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현동 '한나겸키친'의 톳밥(위)과 떡갈비./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상에는 반찬이 귀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은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다. 밤 9시가 넘어서야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저녁을 먹었다. 어머니는 반찬을 할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 김치찌개 같은 것을 크게 끓여 흰밥 위에 가득 담아 먹었다. 그래도 늘 상을 지키던 반찬이 있었다. 어묵 볶음이었다. 경상도식으로 물엿과 고춧가루를 잔뜩 넣어서 볶기도 했고, 간장과 양파를 넣고 간간이 졸이기도 했다. 외국에 나가 혼자 살 적에는 반찬이 없었다. 반찬을 나눠 먹을 이가 없었다. 밥상이 외로울 때 생각나는 것은 대단한 이름을 가진 것들이 아니었다. 밥 한 숟가락에 한 젓가락을 차지하던 이름 없는 반찬이었다.

시대가 변했다. 전염병은 식문화를 바꿨다. 외식을 하던 사람들이 집밥을 찾는다. 매번 밥을 해먹기는 번거로우니 덩달아 반찬가게가 주목을 받는다. 서울 대치동 ‘매일식품관’은 아마 가장 트렌드를 앞서가는 반찬가게 중 하나일 것이다. 대치동 학원가에 자리한 이 집은 한옥을 테마로 잡은 외양부터 눈에 띈다. 커다란 매장에 들어가니 반찬이 아니라 먼저 와인이 높은 장식장에 자리했다. 반찬에 어울리는 와인을 함께 파는 것이었다.

반찬 역시 와인을 곁들일 만한 일품 요리가 많다. 오징어숙회, LA갈비, 닭강정 등 일반 반찬가게에서 흔히 보기 힘든 것들이다. 닭다리살을 튀겨 빨간 양념을 묻힌 닭강정은 살집이 두껍고 달고 매콤한 소스가 친근하게 다가왔다. 두부제육김치는 김치에 돼지고기를 넣어 빨갛게 볶고 두부를 나란히 줄 세웠다. 단맛이 많지 않아 많이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고 양이 넉넉해 두부를 다 먹고도 제육김치가 한참 남았다. 큰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부대찌개는 사골육수를 따로 담고 각종 재료를 촘촘히 쌓아놓은 화려한 외관에 ‘이런 음식은 해먹긴 힘들지’란 생각이 들었다.

강남구청역 1번 출구 근처 ‘마마리마켓’은 외국에서 경력을 쌓은 요리사가 만든 반찬가게로 유명하다. 반찬을 진열해 놓은 홀은 작지만 그 뒤로 놓인 주방은 웬만한 식당 크기를 훨씬 넘어선다. 주방에선 젊은 요리사 여럿이 합을 맞추어 불에 프라이팬을 돌리고 큰 칼을 도마에 내려찍고 있었다. 그 기운을 느끼며 반찬 만드는 것을 보다가 팩 몇 개를 집어들었다. 그중 버섯잡채를 계산하려고 들자 꽁지 머리를 한 여자 요리사가 말을 건넸다. “지금 잡채 만들고 있는데 이걸로 드릴까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돼요.” 이 말에 “괜찮아요”라고 말할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몇 분 기다려 받은 버섯잡채는 잘 볶은 파프리카, 팽이, 명이버섯, 양파가 어우러져 밥 없이도 한 끼가 될 만했다.

젊은 느낌답게 미트볼, 파스타, 닭다리살 구이 같은 메뉴도 여럿이다. 토마토 소스에 담긴 미트볼은 부드럽게 반죽해 퍽퍽하거나 이에서 불쾌하게 엉기지 않았다. 대신 부드럽게 풀려가며 산미가 짱짱한 소스와 어우러졌다. 알감자와 함께 담긴 닭다리살 구이는 타거나 덜 익힌 부분 없이 촉촉하게 구워 남과 나눠 먹기 싫을 정도였다.

강을 건너 아현동에 오면 아파트 단지 상가에 ‘한나겸키친’이 있다. 안에 들어서니 아담하게 놓인 반찬 구색과 밝은 음색으로 손님을 맞는 직원이 있다. 작은 쪽문으로는 주방이 보였는데 그곳에 초로의 주인장이 쪼그려 앉아 마늘을 다듬고 있었다. 늦은 저녁, 오직 국산 재료만 써서 만든다는 주인장의 설명을 들으며 반찬을 주워 담다 보니 한가득이 되었다.

이 집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할 반찬이 여럿이지만 그중에서 떡갈비와 톳밥은 꼭 장바구니에 넣어야 한다. 떡갈비는 실제 떡처럼 고기가 잘게 엉기면 안 된다. 씹었을 때 정말 갈비를 먹는 듯 탄력 있는 식감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부드럽게 쪼개지는 맛도 있어야 한다. 이 집 떡갈비는 그 모두가 있었다. 톳밥은 톳과 따로 볶은 돼지고기, 당근 등을 넣어 지었다. 톳으로 밥을 짓는 발상 자체가 놀라웠다. 혀에 가볍게 올라타는 단맛과 바다 내음 짙은 감칠맛에 한 공기 비우는 게 일이 아니었다.

마무리는 장아찌와 절임이었다. 상에 오르면 여전히 이름 대신 반찬이라 불리는 소소한 것들. 기억 없이 지나가는 담담한 하루하루를 뚜벅뚜벅 채우는 살뜰한 맛이었다. 누군가 봐주지 않아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밥상을 채우는 귀한 맛이었다.

#매일식품관: 두부제육김치 8000원, 닭강정 6900원, 부대찌개 1만4900원. (070)4124-4198

#마마리마켓: 닭다리살숯불구이 1만1000원, 마마리미트볼 1만1000원, 버섯잡채 7000원. (02)515-2163

#한나겸키친: 톳밥 7000원, 떡갈비 1만원, (02)364-5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