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_바위 파스타 바

서울 성수동 고가도로 옆 골목길. ‘여기에 식당이 있어?’ 하는 의구심이 들 만큼 문 닫은 작은 가게들만 즐비한 거리를 걷다 보면 검은 통유리창에 ‘바위 파스타 바’라고 적힌 작은 가게가 나온다. 바 앞에 놓인 의자는 아홉 개. 칵테일을 마셔야 할 것 같지만 파스타 집이다.

주문하면 셰프는 그때부터 제면에 들어간다. 숙성한 반죽을 꺼내 다시 몇 번 밀가루를 뿌리며 치댄 후, 앞에 놓인 제면기에 넣고 면을 뽑는다. 뒤로 돌아서서 면을 삶고, 그 사이 불 위에 프라이팬을 올려 미리 만들어 놓은 육수로 소스를 만든다. 엔초비(이탈리아 멸치젓)를 넣고, 치즈를 갈고, 굵게 빻은 흑후추를 뿌리면 ‘볼로네제 소스 탈리아텔레’ 완성. 5분 동안 눈앞에서 펼쳐지는 셰프의 ‘원맨쇼’. 갓 뽑은 면의 쫄깃함과 촉촉함에 진한 육향이 어우러져 감칠맛이 올라온다

“오픈한 지 1년 됐어요. 처음 반 년은 손님이 한 명도 없었어요. 최근 손님이 몰리는 게 아직도 얼떨떨해요.”

바를 운영하는 김현중 셰프는 요리를 배우고 싶어 무작정 일본으로 갔다. 유명하다는 양식당들을 돌며 바닥부터 일을 배우다 바 형태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면을 갓 뽑아 만든 파스타를 먹고는 그 맛에 반했다. “일본 사람들은 건면보다는 생면을 더 즐겨요. 우리도 칼국수처럼 갓 만든 면을 좋아하잖아요. 제 입맛에도 식감이 더 좋더라고요.”

김 셰프는 매일 아침 7시 가락시장에서 재료를 사고 오후 4시 반 가게에 도착해 반죽을 하고 육수를 낸다. 메뉴는 그날 산 재료에 따라 바뀐다.

◇파스타, 셰프에게 맡겨주세요

파스타는 한국인에게 친근한 서양식이다. 1990년대에는 TGI프라이데이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토마토 소스를 넣고 푹 익힌 미국식 파스타를 먹으며 가족 외식을 했다. 2000년대에는 ‘노리타’ ‘쏘렌토’ 등에서 입가에 크림 소스가 듬뿍 묻는 한국식 카르보나라를 먹으며 소개팅을 했다.

<문화부> 파스타 오마카세 /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지난달 문을 연 ‘에비던스’는 파스타 오마카세(셰프에게 맡김)란 말을 처음 사용한 곳이다. 안티트러스트의 장진모 셰프, 이태우 셰프가 문을 연 곳이다. 바에 앉아 1인 메뉴를 시키면, 전채 요리와 디저트 외 메인 요리로 네 가지 맛 파스타가 코스로 나온다.

“파스타 스타일이 수천 가지인데 조금씩 맛보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스시 오마카세 먹을 때, 못 먹는 것만 빼고 셰프의 요리를 마음껏 즐기는 것처럼요. 한국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파스타 메뉴가 토마토, 크림에 한정되는 게 안타까웠거든요.”

“부모님이 맞벌이를 했는데, 늘 퇴근하고 오시면 배고파했어요. 중학교 때 부모님을 기다리다 잔치국수를 만들어 드렸는데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당근을 깍두기처럼 썰고, 우려낸 멸치를 건지지도 않았지만요. 그때부터 요리사를 꿈꿨죠.”

집에서 직접 만든 국수 한 그릇은 사랑을 뜻한다. 최근 코로나 사태 덕분에 일본에서 넷플릭스를 통해 제4의 한류를 일으키고 있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도 현빈은 북한에 떨어진 손예진을 위해 첫 끼니로 직접 제면한 국수 한 그릇을 대접한다.

◇유행하는 생면 파스타

파스타의 기원설 중 하나는 2세기경 그리스 의사 갈레노스 저서에 나오는 ‘이트리온’이다. 기록에 따르면, 이트리온은 밀가루와 물을 혼합해 만든다고 돼 있다. 그러나 현재 파스타를 만드는 생면에는 물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위 두 집은 크게 보면 ‘생면 파스타’ 집이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즐겨 먹는 스타일. 미국에서도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대부분 생면을 쓴다.

/이혜운 기자

국내에 처음 생면 파스타를 유행시킨 곳은 2012년 팝업스토어 ‘준 더 파스타’에서 시작한 서울 서초동 서래마을 ‘도우룸 바이 스와니예’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에그앤플라워’는 이곳 출신 셰프인 윤대현 셰프와 아내 김희은 셰프가 문을 연 곳이다.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커다란 제면기가 나온다. 한 명은 끊임없이 면을 만들고, 안쪽 주방에서는 그 면을 이용해 요리를 완성한다. 홍새우·먹물 카펠리니, 트러플 포르치니·버섯 탈리아텔레가 대표 메뉴다.

문화부_피치

압구정 피치는 미리 만들어 놓은 생면이 쇼케이스에 진열돼 있다. 색색으로 다양한 생면에 인스타그램 사진 맛집으로 유명하다. 워커힐 호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일한 조지현 셰프가 문을 열었다. 게살을 듬뿍 넣은 먹물 스파게티, 라구 소스를 넣은 파파르델레(넓적한 면) 등이 대표 메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