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출신 명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연합뉴스.

‘피아노 황제’로 불렸던 이탈리아 명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82)가 23일(현지 시각) 고향인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별세했다. 이탈리아 현대 건축의 선구자로 꼽히는 아버지 지노 폴리니와 성악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서 11세 때 데뷔 독주회를 열었고 14세에는 쇼팽 연습곡 전곡을 연주했던 영재 출신이다. 18세 때인 1960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일약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대 최고의 쇼팽 연주자로 꼽혔던 명예 심사위원장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저 소년이 기교적으로는 우리(심사위원들)보다 더 낫다”고 극찬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2015년 같은 대회 우승자인 조성진의 ‘55년 선배’인 셈이다.

폴리니의 행보가 남달랐던 건 우승 이후였다. 두 장의 음반을 녹음하고 유럽 연주회를 가졌지만, 미국 순회 연주 직전에 공연을 취소했다. 그 뒤 이탈리아의 전설적 피아니스트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를 사사하면서 수년간 음악적 성숙의 기간을 가졌고 1968년 무대로 복귀했다. 1988년 인터뷰에서 그는 “내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공산당에 가입해서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고 베토벤·쇼팽 같은 고전뿐 아니라 현대음악을 거침없이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강철 손가락’이나 ‘악보의 방사선(X-ray) 사진 같은 연주’라는 뉴욕타임스의 평이 보여주듯이 무결점의 엄밀한 테크닉과 현대적 해석으로 극찬을 받았다. 반면 “시적(詩的) 정취나 섬세함의 결여”(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라는 비판도 따라다녔다. 폴리니는 1980년과 2007년 두 차례 그래미상을 받았고 1996년 ‘음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지멘스상을 수상했다. 아쉽게도 한국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22~2023년 두 차례 내한 독주회를 추진했지만 모두 건강 문제로 취소됐다. 그는 당시 한국 관객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한국 공연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건강상 문제로 여행을 할 수 없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른 시일 내에 한국 관객분들을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끝내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