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과에서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왼쪽 뇌 상단부를 향해 자기장 에너지를 쏘는 TMS 시술을 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25살 청년 박씨는 1년 전부터 외출하지 않고 주로 방에서만 지냈다. 다니던 대학은 휴학했다. 온종일 잠자는 시간이 늘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데려가 진료를 받게 한 결과, 우울증 진단이 나왔다. 약물을 매일 챙겨 먹지 않은 탓에 증세는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다. 그랬던 박씨가 최근 외출이 늘었고, 운동도 시작했다. 머리에 자기장을 쏘는 치료를 받고 나서다.

◇왼쪽 뇌 앞쪽 감정 관할

요즘 우울증 환자에게 두개골 밖에서 자기장을 쏴주는 치료가 활성화되고 있다. 경두개 자기자극술(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로, 통상 티엠에스(TMS)라고 부른다. 자기장 치료는 뇌 영역별로 맡고 있는 기능이 구체적으로 밝혀지면서 시작됐다. 왼쪽 뇌 앞쪽에 뇌졸중이 생긴 환자는 우울증을 세게 앓는다. 반면, 반대쪽 오른쪽 뇌 앞쪽 뇌졸중 환자는 되레 기분이 들뜨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현상을 뇌 영역 연구로 분석한 결과, 정신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 중 왼쪽 뇌 앞쪽, 즉 전(前)전두엽이 판단·의욕·관심 등의 정신 기능을 관할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부위 기능이 떨어지면 행복감을 주는 세로토닌-도파민 회로가 비활성화돼 우울증이 오는 것으로 추정한다.

뇌에서 정신 기능을 관할하는 왼쪽 전(前)전두엽(좌측 뇌 상단 앞부분)에 전자자기장 코일을 통해 자기장 에너지를 반복적으로 쏘아 주면, 행복감을 주는 세로토닌-도파민 회로가 활성화되면서 우울증이 개선된다.

석정호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런 원리로 왼쪽 전전두엽에 특정 주파수의 자기장을 쏘아 자극을 주면 뇌 기능이 활성화돼 우울감이 개선되는 것을 알게 됐다”며 “외래에서 이런 치료가 가능할 수 있게 자기장 발사 장치를 두개골 밖 두피에 밀착해 자기장을 쏘는 TMS가 등장했다”고 말했다. TMS는 주로 우울증 약물 치료로 효과를 못 봤거나, 약물과 병용하여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할 때, 약물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 등에게 쓰인다.

◇자기장 쏘아 우울증 개선

TMS 장비 회사에 따라 자기장을 쏘는 방식과 일정은 다르다. 환자가 매일 병원에 가서 맞기도 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 맞는 경우도 있다. 시간은 몇 분에서 40분 걸린다. 통상 20여 회 맞는다. 이마 근처 두피에 접촉되는 자기장 발생 코일이 1㎜만 떨어져도 자기장이 제대로 전달 안 될 수 있기에 시술 교육을 받은 의료진이 위치를 정확히 잡고 시행해야 한다.

최관우 청담삼성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대개 4번 정도 자기장 치료를 받고 나면 우울감이 개선되기 시작하고, 뭔가를 하겠다는 동기 유발 의욕이 올라간다”며 “치료가 다 끝나고 우울증 개선 효과가 얼마나 오래갈지는 연구 중”이라고 답했다. 효과 지속을 위해 첫 치료 몇 개월 뒤 추가 부스터 시술을 하는 경우도 있다.

TMS는 인체에 무해하기에 우울증 청소년, 수유하는 산후우울증 여성 등에게도 쓰인다. 최근에는 성인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 환자에게 TMS를 썼더니 증상 호전을 보았다는 연구도 나왔다. 인지 기능이 떨어진 고령자에게 썼더니, 인지 기능이 좋아졌고, 불면증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보고도 있다. 의학계에서는 TMS뿐만 아니라, 초음파를 뇌에 쏘거나, 미세 전기를 흘려 뇌피질을 자극하는 방식의 다양한 신경중재술(neuromodulation)이 뇌기능 저하 개선에 다양하게 쓰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석정호 교수는 “자기장 주파수를 조정해 쏘면 되레 해당 뇌 부위 기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며 “자기장이 인간 정신 감정을 조절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