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탐방의 출발점인 일주문. 일주문 뒤로 소나무 사이로 '봉황문(사천왕문)'이 보인다. /김한수 기자

“자, 여기부터 해인사입니다. 해인(海印)이란 무슨 뜻일까요? 평등, 무차별 그리고 화합을 뜻합니다. 바다는 모든 물을 차별하지 않고 받아들이지요. 인(印)은 보통은 ‘도장’이란 뜻이지만 여기서는 ‘바라본다’는 뜻으로 새깁니다. 부처님 보시기엔 바다의 모든 생물이 다 평등하다는 것이지요.”

지난 10일 오후 경남 합천 해인사 일주문 앞. 해인사 승가대학에서 학인들을 가르치는 학감(學監) 법장 스님은 또렷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해인사가 19일부터 팔만대장경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기에 앞서 언론을 상대로 프리뷰하는 행사였습니다.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을 일반에 공개하면서 스님들이 설명하는 ‘해인사 투어’까지 만들었습니다. 이 투어는 해인사 일주문 밖 ‘세계문화유산 해인사 고려 대장경 판전’이란 기념 표지석 앞에서 시작해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법보전(法寶殿)까지 일직선으로 올라가면서 해인사 구석구석을 알려주는 코스입니다. 구체적으로 일주문, 봉황문, 국사단, 해탈문, 법계탑, 대적광전, 대비로전, 수다라장, 법보전 순으로 이어집니다. 저도 해인사를 몇차례 취재 때문에 간 적이 있지만 이번에 법장 스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새로 보게 됐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과거 봤던 해인사는 수박 겉핥기 였습니다. 법장 스님은 “해인사는 불교의 화엄세계를 건축적으로 설명하는 구조”라고 했습니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일주문 앞에서 해인사의 건축 구조에 대해 설명하는 승가대학 학감 법장 스님. /김한수 기자

자, 그럼 법장 스님의 설명을 따라 해인사 탐방에 나서보실까요. 먼저 일주문입니다. 한자로는 ‘一柱門’이라고 쓰지요. 문자 그대로라면 기둥이 하나여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기둥이 좌우에 한 개씩 두 개입니다. 스님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일반적으로 전통 건축물의 문도 기둥은 네 개입니다. 그러나 일주문은 좌우 일직선상에 두 개만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둘이 아니다[不二]’는 뜻에서 일주문이라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현판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조선말과 일제강점기 명필 해강 김규진의 글씨로 ‘가야산 해인사’라고 굵직하게 쓰여 있습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저 멀리 또다른 문과 계단이 보입니다. 스님은 “원래 법당 앞까지 총 108개 계단이 있었지만 보수공사를 하면서 계단 숫자는 좀 늘었다”고 합니다.

일주문에서 봉황문 사이 '소금단지'를 해인사 총무 진각 스님(오른쪽)과 이석심 종무실장이 설명하고 있다. 소금단지는 항아리가 아니라 바위의 중앙에 홈을 파고 소금을 묻는 곳이다. 과거 소금의 기운으로 화재를 막기 위해 설치했다. /김한수 기자

다음은 봉황문입니다. 그렇지만 직진하기 전에 볼 게 있습니다. 봉황문 직전 왼편엔 큰 돌이 놓여있고 기와 한 장이 뚜껑처럼 덮여있습니다. ‘소금단지’입니다. 해인사는 여러 차례 화재 피해를 입었는데 소금의 기운으로 불을 다스리기 위해 마련한 것이랍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물이 고여있더군요. 소금이 습기를 빨아들여 그리 된 모양입니다. 매년 단오 때면 소금을 새로 넣는답니다.

해인사 봉황문. '해인총림'이란 큰 글씨 현판이 걸렸다. 문 안엔 사천왕상 그림이 있어 '사천왕문'으로도 불린다. /김한수 기자

봉황문은 일주문과 달리 기둥이 네 개입니다. 안에 들어서면 사천왕이 눈을 부릅뜨고 있지요. 그래서 ‘사천왕문’이라고도 부른답니다. 스님은 사천왕을 절을 지키는 ‘경비원’에 비유했습니다. 일주문에서 봉황문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지던 길은 봉황문을 지나면 갑자기 지그재그로 꺾입니다. 그리고는 가파른 계단이 나타나고 그 위쪽에 ‘해탈문’이 나타납니다. 스님은 “봉황문에서 해탈문까지의 공간은 색계(色界) 즉 물질세계를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봉황문-해탈문 사이의 거리는 일주문-봉황문 사이보다 짧습니다. 물질세계는 그만큼 덧없고 짧다는 뜻이겠지요. 이 지그재그 길 역시 화엄세계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해인사 해탈문에서 봉황문쪽을 내려다본 모습. 일주문부터 일직선으로 오던 길이 지그재그로 꺾인다. 이 공간은 물질세계 즉 색계로, 인간세상의 굴곡을 상징한다고 한다. /김한수 기자

독자 여러분 가운데 경북 영주 부석사를 다녀온 분들이 계실 겁니다. 부석사도 일주문부터 죽 일직선으로 이어지던 길이 안양루 아래에서 왼쪽으로 살짝 꺾입니다. 계단을 통해 안양루에 올라서면 그 유명한 무량수전이 나오지요. 저는 항상 이 ‘꺾임’이 궁금했는데, 이번에 해인사 투어 도중 법장 스님 설명을 듣고 의문이 풀렸습니다. 우리 인생살이의 굴곡을 지그재그로 표현했다는 것이죠.

해탈문 아래에서 스님은 말했습니다. “이 아래에서는 저 해탈문 너머의 공간이 안 보이지요?” 지지고 볶고 사는 물질세계에서는 해탈 이후의 세계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이렇게 공간적으로 표현한 것이랍니다. 해탈문을 넘어서니 과연 하늘이 열린 듯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습니다. 구광루 앞 마당이지요. 일주문에서 봉황문까지는 돌이 깔린 길 양편으로 소나무 등이 우거져 좁았습니다. 그렇게 시야가 좁혀진 상태로 오다가 갑자기 공간이 확 열리니 더욱 극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해인사 해탈문.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색계에선 보이지 않는 세상이 해탈문을 통과해서 보이도록 설계된 것이다. /김한수 기자

해탈문에서 구광루까지의 공간은 ‘무색계(無色界)’ 즉 물질을 벗어난 세계를 상징한답니다. 그렇지만 아직 끝이 아닙니다. 구광루(九光樓)는 부처님의 지혜가 아홉 줄기 빛처럼 세상으로 뻗어간다는 뜻이랍니다. 이름처럼 원래는 누각이어서 그 아래를 통과해 올라가야 하지만 지금은 구광루 옆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가게 됩니다. 이제 비로소 대적광전이 나타납니다. 여기부터는 ‘법계(法界)’ 즉 부처님 법의 세상입니다.

해인사 대적광전. 해탈문와 구광루를 지나 올라오면 만날 수 있다. 팔만대장경을 모신 판전은 대적광전 뒤에 있다. /김한수 기자

보통 사찰들은 이곳 큰법당 앞에서 끝나지만 해인사는 여기에 더해 부처님 말씀을 모신 공간이 그 뒤에 또 있습니다. 흔히 불교에서 불·법·승을 세 가지 보배 즉 삼보(三寶)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에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통도사를 ‘불보종찰’, 열 여섯 명의 국사(國師)를 배출한 송광사를 ‘승보종찰’이라고 부르지요. 부처님 말씀 즉 팔만대장경을 소장한 해인사는 ‘법보종찰’입니다.

이제 더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비로소 대장경을 모신 판전을 만나게 됩니다. 판전은 앞뒤 두 건물로 구성되는데, 앞은 ‘수다라장’, 뒤는 ‘법보전’입니다. 지난 19일부터 매주 토·일요일 오전·오후 사전 예약을 통해 일반 탐방 코스로 개방되는 바로 그 공간입니다.

지난 10일 팔만대장경을 일반에 공개하는 것을 부처님께 알리는 '고불식' 후 해인사 스님들이 팔만대장경을 모신 판전으로 오르고 있다. /김한수 기자

법보전을 탐방한 후엔 하산할 차례입니다. 법장 스님은 “내려가면서 살펴야 할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불교에선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위로 지혜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이지요. 지금까지 올라온 길이 ‘상구보리’였다면 이제 ‘하화중생’ 차례입니다. 스님은 법보전과 수다라장의 부처님 가르침이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부처님과 구광루를 거치면서 무색계-색계-욕계로 퍼져나가는 것을 건축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팔만대장경을 일반에게 공개하는 첫날인 6월 19일 오전 법보전 탐방객들이 스님의 설명을 듣고 있다. /해인사 제공

법장 스님은 “과거 글을 모르는 백성들도 많았다. 이 때문에 화엄경 내용을 그림으로 풀어 설명한 ‘변상도(變相圖)’가 나타나게 됐다. 사찰 건축도 마찬가지다. 사찰에 들어서서 돌아갈 때까지 체험하는 공간 자체를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깨달을 수 있도록 디자인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로서는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그런 깊은 의미가 숨어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역시 아는만큼 보이더군요.

동국대에도 출강하는 법장 스님은 이런 해인사 건축구조 설명을 유튜브에도 ‘랜선 불적답사-가야산 해인사를 가다’란 제목으로 1,2편을 올려놓으셨더군요. 다른 사찰들도 건축구조와 각 사찰이 지닌 보배들을 잘 알려주는 설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