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장기하가 첫 산문집을 내고 9일 온라인 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우리를 괴롭히는 생각 중에서 이렇든 저렇든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문학동네

“시선을 화면 어디에 둘까요?”

가수 장기하(38)가 첫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문학동네)를 내고 9일 간담회를 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온라인 화상 회의 프로그램인 줌(Zoom)에 마련한 비대면 만남이었다.그는 콧수염과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모자를 눌러쓴 채 카메라 앞에 앉았다. 책 표지에 실린 말끔한 정장 차림은 온데간데없었다. 2008년 히트곡 ‘싸구려 커피’로 데뷔한 베테랑 가수도 막상 온라인으로 실시간 진행한 간담회는 낯선 듯했다.

문학동네 첫 에세이집 펴낸 가수 장기하

산문집 서문은 “나는 책을 잘 못 읽는다”는 고백에서 출발한다. “일단 속도가 느리다. 대부분의 경우 몇 줄 읽다 보면 딴 생각에 빠진다”는 것이 이유다. 간담회에서도 그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노래도 완성하지 않고 버리는데, 글쓰기는 익숙해지기까지 더욱 힘들었다. 세 줄만 쓰고서 다음 날까지 한 줄도 쓰지 못한 적도 있다”고 했다. 장기하는 “할아버지께서 큰 서점을 운영하셨는데도 책 읽는 습관을 들이지 못해 죄송스럽기도 하다”고 했다. 2017년 세상을 떠난 장하구 전 종로서적 회장이 그의 친할아버지다.

장기하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라고도 고백했다. 산문집을 쓰는 기간에도 ‘1Q84’ 같은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집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했다. 장기하는 “지극히 하찮게 보이는 소재마저 재미있게 쓴다는 점에서 하루키는 에세이의 최고봉 같다”고 평했다. 이번 책에서도 하루키의 에세이와 비틀스·산울림의 음반 등 그의 복고적 취향이 드러난다.

문학동네 피플/첫 에세이집 펴낸 장기하

냉장고와 라면 끓이기처럼 일상적 소재에서 얘깃거리를 뽑아낸 글이 적지 않다. 그가 사숙하는 하루키와도 묘하게 닮았다. 그는 “'쌀밥'이나 ‘등산은 왜 할까’처럼 발표곡들도 우리 주변의 흔한 사물이나 일상에서 출발한 경우가 많다”면서 “어렵고 현학적이고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주제들은 범접할 수도 없고 엄두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연예인을 향한 관심은 아무래도 연애사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책에서 특정인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드문드문 지나가듯이 쓴 구절은 적지 않다. “연애가 끝나는 것에 대해서도 별로 슬퍼했던 기억이 없다”거나 “연인과 함께 달리기를 하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일 것 같다. 나는 여태 그래 본 적이 없다”는 식이다. 10시간씩 술 마신 적이 있는 두주불사(斗酒不辭)형 애주가라든지, 스마트폰을 쓰지 않고 ‘멍 때릴 때’ 작곡도 잘된다는 고백도 담겼다.

문학동네 첫 에세이집 펴낸 가수 장기하


그는 책에 ‘국소성 이긴장증’이라는 희소병을 앓고 있다고도 썼다. 신체 일부분이 근육 수축으로 운동 장애를 일으키는 병이다.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을 통해 가수로 데뷔하기 전, 그는 인디 록 밴드 ‘눈뜨고코베인’에서 드럼을 쳤다. 하지만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왼손에 자꾸 힘이 들어가면서 스틱을 꽉 쥐게 되는 증세 때문에 드러머의 꿈을 포기했다. ‘장기하와 얼굴들’ 활동 초기에도 기타를 쳤지만 왼손에 힘이 들어가는 바람에 결국 연주를 접었다. 하지만 장기하는 “이 병이 내게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기타리스트를 영입하고, 무대에서 자유롭게 퍼포먼스도 하는 등 예상 외의 소득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애어른스럽게 보이는 능청과 달관, 낙관이야말로 에세이집에서 느낄 수 있는 묘한 정서다. 그는 “본래 남을 위로하는 일에는 서툰 편”이라며 “노래와 글쓰기 모두 나 자신을 체계적으로 위로하기 위한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