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미래는 헌 옷에 있다. 중고차가 신차보다 많이 팔리는 현상이 패션에서도 벌어질 것이다.”(파이낸셜타임스)

“유행이 돌고 도는 것처럼 이제 옷도 돌고 돌아 재활용한다.”(뉴욕타임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미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올해 가장 강력한 패션 트렌드로 ‘헌 옷’을 꼽았다. 친환경 패션과 업사이클링 패션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패션업계, 심지어 명품 업계까지 중고 가게를 뒤져 재활용품을 찾고, 쓰다 남은 천을 줍고 있다는 것이다. FT는 “남이 들던 가방이라면 쳐다보지도 않던 콧대 높은 명품 소비자들이 요즘 가장 원하는 것은 이미 입었거나 버려진 소재로 만든 상품”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패션업계에서는 ‘업사이클링 럭셔리’가 유행하고 있다. 루이비통, 발렌시아가, 미우미우, JW 앤더슨, 마르니, 알렉산더 매퀸, 클로에, 스텔라 매카트니, 코치 같은 명품 브랜드들이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경쟁적으로 업사이클링 제품을 선보였다.

◇업사이클링=한정판

지난달 초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클로에의 파리 패션쇼에 등장한 가방 50개는 면, 가죽, 모(毛) 등 천차만별의 소재를 조합해 만들었다. 디자이너가 온라인 쇼핑몰 이베이에서 찾아낸 중고 클로에 가방 50개를 사들인 뒤 옷을 만들 때 남은 자투리 천을 합쳐 만들어낸 제품이었다. 중고품이나 다름없는데도 가격은 무려 2500~3100유로(335만~415만원)였다. 하지만 패션쇼가 끝나자마자 매진됐다.

그래픽=김현국

한 벌에 100만원이 훌쩍 넘는 옷을 파는 명품업계에선 고급 소재를 사용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재활용품을 사용하는 업사이클링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도 명품 브랜드가 업사이클링에 눈을 돌린 건 제품의 희소성이 중요해지고 ‘한정판’이 유행하면서부터다. 찍어낸 듯 똑같이 생긴 제품을 여러 개 만들기 힘든 게 업사이클링 패션의 특징이다. 중고품을 개조하거나 자투리 천을 덧대고 꿰매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친환경 등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의 부상도 명품 브랜드들이 업사이클링 제품을 앞다퉈 내놓는 중요한 이유다. UN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폐수의 20%, 탄소의 10%가 패션 업계발(發)이다. 국내에서도 연간 의류 폐기물이 2015년 154.4t에서 2018년 193.3t으로 30% 가까이 늘었다. 헌 옷을 재활용한 제품들은 깐깐한 MZ세대 소비자에게 ‘버려지거나 태워질 뻔한 옷을 구해 환경에 보탬을 줬다'는 심리적 만족감을 준다는 것이다. MZ세대 소비자 비중이 높은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는 올해 봄·여름용 제품에 사용한 원단 90% 이상이 업사이클링 소재였다.

◇중고품이 신상품보다 비싸기도

업사이클링은 명품뿐만 아니라 일반 패션 시장에도 진입하기 시작했다. ‘리바이스’는 지난해 중고시장에 뛰어들어 자사의 오래된 청바지나 재킷을 가져가면 할인 쿠폰을 제공해 다른 제품을 살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렇게 모아진 헌 옷은 업사이클링해서 다시 판매한다. 코오롱FnC는 3년 이상 된 재고 상품이나 자투리 천을 이용해 옷·가방 등을 만드는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를 내놨다.

NYT는 “고급 브랜드, 대중 브랜드 할 것 없이 업사이클링에 대한 수요가 높기 때문에 헌 옷을 수거하는 프로그램이나 다른 옷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하는 스타트업까지 생겨났다”고 했다. 하지만 업사이클링은 중고품을 씻고, 해체하고, 수작업을 하는 데 노력과 비용이 든다. 디자이너들은 차라리 고급 새 원단을 쓰는 게 돈이 덜 든다고 한다. 중고품이 신상품보다 비싼 경우도 있다. 영국의 리사이클링 청바지 브랜드 LDV데님에서 제일 저렴한 청바지는 250파운드(약 39만원)다.

☞업사이클링(up-cycling)

버려지는 제품을 다시 디자인해 새로운 가치나 용도를 가진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 ‘비용 절감’과 ‘환경보호’ 두 가지 효과를 노린다. 단순히 기존 용도대로 다시 사용하는 재활용(recycling)과는 구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