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서울 이태원에서 만난 발레리노 다닐 심킨. / 장련성 기자

그에게 매혹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 무대 위에서 춤출 때의 그는 손끝부터 발끝까지, 근육 섬유세포 하나하나까지 오직 발레만을 위해 섬세하게 빚어진 천상의 피조물같다.

다닐 심킨(35). 빛나는 금발과 조각 같은 외모의 이 남자는 아마도 지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있는 발레리노일 것이다. 프랑스 ‘르 피가로’는 그를 ‘바리시니코프의 재림’이라고 불렀고, 뉴욕타임스는 ‘공중을 날 때 가장 행복한 남자’라고 했다.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에서 10년, 독일 베를린국립발레에서 5년을 보내며 세계 최고 무용수로 명성을 쌓아온 그가 지금 한국에 와 있다. 19일 서울 마포문화재단 ‘아트홀 맥’에서 열리는 제20회 서울국제무용콩쿠르(SIDC) 폐막식 월드 갈라 공연에서 이 남자의 무대 위 실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20주년을 맞은 SIDC의 심사위원이자 갈라 공연의 무용수로 방한한 심킨을 지난 15일 토요일 서울 이태원에서 만났다.

◇콩쿠르의 왕자, 처음 심사위원 되다

–세계 최고 발레단들이 늘 당신을 원하죠. 어떻게 서울에 오게 됐나요?

“한국을 사랑하며 한국에 오는 것이 늘 즐겁습니다. 벌써 17년 전 한국에서 갈라 공연 무대에 선 적이 있어요. 특히 저는 이번에 서울국제무용콩쿠르(SIDC)에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처음 참여합니다. 제겐 큰 의미가 있어요. 정규 발레학교를 다니지 않은 제게 콩쿠르는 무척 중요했어요. 어머니는 제가 목표를 갖도록 12살부터 18살까지 큰 것만 10개의 발레 콩쿠르에 참가하게 하셨고, 그 경험이 제 경력의 원천이 됐습니다.”

심킨은 러시아 노보스비르스크의 발레 가족에 태어나 독일 비스바덴에서 자랐다. 부모는 모두 비스바덴 발레단의 무용수였고, 어머니가 5살 때부터 그에게 발레를 가르쳤다. 그는 세계 4대 콩쿠르로 꼽히는 미국 잭슨 콩쿠르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그의 공연 영상은 온라인에 퍼져나가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재능있고 열정적인 젊은 무용수들을 만나는 일이 여전히 설레이나요?

“물론입니다. 발레 콩쿠르는 정말 중요해요. 젊은 무용수가 다음 단계로 올라서도록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죠. 또 앞으로 커리어를 함께 할 평생의 친구들을 만날 기회입니다. 동시에 커다란 압박감 속에 자신을 시험하고 목표를 달성하며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죠. 경쟁 자체보다 그 과정에 콩쿠르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서울국제무용콩쿠르 갈라 공연에 참석하는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수석 무용수 출신 다닐 심킨의 'Everything Doesn't Happen at Once' 공연 장면. /아메리칸발레시어터 홈페이지 ⓒPhoto Gene Schiavone

–서울국제무용콩쿠르(SIDC)의 독창적인 점이라면요?

“가장 독창적이며 뛰어난 점은 매년 열린다는 거예요. 벌써 20회째를 맞이했잖아요. 스무 번 콩쿠르를 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대회는 세계적으로도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만큼 이 콩쿠르 출신의 무용수와 콩쿠르 자체의 경험과 명성이 축적된 거죠. 한국은 SIDC를 충분히 자랑스러워할만 합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전통 있는 이 대회에서 경쟁하고 또 우승한다는 건 젊은 무용수들에게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 될 거예요.”

◇”내 친구 김기민, 그의 ‘바질’은 최고”

–최근엔 어떤 무대에 섰나요?

“지난 3월과 4월 호주국립발레단과 함께 누레예프(1938~1993·구 소련 출신 전설적 발레리노)가 안무한 ‘돈키호테’ 무대에 섰어요. 저는 ‘돈키호테’의 ‘바질’ 역할을 18살 때부터 해왔죠, 하하. 하지만 이번엔 한 단계 더 높은 도전이었어요. 누레예프의 안무는 신체를 학대한다 할 만큼 도전적이고, 기교를 요구하며, 아름답죠. 당연히 더 어렵고요. 5월에는 로마 오페라에서 ‘말괄량이 길들이기’ 무대에 섰고, 7월엔 뉴욕 메트에서 ‘돈키호테’를 공연하고 호주로 날아가 라트만스키 안무의 ‘할레퀴나데(Halequinade)’ 전막을 공연했죠.”

–'돈키호테’의 ‘바질’은 거의 당신의 이름과 동의어라 할 만큼 최고의 역할이죠. 한국 출신 러시아 마린스키 수석 무용수 김기민씨도 바질을 “내게 딱 맞는 역할”이라고 하더군요. 김기민의 공연을 본 적 있나요?

“그럼요, 그는 정말 대단해요. 무엇보다도 그는 저의 아주 좋은 친구이고 아름다운 영혼이죠. 동시에 여러분이 아는 그 세대 최고의 무용수 중 한 명입니다. 저는 그가 정말 독창적이고, 최고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의 점프와 테크닉, 신체적 능력 자체가 다른 사람들은 넘볼 수 없는 수준입니다. 그의 공연은 마치 ‘최고 수준(top level)이란 이런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죠.”

◇”새 환경, 새 도전의 자극을 즐긴다”

과거 인터뷰에서 그는 “바리시니코프(75·구 소련 라트비아 출신의 전설적 발레리노)의 테크닉, 누레예프의 무대 위 카리스마, 아버지의 성실함을 닮고 싶다”며 “이 세 사람을 한 데 합친다면 완벽한 발레리노가 될 것이고, 그런 무용수가 되고 싶다”고 했었다.

–5년 전 당신이 ABT를 떠나 베를린으로 간다는 소식에 ‘이제 그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룬 걸까’ 생각했어요.

“예술가에겐 계속 자극이 필요해요. 어디서든 언젠가 자신이 받는 충격이 포화점에 도달하죠. 그럴 때는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던져 넣어 자극을 유지해야 합니다. 불편함을 겪어야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다른 세계,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죠. 그럴 때마다 뇌가 새로운 자극을 받고, 그런 충격이 쌓이면 뇌가 변화하는 것 같아요.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고무적인 일입니다.”

15일 오후 서울 이태원에서 만난 발레리노 다닐 심킨. / 장련성 기자

–베를린은 당신의 커리어에서 어떤 의미인가요?

“그곳에서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보냈어요. 모두가 힘들었죠. 다른 한편으로 저는 큰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앞으로의 목표가 명확해졌거든요. 베를린은 이질적 문화가 흘러들어 섞이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용광로 같은 곳이죠. 베를린의 테크노컬쳐, 아주 특별한 관점의 젊은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그 경험을 통해 앞으로 무용 프로듀서로서 활동을 생각하게 됐어요. 제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과도기였습니다.”

◇”예술로 내 앞의 사람들과 다른 기여를”

–도전을 즐기는군요?

“바리시니코프, 누레예프, 또 제 아버지처럼 제 앞에 왔던 사람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세상에 주고 싶어요. 그것이 예술가들의 삶이 가진 아름다움이기도 합니다.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것을 밀어붙이고 성취해야 합니다. 저는 누군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일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해요. 극복해낼 때 성취감을 느낍니다.”

–19일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월드 갈라 무대에선 어떤 작품을 보여주나요?

“우선 ‘돈키호테’의 ‘바질’의 춤을 춥니다. ‘3연속 540도 회전’(심킨이 세계 최초로 성공했고, 여전히 공식 무대에서 성공한 발레리노는 심킨 뿐이다)도 보여드릴 겁니다. 당신이 무언가를 추가하면 사람들이 그걸 받아 더 발전시키기 때문에 예술은 아름답죠. 저의 또 다른 레퍼토리인 ‘르 코르셰어’도 공연합니다. 12살 때 처음 배웠는데 23년째 추고 있네요. 저의 또 다른 시그니처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솔로 작품도 공연합니다.”

–'스튜디오 심킨’을 설립했죠. 프로듀서로서의 계획은요?

“현대 발레와 예술의 흐름과 밀도에 무언가를 보태고 싶습니다. 프로듀서는 다양한 요소를 조합하는 직업이죠.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고 새로운 장소에서 무용을 재배치해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지 다시 상상하려고 노력합니다. 지금의 무용은 늘 객석을 향한 무대 위에 한정돼 있죠.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는데, 그에 맞는 작품을 만들 시스템은 아직 없습니다. 발레도 처음엔 궁정 귀족들의 사교 예술에서 관객과 분리된 무대 예술이 됐죠.”

◇”무용과 신기술 결합에 새로운 가능성”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시기 다닐 심킨의 '꿈(The Dream)' 공연. /아메리칸발레시어터 ⓒPhoto Gene Schiavone

–무용을 신기술과 결합해 무대 밖에서 가능한 체험으로 만드는 건가요?

“그렇죠. 무용이 좀 더 현대적인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말이죠. 예를 들어 저는 이머시브(Immersive·관객 참여 몰입) 댄스 경험을 만들고 싶어요. 9월에 공개 예정인 ‘원(One)’이라는 단편영화의 경우 영화 제작과 신고전주의 안무를 결합했어요. 현실의 무대에서 실제로 보여주기에는 너무 긴 솔로입니다. 구겐하임 미술관에 실시간 비디오 프로젝션과 3D 매핑을 사용한 댄스 설치 작업도 진행했습니다.”

–지금까지 무대에서 보여준 춤과는 전혀 다른 작업이 되겠군요.

“일본에 있는 예술의 섬 ‘나오시마’를 방문했을 때 저는 예술적 창조와 경험이 제 안의 정신적 공허함을 채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춤은 매우 보편적 카타르시스의 순간을 만들고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죠. 춤은 본래 샤머니즘 의식의 일부였어요. 젊은이들의 클럽 막춤 한 가운데 프로 무용수들이 트로이의 목마처럼 나타나며 융합되는 공연, 가상현실(VR)과 요리가 춤과 결합된 공연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도를 이어가다 보면, 그 모든 것들 사이에서 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새로운 기술과 요소를 당신의 춤에 조합해서 세상에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가요?

“예술의 흐름에 무언가를 더하고 싶어요. 춤이 실제로 아름답다는 것,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다는 것,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더 많은 청중(audience)에게 다가가고 싶어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누구에게나 감동을 줄 수 있는 무용의 보편적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어요.”

–한국 무용수들과도 협업도 생각하시나요?

“정말 좋은 일이 될 겁니다. 저는 아름다운 한국 무용수들을 정말 많이 만났습니다. 최근에도 ABT에 아주 젊고 아름다운 한국 무용수 한 분이 합류했죠. 아, K팝 그룹과의 콜라보도 대환영입니다.”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뭔가요?

“저는 불고기(Korean Barbeque)를 정말 좋아해요. 뉴욕 ABT에 있을 때도 ABT 의 한국 친구들과 자주 먹으러 다니곤 했죠.”

-이번에 꼭 서울 최고의 불고기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네, 하하. 꼭 찾아내서 가볼게요. 19일 수요일 공연, 저도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국 관객들에게 저의 춤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흥분되고, 또 어떤 평가를 해주실 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