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53번째 레터는 27일 개봉한 영화 ‘고질라×콩: 뉴 엠파이어’입니다. 시사회날, 네, 제목 그대로 저는 졸 뻔했습니다. 그래서 뉴스레터로 보내기 전에 한 번 더 봤습니다. 혹시 제가 놓친 점이 있지 않나 해서요. 영화 개봉일인 오늘(27일) 오전 6시30분 용아맥 중블에 앉아 포효하는 핫핑크 고질라를 다시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랜차이즈 영화의 미래, 기술과 스토리의 진보(혹은 퇴보), 문명과 비문명의 경계 등등. 아무 생각 없이 보면 된다고 하는 ‘고질라 킹콩’ 시리즈가 제게 많은 생각이 들게 하더군요.

영화 '고질라×콩: 뉴 엠파이어'에 등장하는 거대 고질라. 방사능을 흡수해서 등지느러미가 핫핑크랍니다./워너브라더스코리아

‘고질라×콩: 뉴 엠파이어’(고콩엠)는 관객을 관객이 아니라 UFC 격투기 관람자로 만듭니다. 등장인물이나 괴수에 공감하거나 교감하고 그런 거 없고요, 큰 놈들이 엉겨붙어 때려부수는 걸 보여드릴테니 즐겨보세요, 합니다. 자, 시작하자마자 킹콩이 나타나 쿠워워~~ 괴성을 지릅니다. 긴장을 서서히 쌓아올려서 관객을 빨려 들게 하고 그런 거엔 관심이 없어요. 달려드는 야수를 능지처참하고 그 피를 뒤집어쓰는 킹콩부터 보여주고 시작합니다. 이어 고질라가 등장해 영덕 대게처럼 생긴 괴수를 짓밟아버리고요.

여기서 관람을 멈추고 약 1시간 동안 딴 일을 하다 다시 보셔도 괜찮습니다. 왜냐, 어차피 이 영화는 뒷부분 최후 결전 15분을 보여주려고 만들었거든요.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괴수 넷이 2대2로 붙어 죽도록 싸우는 15분이 이 영화의 전부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15분이 볼 만하다 싶으면 만족도가 높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처럼 생각이 많은 관객은, 하나의 영화를 볼 때 ‘이 영화가 현재 영화 시장에서 차지하는 좌표는 무엇인가'를 따져보는 기자는 생각이 많아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바타’에서 재활용한 듯한 비주얼, 마블에서 시리즈로 써먹은 글러브 소품, 새로운 거라곤 고질라 지느러미 색깔뿐인 이 영화가 IP로서 어떤 미래를 가질 수 있을지. 지난번에 둘이 붙어서 싸웠으니 이번엔 2를 곱해서 넷이 싸우고, 다음엔 넷 곱하기 넷 해서 16마리가 ‘어셈블’해서 싸우면 되는 걸까요. 형광핑크 칠해봤으니 다음엔 형광그린?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 '킹콩'(2005). 공룡 두 마리와 엉켜 싸우던 킹콩의 박진감이 20년 후 '고질라 킹콩'의 액션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영화는 기술의 진보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서 그런 걸까요./유니버설픽쳐스

여러분 피터 잭슨의 ‘킹콩’을 기억하시는가요. 2005년, 그러니까 무려 20년 전에 나온 영화입니다. ‘고콩엠’ 보면서 내내 그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보고(왓챠에 있습니다) 저도 모르게 감탄. 킹콩이 공룡 두 마리와 엉켜서 싸우는 5분이 거대한 아이맥스 화면으로 보던 ‘고콩엠’ 액션보다 훨씬 스릴 있고 박진감 넘치더군요. 제 작은 노트북 화면으로 보는데도요. 무려 20년 전에 만들었으니 그때 VFX 기술이란 지금과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인데도 ‘고콩엠’과 몰입도가 비교 불가한 수준이에요.

그 차이가 어디서 왔을까요. 예를 들어 이런 디테일이 아닐까 싶어요. ‘킹콩’에서 주인공 킹콩이 공룡을 때려눕히고는 나자빠진 녀석의 입을 벌려보며 잘 죽었는지 확인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순간, 킹콩은 캐릭터가 됩니다. 그건 마음이 있어야 하는 행위니까요. 심장이요. 무조건 때려치고 매치는 심장 없는 괴수들만 모아놓은 ‘고콩엠’에선 기대하기 어려운 장면이죠.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아이맥스 화면이라 해도 커봤자 높이 22미터에요. 그마저도 자꾸 보다 보면 크다는 생각도 안 듭니다. 제가 전에 뉴스레터에서 ‘노량' VFX 얘기한 거 기억하시나요. 그 비슷하죠. 아무리 대단해도 단순 반복한다고 전달력이 커지지 않죠. 화면 크기 밖으로 우리의 정신을 확장시키는 건 괴수의 몸집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거대 괴수의 용트림이 우퍼 사운드로 귓청을 울리는데도 졸음이 올 수 있는 것이겠지요.

망가져버린 IP하니 ‘트랜스포머'가 떠오르네요. 1편 참 재밌지 않았나요. 하지만 다음 ‘트랜스포머'를 기다리는 관객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마이클 베이나 입금이 간절해지면 다시 예전 프로덕션 노트를 꺼내볼지 모르겠네요. ‘고질라 콩'도 지금처럼 크기에만 집착하면 ‘트랜스포머'가 되겠지요. 그러기엔 아깝네요. 몸집만 키워서 보여주지 말고, 새로운 발상으로 다시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VFX상을 받은 일본판 ‘고질라 마이너스 원'이 궁금해지네요. 내용을 떠나서 우선 어떤 기술적인 진보를 이뤘는지가요. 고질라로 보여줄 수 있는 비주얼의 어떤 한계를 뛰어넘었기에. 우리나라도 VFX에선 뒤지지 않는데 언젠가 오스카를 노려볼 수 있을까요. 심장이 뛰는 기술로 한국 영화인들이 다시 오스카 무대를 밟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저는 다음 레터로 뵙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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