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전 9시 45분. 개장을 15분 앞둔 경기도 안양 홈플러스 평촌점 입구에 손님 2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오전 10시, 마침내 직원이 셔터를 올리고 문을 열었다. 손님들이 잰걸음으로 입장했다. 몇몇은 뛰어들어 갔다. “위험하니 뛰지 마세요”라는 직원 안내가 무색했다. 민망했지만 마음이 급해진 기자도 이들과 함께 뛰었다. 목표는 지하 1층 즉석식품코너에서 한 마리 6990원에 판매하는 ‘당당치킨’. 광복절이자 말복이었던 이날 홈플러스는 당당치킨을 1000원 추가 할인된 5990원에 전국 매장에서 5000마리 한정 판매했다.

당당치킨을 사려는 사람들이 지난 15일 홈플러스 평촌점 입구에서 개장을 기다리며 줄 서 있다./김성윤 기자

직원이 ‘해당 차수 프라이드 치킨 선착순 종료되었습니다’라고 적힌 입간판을 당당치킨 대기줄 18번째 손님 뒤에 세웠다. 직원은 “오전 11시 판매하는 치킨 수량은 18마리”라며 “다음 차수는 오후 1시”라고 했다(1일 판매 수량과 시간은 매장마다 다름). 한 남성이 “겨우 18마리? 장난하나!”라고 고함쳤다. 장년 여성 둘은 “장이나 봐서 집에 돌아가야겠다”며 허탈해했다. 21번째였던 기자도 구입을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홈플러스가 한 마리 6990원에 내놓은 당당치킨이 ‘오픈런(구매를 위해 매장이 열리자마자 달리는 현상)’까지 벌어질 만큼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당당치킨은 지난 6월 30일 출시 후 한 달 만에 32만 마리, 1분에 5마리꼴로 팔렸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SNS)에는 당당치킨 시식 후기가 쏟아지고 있다. 온라인 검색량도 폭증했다. 당당치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웃돈을 붙여 되파는 경우도 등장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도 이른바 ‘가성비 치킨’ 열풍에 합류했다. 이마트는 18일부터 24일까지 ‘후라이드치킨’을 5980원에 판매한다. 이마트는 지난 7월 초 9980원짜리 ‘5분치킨’을 내놓으며 경쟁에 뛰어들었고, 7월 14일부터 2주간 6980원에 할인 판매해왔는데 이번에 추가로 가격을 내리는 것이다. 후라이드 치킨 6만 마리를 점포당 하루 50~100마리씩 오전과 오후 2차례 판매한다. 롯데마트도 기존 1만5800원짜리 ‘New 한통 가아아득 치킨(한통치킨)’을 11일부터 일주일간 44% 할인한 8800원에 한시적으로 판매했다.

당당치킨은 1인당 1마리씩 구매 가능하다./김성윤 기자

당당치킨의 인기 요인은 가격. 2만원을 훌쩍 넘어 3만원대에 육박하는 프랜차이즈 치킨보다 훨씬 저렴하다. 대형마트 가성비 치킨은 12년 전에도 있었다. 롯데마트가 2010년 판매한 ‘통큰치킨’이다. 한 마리 5000원이란 파격적 가격으로 당시 1만원 중·후반대였던 프랜차이즈 치킨보다 훨씬 저렴해 화제를 모았지만, 출시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사라졌다. “대기업이 자영업자를 위협하는 횡포”라며 거세게 반발한 프랜차이즈 업계 때문이었다. 당시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 롯데마트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등 정치권과 시민단체도 비판 목소리를 냈다.

통큰치킨과 달리 당당치킨은 당당하게 판매를 이어가고 있다. 프랜차이즈들은 가성비 치킨이 ‘미끼 상품’이라며 통큰치킨 때와 같은 논리로 비판하고 있지만, 소비자에게 먹히지 않고 있다. 가파르게 오른 물가에 가성비 제품에 대한 소비자 선호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3만원 치킨 시대를 연 프랜차이즈 업계에 대한 소비자 반발이 거세다.

프랜차이즈 치킨 불매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보이콧 프랜차이즈 치킨’ ‘주문 안 합니다’ ‘먹지 않습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올라왔다. 2019년 일본 제품 불매 운동 당시 ‘노 재팬(No Japan)’ 포스터를 패러디했다. 포스터에는 ‘통큰치킨을 잃고 12년, 치킨 값 3만 원 시대, 소비자는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라는 문구도 적혀있다.

치킨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음식평론가 강지영씨는 “과거 치킨은 특식이나 별식으로 여겨졌지만, 요즘은 흔하게 매일 먹는 간식이나 야식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더욱 가격에 민감하다”고 했다. 정부가 지난 2월 치솟는 외식 물가 안정화를 위해 12개 주요 외식품목 가격을 주 단위로 조사해 공개하면서 치킨을 김밥·햄버거·죽과 함께 4대 관리품목으로 지정해 더 상세한 내용을 공개하기로 한 것에서도 치킨의 달라진 위상을 알 수 있다.

에어프라이어는 대형마트 가성비 치킨의 든든한 우군이다. 일부 배달시키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소비자가 직접 집에 들고 와 먹는 당당치킨은 튀겨서 바로 배달하는 프랜차이즈 치킨보다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에어프라이어가 12년 전 통큰치킨이 나왔을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보편화됐다. 에어프라이어는 ‘튀김 심폐소생기’라는 별명이 붙었을 만큼 튀김 음식 조리 능력이 탁월하다.

당당치킨을 에어프라이어에 데우니 프랜차이즈 치킨에 뒤지지 않는 맛이었다./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기자는 16일 당당치킨 구입에 재도전해 성공했다. 당당치킨을 에어프라이어에 섭씨 180도에서 6분 데웠다. 다소 두꺼운 편인 튀김옷이 갓 구운 듯 바삭했다. 살은 심심한 맛으로, 한상인 홈플러스 메뉴개발총괄은 한 인터뷰에서 “염지(닭고기를 소금 등 조미료에 절이는 과정)를 약하게 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지더라도 육즙과 식감이 오래 살아있게 했다”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건강한 맛’으로, 입맛에 따라 호불호가 있을 수는 있지만 평균적인 프랜차이즈 치킨과 비교해 품질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마트 문 열리자마자 달리고 한 시간을 기다렸으니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