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서울 맛집 165곳을 소개한 '한 끼 식사의 행복'을 최근 펴냈다. 서울 '을지면옥'에서 만난 김 전 위원장은 "별명이 '국수주의자'일 정도로 면 음식 그 중에서도 평양냉면을 진짜 좋아한다"고 했다./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대책반장’ ‘해결사’ ‘구원투수’…. 1993년 금융실명제, 1995년 부동산실명제, 1997년 외환 위기, 2003년 신용카드 사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등 한국 경제의 고비마다 투입된 김석동(68) 전 금융위원장에게 붙는 수식어들이다.

그런 그에게 낯선 수식어 하나가 더 붙을 듯하다. ‘음식평론가’. 김 전 위원장은 서울 맛집 165곳을 소개한 ‘한 끼 식사의 행복’을 최근 펴냈다. 경제 관료로서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온 그가 언제 이렇게 식당을 찾아다녔을까. 인터뷰를 요청하자, 김 전 위원장은 “을지로3가 ‘을지면옥’에서 만나자”고 했다.

―고향이 부산인데 평양냉면집에서 만나자 해서 의외였는데 어머님이 함경도 원산 분이더군요. 그럼 함흥냉면집이라야 하는 거 아닌가요.

“원산에도 평양냉면 집이 많았고 어머니는 그때부터 평양냉면을 즐겨 드셨다고 해요. 워낙 좋아하셔서 부산으로 피란 와서도 걸음마하던 저의 손목을 잡고 냉면을 먹으러 다니셨대요. 그때 다닌 데가 부산 ‘원산면옥’이에요. 어머니가 밤이면 냉면을 한 사발씩 동치밋국에 말아서 형과 누나가 공부하는 방에 넣어주셨어요. 저는 그걸 얻어 먹으려고 안 자고 기다렸지요.”

―어머니 음식 솜씨가 좋았나 봅니다.

“집에서 보쌈김치까지 담그셨죠. 온 가족이 명절이면 어머니 지휘하에 만두를 빚었어요.”

―아버지 입맛이 까다로웠나요.

“독특한 음식을 많이 드셨어요. 소고기도 천엽은 물론이고 간 등 내장을 많이 드셨어요. 소 족발도 삶아서 양념한 뒤 석쇠에 구워 드셨어요. 집에서 어머니가 다 하셨죠.”

6남매 중 다섯째인 김석동 전 위원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였던 김석철(1943~2016)의 동생이기도 하다.

―생전 형님과 아주 친했다고 들었습니다. 식당도 같이 다니셨나요.

“열 살 위였지만 초·중·고·대학 선배인 데다, 제가 고등학교 때 (서울로 유학 오면서) 형님 집에서 살았어요. 대화도 많이 나눴고, 음식 먹으러도 자주 다녔고요. 오장동 ‘흥남집’은 제가 고등학생 때 형님이 소개해준 곳입니다.”

을지면옥의 일반 편육(왼쪽)과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에게만 내주는 편육. 같은 삼겹살이지만 일반 편육과 달리 지방이 붙어있지 않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지방이 살코기 안에 섬세하게 퍼져 있어서 씹으면 퍽퍽하지 않고 고소하다./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냉면에 앞서 김 전 위원장이 미리 주문해뒀던 돼지고기 편육이 나왔다. 그런데 편육이 특이했다. 살과 비계가 이어 붙은, 평소 이 식당에서 보던 일반 삼겹살 모양이 아니었다. 얇은 껍질에 살만 붙었고 비계가 없었다. 비계가 없어서 퍽퍽할 줄 알았는데, 씹을수록 고소했다. 지방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게 살코기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껍질은 부드럽고도 탱글탱글한 식감이 기막혔다. 김 전 위원장은 “딴 손님한테는 주지 않고 나한테만 내주는 편육”이라고 했다. 주인에게 물으니 “특수 부위는 아니고 삼겹살의 한 부분”이라며 “같은 삼겹살도 위치에 따라 모양과 식감이 다르다”고 했다.

―얼마나 단골이길래 이런 특별 대접을 받으시나요.

“지난 주 냉면을 네 번 먹었는데, 그 중에서 두 번을 이 집에서 먹었어요.”

―‘냉면은 이렇게 먹어야 한다, 저렇게 먹으면 안 된다’ 말들이 많습니다.

“냉면 먹는 법이 따로 있나요. 각자 취향이죠. 저는 아주 심플해요. 식초와 겨자는 안 넣어요. 제가 원래 신맛을 즐기지 않는 데다, 겨자는 투명한 육수가 좋아서 안 넣는 거예요. 냉면은 먹는 방법보다 시기가 중요하죠.”

―언제 먹어야 하나요.

“저는 계절 가리지 않고 먹지만 특히 겨울에 많이 먹어요. 냉면은 메밀로 만들잖아요. 메밀 추수가 늦가을인데, 추수하고 시간이 많이 안 갔을 때 먹는 냉면이 제일 맛있어요.”

김 전 위원장이 책에 소개한 식당은 메밀국수·짜장면·김치찌개·설렁탕·돈가스 등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단품 메뉴를 내는 곳들이다. 코스 요리 내는 레스토랑이나 한 상 가득 차려 나오는 한정식집은 없다.

―높은 분들과 자주 만나실 텐데, 그런 분들과 만날 법한 고급 음식점은 소개하지 않았네요.

“단품 메뉴를 굉장히 좋아해요. 고만고만한 음식 많이 차리는 것보다는 정말 맛있는 하나가 있어야 하거든요. 호텔 같은 데서 열리는 모임에 참석하면 대충 먹고는 비서 데리고 가서 따로국밥 하나 먹고 그랬어요.”

―대충 때우는 일은 없겠군요.

“한 끼를 먹어도 맛없게 먹지 않습니다. 정 바쁘면 두 끼 모아서 한 끼 먹더라도 먹고 싶은 걸 먹죠.”

―지방 출장 가서도 맛집을 찾아 먹나요.

“그럼요, 그냥은 안 먹어요(웃음). 대구 가면 서문시장통에 비지찌개 잘 하는 집이 있어요. 광주(광역시)엔 ‘뽐뿌집’이라고 있어요. 물 펌프가 있던 집인데 추어탕이 예술이야 예술. 아침에 해장하러 가면 전날 함께 술 마신 사람들을 다 만났죠(웃음).”

―고향인 부산이니 솔푸드일 법한 돼지국밥 집은 3곳밖에 소개하지 않았네요.

“서울에 돼지국밥 잘하는 집이 별로 없어요. 실향민들이 부산으로 피란 와서 만든 게 돼지국밥과 밀면인데, 요즘도 부산 가면 꼭 먹어요.”

―그렇게 찾아 먹다 보면 맛집을 감지하는 촉이 저절로 생길 듯합니다.

“잘하는 식당은 들어가면 분위기가 차분해요. 시끄럽게 떠들지 않고,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죠. 그래도 내공이 느껴져요. ‘우리는 음식으로 승부한다’는 게 딱 보여요.”

김 전 위원장은 정통 경제 관료로 꼽히지만 현재 그의 ‘본업’은 고대사 연구다. 법무법인 지평에서 그를 초빙해 설립한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를 2015년부터 맡아 고대사 연구와 강연에 전념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바이칼 남부-몽골고원-만주-한반도 루트로 내려온 한민족이 고조선을 건국했고, 몽골·흉노·선비 등 북방 기마민족의 기원이 됐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순대집을 소개하면서 ‘순대는 몽골 기마군단이 전투식량으로 활용했던 데에서 유래했다’고 썼습니다. 북방 기마민족과 연관된 한국 음식이 또 있습니까.

“설렁탕 등 탕류는 기마민족과 연관 있다고 생각해요. 몽골에서 왔을 거라는 연구자도 있습니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냉면 먹을 때 식초나 겨자를 치지 않고 먹는다. 단 의정부 '평양면옥'과 서울 '필동면옥' '을지면옥' 등 이른바 '의정부 계열' 냉면집에서는 고춧가루만 두어 번 탁탁 뿌린다./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요리도 직접 하십니까.

“젊을 때는 좀 했어요. 첫애를 가졌을 때 입덧하던 아내가 오므라이스를 먹고 싶다는데 나가서 사 먹을 돈이 있어야죠. 그래서 ‘내가 만들어주겠다’고 했지요. 고추장에다 마요네즈하고 식초, 설탕을 섞어 케첩 비슷하게 만들고, 거기다 밥 비비고 달걀로 덮어서 만들어줬어요. 아내가 ‘먹어본 오므라이스 중에서 제일 맛있다’고 했어요. 지금도 탕수육은 우리 집에서 내 담당이죠.”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요리도 한다는 김 전 위원장을 보니 고대 중국 상(商)나라 재상 이윤(伊尹)이 떠올랐다. 하(夏)나라 걸왕을 무너뜨리고 상나라 탕왕을 임금으로 세운 이윤은 본래 요리사였다. 노자(老子)가 썼다는 ‘도덕경(道德經)’에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익히는 것과 같다(治大國 若烹小鮮)’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음식을 만드는 일과 국가 정책을 입안·집행하는 일, 공통점이 있을까요.

“있지요. 요리는 창작(創作)입니다. 같은 재료 가지고도 새로운 음식을 무궁무진 개발할 수 있는, 굉장히 창조적인 과정이죠.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정책이라는 게 어떤 포뮬라가 있는 줄 알아요. 네버(never·전혀요). 똑같은 상황은 없기 때문에, 세상이 빠른 속도로 바뀌기 때문에 옛날에 유효했던 정책은 절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요. 특히 거대한 국가적 위기 상황은 새로운 발상의 정책이 아니면 돌파할 수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