심과 사정에 맞게 코스를 선택해 걷고 싶은 길이지요.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을 불교와 천주교가 함께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현재 사단법인 ‘내포문화숲길’ 이사진은 총 15명입니다. 그 가운데 이사장 도신 스님(서산 서광사 주지) 등 스님이 11명으로 가장 많습니다. 수덕사 전·현 주지를 비롯해 예산 향천사, 태안 태을암·흥주사, 홍성 석련사, 서산 간월암·일락사·망일사 등 내포 지역의 대표적 수덕사 소속 사찰 주지 스님들이 이사진에 포함돼 있네요.

내포문화숲길 중 '천주교 순례길' 탐방 모습. 스님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천주교 박해 당시의 수형도구를 체험하고 있다. /내포문화숲길 제공

그렇지만 나봉균(솔뫼성지 전담) 한광석(해미성지성당 주임) 신부님 등 천주교 사제도 3명입니다. 제가 본 사진은 연초에 이사들이 모여서 정기총회를 한 장면이었던 것입니다. 심심찮게 종교간 갈등이 벌어지곤 하는 세태에 비춰보면 ‘내포문화숲길’은 종교 화합의 모범 사례로 꼽을 만합니다.

스님들과 신부님들은 상대 종교의 성지를 순례하기도 한답니다. 불교 코스를 순례할 때에는 스님이 가이드가 되고, 천주교 코스는 신부님이 가이드를 맡는다고 하지요. 신부님 3명, 스님 3명으로 구성된 소모임도 만들어 상대 종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공동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답니다. 현 이사장인 도신 스님은 “처음엔 가야산이 무분별하게 개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작됐지만 4개 시군과 충남도까지 협조해주셔서 국가 숲길로도 지정돼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탐방 프로그램을 만들어 국민들이 내포문화숲길을 걸으면서 자연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