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동국대 '만해 아카이브' 구축 사업을 위해 10억원을 기증하는 협약식을 가진 이근창 대표와 윤성이 동국대 총장, 이 대표의 고교 은사 서윤길 동국대 명예교수(왼쪽부터)가 만해의 시비 앞에서 기념 촬영했다. /김한수 기자

“미래의 만해(萬海)를 키우는 일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청년 시절부터 50년 가까이 만해 한용운 선생을 흠모해온 중소기업인이 만해 학술 사업에 10억을 내놓는다. 경기 군포의 철강회사 한양스틸프라자 이근창(68) 대표는 19일 동국대(윤성이 총장)에서 ‘만해 아카이브 구축 사업 운영 협약식’을 가졌다. 이 대표는 올해부터 매년 2억원씩 5년간 10억원을 기증한다.

이 대표와 불교 그리고 만해의 인연은 1968년 서울 대동상고 야간부에 진학하면서 시작됐다. 1학년 담임교사는 훗날 동국대 교수가 된 서윤길(80) 선생님. 당시 조계종립 학교였던 대동상고에서 불교를 가르치는 교법사(敎法師)이기도 했던 서 선생님은 첫 시간부터 학생들의 정신에 죽비를 내리쳤다. “친구들은 태양빛 아래(주간부)에서 공부하는데, 여러분은 형광등 불빛 아래서 공부한다. 3년, 5년 후에도 이렇게 차이 나게 살 것인가?” 폐부를 찌르는 말씀에 감화된 이 대표는 선생님을 따르며 불교에도 푹 빠졌고 불교학생회는 삶의 중심이 됐다. 매주 일요일 삼선교 정각사를 찾아 교리 공부를 했고, 빈병을 모으고 주간지를 팔아 모은 돈으로 고아원과 노인정을 찾았다. 한양대 화학공학과로 진학해서도 불교학생회 활동에 열성이었다.

만해 한용운과는 1973년 발간된 한용운 전집을 통해 만났다. 당시 만해 동상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 회원들은 전집 판매에 나섰다. 이 대표는 “책을 팔려고 하니 내용을 읽게 됐고, 내용을 읽다가 ‘세상에 이런 분이 있었나?’ 하고 만해에 빠져들게 됐다”고 했다. 그 역시 이전엔 ‘님의 침묵’ ‘알 수 없어요’ 등 만해의 시 몇 편밖에 몰랐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일제강점기 수많은 지식인이 변절하는 가운데 끝까지 지조를 지킨 독립운동가, 수많은 논설과 소설뿐 아니라 그토록 아름다운 시를 썼던 위대한 시인의 면모까지 깨닫게 된 것. 이듬해부터 그가 주도해 불교학생회 선후배와 함께 매년 3·1절이면 서울 망우리 만해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만해 관련 학술 사업 지원은 60대 들어 본격 시작했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한양대 불교학생회 동문회 이름으로 ‘만해 한용운, 고난의 칼날에 서라’를 발간했고, 이듬해에는 대학생 대상 콘텐츠 공모전도 열었다. 공모전을 시행하면서 젊은 세대가 만해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이번에 동국대에 ‘만해 아카이브 구축’에 써달라며 기부한 이유이기도 하다. 만해에 관한 1차, 2차, 3차 모든 자료를 모아 디지털 자료화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대표는 “은사인 서 명예교수님의 권유로 만해 선생이 졸업했고, 이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동국대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자리를 함께한 은사 서윤길 동국대 명예교수는 “나는 말로 가르쳤는데, 이 대표는 행동으로 실천하니 부끄럽고 고맙다”고 말했다. 동국대 윤성이 총장은 “이 대표님의 귀한 뜻을 잘 받들어 훌륭한 아카이브를 만들도록 하겠다. 감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