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셰프’의 주인공 애덤 존스. 천재 셰프 존스는 폭력적 성향을 지녔다. / 와인스타인 컴퍼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음식 영화 ‘더 셰프’(원제 Burnt)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유명 배우를 잔뜩 동원해 찍었지만 재미가 하나도 없다. 레스토랑 세계의 클리셰를 숟가락으로 떠 그대로 스크린에 옮겼으니 진부함이 넘쳐난다.

미국인 애덤 존스(브래들리 쿠퍼 분)는 자수성가형 천재 셰프이지만 술과 마약을 일삼는 망나니다. 일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요리사를 다그치고 접시를 집어던지는 등 폭력적인 성향도 지녔다. 그는 원래 파리에서 요리 스승의 레스토랑(미슐랭 별 두 개)을 꾸려 왔으나 홀연히 잠적해 멀쩡하던 사업체를 침몰시키고 스승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후 나름의 고행이랍시고 루이지애나에서 굴 백만 개를 까며 술도 마약도 다 끊은 뒤, 애덤 존스는 런던으로 향해 권토중래를 노린다. 옛 동료들과 올스타 팀을 꾸려 미슐랭 별 셋을 따내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그동안 쌓은 업보가 너무 많고 유행을 참고할 생각도 하지 않아 고전하고, 이내 더러운 성질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몇 사람의 유명 셰프를 떠올렸다. 첫 번째 인물은 고든 램지다. 맞다. 국산 맥주 광고에 출연해 ‘이모!’를 외치는 인물로, 영국인 셰프다. 한때 최대 열여섯 개의 미슐랭 별을 가졌을 정도로 요리를 잘하지만(현재는 일곱 개), 우리로 치면 ‘욕쟁이 할머니’ 같은 캐릭터로 자리를 굳혔다. ‘헬스 키친’이나 ‘키친 나이트메어’ 등의 요리 쇼를 통해 영화의 애덤 존스처럼 쌍욕을 하며 요리사를 괴롭히는 모습이 인기를 누렸다. 올 1월 고가 햄버거 레스토랑 ‘고든 램지 버거’를 잠실 롯데월드몰 지하에 열었다.

인정사정 보지 않고 욕을 퍼부어 젊은 요리사들의 눈물을 빼는 고든 램지이지만, 사실 그의 눈에서 눈물을 쏙 뺀 셰프도 있다. 바로 스승인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다. 그는 서른두 살의 젊은 나이로 영국 최초이자 세계 최연소 미슐랭 별 셋을 받은 요리 천재인 한편, 긴 곱슬머리와 입에서 떼지 않는 담배로 록 스타 같은 이미지를 구축했다. 덕분에 음식과 별개로 요리사 개인의 브랜드화에 성공해 ‘세계 최초의 셀러브리티 셰프’라는 칭호를 누려 왔다. 그런 가운데 1999년, ‘좀 더 개인적인 삶을 살고 싶다’며 돌연 별을 모두 반납하고 은퇴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세 번째 인물은 2018년 세상을 떠난 앤서니 보댕이다. 화이트나 램지처럼 미슐랭 별을 받는 수준의 셰프는 아니었지만, 그는 칼과 불만큼이나 말과 글을 잘 다뤘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도 얼핏얼핏 보여주는, 술과 약에 찌든 레스토랑 주방의 세계를 그려낸 책 ‘키친 컨피덴셜’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여행 작가로 변신해 ‘노 리저베이션’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의 음식 문화를 가감 없이 조명해 큰 인기를 누렸다.

그래서 이처럼 유명한 셰프가 만드는 요리는 맛이 있을까? 경험에 의하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순수하게 감각적인 차원에서 말하자면 당연히 맛있다. 최고의 식재료를 최고의 기술로 요리하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각각의 요리도 맛이 있지만, 특히 코스를 먹을 때 두세 시간씩 펼쳐지는 전체의 조화는 때로 일생일대의 경험으로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감정적인 차원에서는 맛이 없는 경우도 많다. 아니, 맛을 느끼기가 피로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레스토랑의 요리는 셰프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오히려 셰프는 전체의 흐름만 관리하고 요리는 수많은 요리사들이 한다. 그런데 이들이 영화에서처럼 오랜 시간 셰프의 정신 및 육체적 학대를 견뎌가며 일한다면? 보기엔 그럴싸한 요리일지라도 피로함이 묻어나는 경우가 드물지는 않다. 그런 요리를 심심치 않게 먹었다.

악한을 제대로 응징하지 않음으로써 ‘더 셰프’는 현실의 응시를 거부한다. 보여주지는 않지만 영화는 애덤 존스의 미슐랭 별 셋이라는 해피 엔딩을 향해 나아간다. 재미없는 영화를 보고 오늘도 레스토랑에서 꿈을 위해 매진할 젊은 요리사들을 생각했다. 제발 저렇게 실력만 믿고 개차반인 셰프 밑에서 일하지만은 않았으면. 음식평론가는 오늘도 걱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