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현경씨의 연극인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는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배우 이순재씨가 헌화 후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70년 연기 외길을 걸어온 연극배우 고(故) 오현경씨가 5일 영면에 들었다. 그와 함께 무대를 꾸몄던 동료들은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고인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고인의 영결식은 이날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야외공연장에서 대한민국연극인장으로 엄수됐다. 유족과 동료 연극인 100여 명이 참석했으며, 모두가 고인의 육성이 담긴 연극 ‘봄날’의 일부를 감상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생전 뛰어난 발음과 화술을 자랑했던 그가 “누구 있냐. 아직도 자빠져 자고 있어?”라는 대사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낭독하는 장면이었다.

이어 동료 연극인들이 연기에 대한 고인의 열정을 돌아보며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손정우 대한연극협회 회장은 “선생님은 암투병 중에도 연기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 스스로를 채찍질하셨다”며 “대사 한 줄이라도 틀리면 밤잠을 설칠 정도로 완벽을 추구하시면서 연극인의 자세를 보여주셨다”고 했다.

배구 오현경씨 영결식에서 배우 이순재씨가 헌화 하고 있다. /뉴시스
배우 이순재씨와 전무송씨가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대한민국연극인장으로 엄수된 배우 오현경씨의 영결식에 참석해 추모사를 듣고 있다. /뉴스1

배우 이순재씨도 고인을 추억했다. 극단 실험극장 창립동인으로 함께 활동하던 때를 회상하며 “우리는 국어사전을 펴놓고 화술을 공부할 정도로 화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어 “TBC 시작할 당시 함께했던 남자 배우들이 저와 고인을 포함해 6명 있다. 그중 김낙훈, 김동훈, 김성옥, 김순철이 다 자네를 기다리고 있다”며 “나도 곧 갈테니 우리 가서 다 같이 한번 만나세”라는 작별을 건넸다.

배우 정동환씨도 “열심히 준비한 연극을 감상하신 선생님이 ‘대사가 하나도 안 들린다’고 하셨을 때 그렇게도 야속하고 절망적이었다”며 “그 야속함과 절망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시간이 저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선생님 만난 반백년 행복하고 감사했다. 가르침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배우 정동환씨가 조사를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별세한 배우 오현경씨의 딸인 배우 오지혜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버지의 길을 따라 배우로 활동 중인 딸 오지혜씨는 “지난해 머리 수술을 받으시고 인지능력을 테스트하는데 ‘직업이 뭐냐’고 물으니 아주 힘 있게 배우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며 “아버지는 연기를 종교처럼 품고 한길을 걸어오신 분”이라고 기억했다.

한편 이날 고인은 생전 무대를 올렸던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본 뒤 식장을 떠났다. 유족들이 고인의 영정을 들었고 연극인들이 뒤따르며 마지막을 배웅했다. 앞서 고인은 작년 8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투병 생활을 해오다 지난 1일 8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천안공원묘원으로 운구돼 영원한 안식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