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성(79) 성우가 KBS 라디오 프로 ‘밤하늘의 멜로디’가 녹음된 릴 테이프(왼쪽)와 자신의 시 낭송 LP를 들어 보이고 있다. 모두 그의 보물들이다. 외화 더빙으로 큰 인기를 얻은 그는 심야 시간 라디오 DJ로도 활동하며 높은 청취율을 기록했다. /박상훈 기자

“나와라, 만능 팔!” “가나-. 가나 초콜릿.”

고막을 울리는 뾰족한 ‘가제트 형사’의 외침부터 마음을 녹이는 초콜릿 광고 목소리까지. 지난 10일 경기도 자택에서 전성기 못지않은 목소리를 들려준 성우 배한성(79)은 귀가 기억하는 톱스타였다. “목소리는 노화가 늦은 편이라고 해요. 제게는 다행이지요.”

배한성(79) 성우가 자신의 보물인 KBS 라디오 프로 ‘밤하늘의 멜로디’가 녹음된 릴 테이프를 들어 보이고 있다. 1980년 2월에 녹음된 테이프다. 외화 더빙으로 큰 인기를 얻은 그는 심야 시간 라디오 DJ로도 활동하며 높은 청취율을 기록했다. /박상훈 기자

TV에서 인기 외화 시리즈를 방영하는 날엔 시내가 썰렁할 정도였던 1970~1980년대. 그 시절 배한성은 외화 주인공 목소리 더빙을 독식하다시피 한 전설로 꼽히는 성우다. 로빈 윌리엄스, 알 파치노, 더스틴 호프먼 등 유명 배우들을 전담했다. ‘아마데우스’ ‘취권’ ‘마지막 황제’ 등 수많은 영화와 ‘맥가이버’ ‘형사 콜롬보’ 같은 시리즈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세계적 배우들의 연기가 그의 목소리를 거쳐 안방 극장에 닿았던 셈이다. 그는 “값싸 보이지 않게 캐릭터들을 선보이는 것이 그 당시 나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며 “그런 노력조차 즐거운, 성우는 내 운명의 직업이었다”고 회고했다.

◇어머니의 단칸방 영화관에서 꿈 키워

그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극장 타운의 악동 시절”로 표현했다. 수시로 극장 담을 넘어 몰래 영화를 보다 얼굴에 페인트칠을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집안 맏이로 중학교 입학 후부터 홀어머니 대신 가장 역할을 했지만, 영화와 연기에 대한 동경이 어린 시절부터 크게 자리해 있었다고 했다. 여기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는 6·25전쟁 전 아내와 세 아들을 남기고 북으로 떠나버렸고 어머니는 생활력이 약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가 ‘돈의 유산’은 못 물려줬지만 ‘재능의 유산’은 물려줬다”고 말했다.

기억 속 어머니와 3형제가 지낸 단칸방은 밤이 되면 작은 ‘극장’이 되곤 했다. 어머니는 기름을 아끼느라 호롱불도 켜지 못한 채 옛날에 본 영화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한다. 주인공처럼 소복을 차려입고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어머니를 보며 그는 “영화가 뭔데 이렇게 재미있나” 감탄했다. 이를 계기로 대한극장과 국도극장, 명보극장이 모여 있던 ‘극장 타운’ 인현동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극장을 드나들었다. 신문 배달을 하고 시장에 나가 심부름 일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영화를 봤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전율을 느꼈다. 그는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외모로는 주연을 못 하겠구나 생각했다”며 “대신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성우의 꿈을 꾸게 됐다”고 했다.

성우 배한성을 비롯해 국내 원로 성우들이 함께 참여한 1970년대 ‘삼국지 드라마 레코드’. /박상훈 기자

◇선배 성우와 함께한 ‘삼국지 드라마 레코드’

그는 자신을 비롯해 구민·유기현 등 대한민국 원로 성우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1970년대 ‘삼국지 드라마 레코드’를 보물로 간직하고 있다. 어렵게 성우의 꿈을 이룬 뒤 선배 성우들과 함께 작품을 녹음한 것만으로 의미가 깊다고 했다. 목소리는 타고났지만 성우가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등록금도 없이 무작정 서라벌예술대 시험을 쳐 합격했다. 친구 도움으로 가까스로 입학은 했지만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 알 수도 없었다. 그는 “성우 시험을 볼 때마다 여기서 떨어지면 한강 가서 떨어져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고 했다. 그러다 1966년 대학교 2학년 때 TBC(1980년 KBS로 통폐합) 성우 시험에 합격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라디오 드라마 등에서 배우 신성일 목소리를 담당하던 성우가 외국에 나간 동안 대타를 맡게 된 것이다. “‘경아~ 춥지 않니~’처럼 예스러운 ‘별들의 고향’ 스타일 연기 대신 말하듯이 자연스러운 현대적인 연기를 했어요. 남들과 다르게 했더니 그게 새롭고 좋다는 평을 받았고요. 이후 ‘배한성’을 찾는 작품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배한성을 비롯해 국내 원로 성우들이 함께 참여한 1970년대 ‘삼국지 드라마 레코드’. /박상훈 기자

말투만 새로웠던 게 아니었다. 그는 미리 더빙할 영상과 대본을 받아 상대 배역의 표정까지 분석하며 어떻게 연기할 것인지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어로 바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저만의 ‘미감’이 담긴 연기를 선보이려 애썼다”고 했다. “늘 어떻게 하면 예전 배역과 다르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녹음을 해두곤 했다”고 했다.

◇DJ·시 낭송까지 시대 풍미한 목소리

이후 1990년대까지 지상파에서 방영된 수많은 외화가 그의 목소리로 더빙됐다. 그는 TBC 시절부터 DJ를 맡았던 KBS 라디오 ‘밤하늘의 멜로디’ 방송이 녹음된 1980년대 릴 테이프와, ‘배한성 詩 낭송집’ ‘홀로서기’ 등 자신의 시 낭송이 녹음된 1970~1980년대 LP들을 보물로 꼽았다. 그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물건들이다. 당시 높았던 외화의 인기만큼 그도 ‘배마데우스’ ‘배미오’로 불리며 큰 인기를 누렸다. 방송사마다 청취율 경쟁이 벌어졌던 심야 시간 라디오 DJ까지 맡았을 정도. 그의 목소리를 좋아하는 팬들의 엽서가 쇄도했다. 그의 이름을 내건 시 낭송 LP들도 발매됐다.

성우 배한성이 참여한 1970~80년대 발매된 시 낭송 LP들. /박상훈 기자

그는 50대에 ‘로미오와 줄리엣’(1968년 작)의 로미오(레너드 휘팅) 역할을 맡았을 정도로 ‘롱런’했다. 그는 “성우들이 저마다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주인공감은 흔치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며 “청순하고 싱그러운 로미오 역을 맡았을 때에는 PD에게 ‘난 로미오 아버지 역할인 줄 알고 왔어’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며 웃었다.

그는 “세계적 배우들의 놀라운 점은 연기가 늘 새롭고 다른 작품에서 본 듯한 기시감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여기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 애썼다”고 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죽은 시인의 사회’의 로빈 윌리엄스는 낙천성을 잃지 않는 휴머니스트였고, ‘대부’의 알 파치노는 잔인한 말도 자비스럽게 했지요. ‘레인 맨’ ‘졸업’ 등의 더스틴 호프먼은 늘 친근하고 만나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로미오를 연기할 때는 웃을 때도 허망함이 느껴지는 슬픔을 표현하려 했어요. 무술 연기가 많은 성룡, 이소룡, 주윤발 등을 연기할 땐 기이한 목소리에 호흡을 신경 썼고요.” 애니메이션 ‘형사 가제트’는 몽실몽실한 불어 어감 대신 아이들이 집중할 수 있는 뾰족하고 튀는 목소리로 연기해, 당시 프랑스 감독에게 “타고난 연기자”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다. 유명한 초콜릿 광고 멘트에 대해서는 “30초짜리를 하려고 3일을 고민했다”며 “목소리에 진심을 담는 게 핵심이었다”고 했다.

성우 배한성이 목소리 연기를 한 ‘형사 가제트’의 주인공 가제트 형사. /형사 가제트

그는 “제가 성우가 됐던 때는 통기타·생맥주·청바지로 대표되는 젊은 문화가 막 시작되던 때였다”며 “발전할 수 있는 힘을 축적하던 그 시절을 지나 지금 우리 문화가 엄청나게 발전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제 80에 가까운 노인이 되어있지요”라며 웃었다. 그는 여전히 프로그램 2개를 맡아 하고 있다. “목소리 하나만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정말 감사하고 축복받은 삶이었다고 생각해요. 성우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요령 없이 그저 열심히, 자꾸 다르게 하려 노력했던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