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풍수사 상덕(최민식·오른쪽부터)은 무당 봉길(이도현), 장의사 영근(유해진)과 함께 거액의 의뢰를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다. 파헤친 무덤에서 나와선 안 될 것이 나오면서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쇼박스

40년 경력 풍수사 상덕(최민식)은 흙을 찍어 먹어 보고 땅의 기운을 감지한다. 신세대 무당 화림(김고은)이 이장을 부탁한 묫자리는 영 떨떠름하다. 첩첩산중에 여우들이 돌아다니는 악지(惡地) 중의 악지, 사람이 누워 있을 자리가 아니다. 거액에 넘어가 기어코 수상한 묘를 파버린 이들에게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15일 개막한 베를린 국제영화제 포럼 섹션에 초청받은 영화 ‘파묘’가 22일 개봉했다. ‘검은 사제들’(2015), ‘사바하’(2019)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오컬트(Occult·초자연적 현상) 영화 외길 인생을 걸어온 감독은 이번엔 풍수지리와 무속 신앙, 장례 문화 등 토속적인 소재를 활용해 흙냄새 물씬 나는 K오컬트를 선보였다. 22일 만난 장재현 감독은 “코로나 기간에 극장용 영화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다들 답답한 상황이다 보니 화끈하고 박력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픽=정인성

사전 조사와 각본 집필에 2~3년이 걸렸다. 전국에 용하다는 풍수사, 무속인을 찾아다니고 크고 작은 이장(移葬)도 십여 차례 따라다녔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었는데 포클레인도 아니고 삽으로 무덤을 파가며 급히 이장을 하더라고요. 이유를 물으니 가족 중 네 명이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대요. 무덤을 파보니 배수 공사가 잘못되는 바람에 물길이 바뀌었다더라고요. 그날의 이장이 영화의 뼈대를 만들어줬죠.”

영화는 묘를 잘못 써서 자손에게 불운이 닥치는 일명 ‘묫바람’에서 출발한다. 묘에서 튀어나온 “험한 것”을 쫓기 위해 뭉친 ‘묘벤져스(묘+어벤져스)’의 손발 척척 맞는 협업이 장르적 쾌감을 선사한다. 꼬장꼬장한 구세대 풍수사·장의사와 컨버스 운동화를 신고 굿판을 벌이는 신세대 무당들의 팀플레이도 관람 포인트다.

'파묘' 스틸컷. /쇼박스

음양과 오행을 총동원해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굿판과 이장을 동시에 진행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김고은은 동물을 죽여 신에게 바치는 ‘대살굿’으로 그야말로 ‘신들린’ 연기를 펼친다. 제작비가 가장 많이 들었다는 도깨비불 장면엔 크레인 두 대를 동원해 실제 불덩이를 움직여가며 촬영했다. 장 감독은 “땅에 발을 딛고 있는 현실적인 판타지를 만들고 싶었다. CG에 의존하기보다는 배우가 몰입할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감독이 해야 할 배려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경력 35년 차에 오컬트는 처음이라는 최민식의 연기는 붕 떠버릴 수 있는 이야기를 땅 위에 묵직하게 붙들어 놓는다. 유해진은 과하지 않은 유머로 긴장으로 뭉친 관객의 어깨를 틈틈이 풀어준다. 베테랑 배우들이 다져놓은 명당 위에서 젊은 무당 역의 김고은과 이도현은 신명나게 굿판을 벌인다.

'파묘' 스틸컷. /쇼박스

분위기가 반전되는 후반부는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한반도의 역사와 연결된 ‘험한 것’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헛웃음이 먼저 터진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쓸 수는 없지만, 장 감독은 “우리나라 땅에 집중하다 보니, 과거의 상처와 트라우마가 보이더라. 발톱의 티눈을 뽑듯이 파묘를 해버리고 싶었다”고 했다.

무속인·풍수사들과 두루 친하게 지내지만 감독은 모태 신앙 기독교인이다. 이번 영화도 “교회 장로님들한테 혼날까 봐 최대한 덜 거북스럽게 만들었다”며 웃었다. “교회에서 뭐라 하지 않느냐고 걱정하시는데, 어떤 종교든 톱 클래스들은 배타적이지 않고 굉장히 열려 있으시더라고요(웃음).”

'파묘' 스틸컷. /쇼박스

장편 데뷔작인 ‘검은 사제들’부터 빛보다는 어둠의 세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천착해 왔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사랑과 의리를 말하는 공동체는 종교밖에 없더라고요. 회사에선 저 사람이 쓸모 있는지 없는지 계산만 하고 살잖아요.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을 잃고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10년 넘게 악귀와 혼령을 쫓아다닌 그에게 그래서 귀신은 존재하는지 물었다. “아직까진 저도 못 봤어요. 그런데 나쁜 귀신이든, 좋은 귀신이든 영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인간을 정말 사랑하는데, 사람이 죽고 무기질로 사라져 버리는 건 너무 슬프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