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천 소설 '사랑의 수족관' 등장인물이 본정 2정목(현 충무로 2가) 명치제과 2층에서 커피를 마시며 의논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삽화. 삽화가 정현웅 작품이다. 조선일보 1939년 12월8일자

‘아직 열한 점(오전11시), 그러나 낙랑(樂浪)이나 명치제과쯤 가면, 사무적 소속을 갖지 않은 이상이나 구보 같은 이는 혹 나보다 더 무성한 수염으로 코피-잔을 앞에 놓고 무료히 앉았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내가 들어서면 마치 나를 기다리기나 하고 있었던 것처럼 반가이 맞아 줄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요즘 자기들이 읽은 작품중에서 어느 하나를 나에게 읽기를 권하는 것을 비롯하야 나의 곰팡이 슨 창작욕을 자극해주는 이야기까지 해줄런지도 모른다.’

소설가 이태준이 1936년 월간지 ‘조광’ 10월호에 발표한 단편소설 ‘장마’의 한 대목이다. 이상, 박태원과 함께 구인회 멤버였던 이태준은 아내와 말다툼한 뒤, 집을 나선다. 구인회는 화가 이순석이 운영한 카페 ‘낙랑파라’와 함께 명치제과를 아지트삼아 드나들었다.

석영 안석주가 쓰고 그린 모던 걸 '차당의 여왕'. 아는 남자를 만나면 낙랑파라나 명치제과로 끌고 다니면서 유성기 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신다고 했다. 조선일보 1934년1월3일자

◇ ‘난파 트리오’ 데뷔연주회

명치제과는 당시 신문에 자주 등장한다. 홍난파가 이끄는 현악3중주단 첫 공연도 1933년 6월4일 밤 8시반 명치제과 3층에서 열렸다. ‘실내악(室內樂)연구의 목적으로 홍난파(洪蘭坡) 홍성유(洪盛裕) 양 씨와 및 금춘 동경고등음악학교를 졸업한 이영세(李永世)씨 등이 조직한 제금삼중주단(提琴三重奏團)에서는 그동안 연습을 거듭하던 중 륙월사일(일요)밤 팔시반부터 본정이정목 명치제과회사 삼층에서 피로연주회(披露演奏會)를 열게 되었는데 참석할 분은 초대장에 한한다고 한다.’ ‘제금삼중주단(提琴三重奏團) 피로연주회(披露演奏會), 륙월 사일 명치제과에서’(조선일보 1933년6월2일)

난파 트리오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홍난파가 시작한 국내 첫 실내악단이다. 바이올린만으로 구성된 3중주단이란 점이 이채롭다. 연주회 티켓은 따로 팔지 않았지만, 다과비 35전을 받는다는 기사(동아일보 1933년6월1일)도 보인다. 커피 한잔에 10전쯤 하던 시절이니, 커피 3잔값을 받고 다과를 제공하는 콘서트를 연 셈이다. 게오르크 비히틀(Georg Wichtl)의 ‘트리오 G장조’, ‘트리오 C장조’, 프리드리히 헤르만(Fridrich Hermann)의 ‘카프리치오’ 등 비교적 낯선 곡이었다.(‘대망의 6월 악단’하. 조선일보 1933년6월4일)

1930년 10월1일 문 연 충무로 2가 명치제과 매점 개업광고. 1,2층은 커피숍, 3층은 음악회, 전시회, 출판기념회가 열리던 '문화살롱'이었다.

◇'차당(茶黨)의 여왕’이 꼽은 커피 명소

일본에서 명치제과는 1916년 설립됐는데, 캐러멜, 비스킷 등을 생산하다가 1921년 대표상품인 ‘명치 메리밀크’를 팔기 시작했다. 이어 아이스크림, 밀크초콜릿, 명치우유 등을 생산하면서 일본의 대표적 제과회사로 떠올랐다. 명치제과의 또 다른 인기 상품은 커피였다. 명치제과는 1930년 10월1일 본정 2정목(本町 2丁目·충무로2가)에 자사 제품을 판매하는 판매점을 열었다. 이 곳에는 끽다부(喫茶部)가 있어서 과자, 빵과 함께 커피,코코아, 레몬티 같은 음료를 팔았다. 그런데 이곳 커피가 맛있다고 소문이 났다. 그래서인지 당시 세태 소설속에 명치제과가 자주 등장한다.

안석주 작 ‘아스팔트의 딸’(조선일보 1934년1월3일)에는 아는 남자를 만나면 낙랑파라나 명치제과로 끌고 다니면서 유성기 소리에 찻잔 쥔 손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며 커피를 마시곤 하는 여성이 나온다. 그녀 별명이 ‘차당(茶黨)의 여왕’이다. 코코아, 레몬차, 홍차, 커피 같은 각종 차를 즐기는 이 모던 걸이 명치제과를 손꼽을 정도였다. 최독견 소설 ‘명일’에는 등장인물 신철이 “커피 맛이 좋다”며 명치제과를 가는 대목이 나온다.

커피 맛 좋다고 소문난 명치제과 1층은 테이블이 있는 박스석이고 2층은 사방 트인 공간에 테이블이 여럿 있는 자리였다. 평일 점심엔 35전짜리 미국식 ‘라이트 런치’를 팔기도 했다. 커피가 포함된 세트 메뉴였다. 크리스마스때도 특별 세트메뉴를 팔기도 했다.

이 제과점 3층엔 음악회, 미술전, 출판기념회 등을 열 수 있는 작은 홀이 있었다. 이 명치제과 3층이 낙랑파라와 함께 경성 예술가들의 ‘문화살롱’역을 한 것이다.

명치제과 매점에선 미국식 '라이트 런치'도 팔았다. 커피 포함, 35전이었다. 일본어 신문 '朝鮮新聞' 1931년 11월22일자 광고

◇申鴻休 개인전, 탁구대회까지 열려

도쿄 유학생 출신 서양화가 신홍휴가 개인전을 한 곳도 명치제과였다. ‘동경에서 다년간 양화(洋畵)를 연구하던 청년화가 신홍휴씨(申鴻休氏)는 6월28일부터 7월1일까지 시내 본정통 명치제과누상에서 개인전람회를 개최한다는데 총 작품총수가 36점이다.’ (‘신홍휴씨 양화개인전’,조선일보 1934년6월28일)

영화 포스터, 사진전이나 칠(漆)공예작품전은 물론 탁구대회까지 열렸다. ‘경성학생연맹군(京城學生聯盟軍)대 실업군(實業軍)과의 제9회 대항탁구전은 내24일오전9시부터 본정 명치제과 삼층홀에서 거행하기로 되었다한다.’(‘京城學生聯盟軍과 實業軍 탁구대항전’,조선일보 1936년5월22일)

◇괴테의 100주기 기념회

1932년은 독일 문호 괴테 100주기였다. 문화예술인들이 괴테 100주기를 기념하는 행사를 준비하는 모임을 가진 곳이 명치제과였다. ‘오는 3월22일이 시성 괴테의 사후 백주년 기념임으로 세계 각국에서 이날에 기념회합이 있을 모양인데, 조선에서도 해외문학인 제씨의 발기로 당일 오후7시반에 본정 명치제과 3층에서 기념회합을 개최하리라는 바 문단 제씨와 일반 유지의 다수 참석을 바란다고 한다.’( ‘괴테의 밤’ 사후 백년기념회합, 조선일보 1932년3월21일)

시집 ‘성북동 비둘기’로 이름난 시인 김광섭(1905~1977)의 첫 시집 ‘동경’(憧憬) 출판기념회도 1938년 7월18일 오후5시 명치제과 3층에서 열렸다. 회비는 1원이었다. 와세다대 영문과 출신인 김광섭은 김환기의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서 다시 만나랴’(1970)를 낳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김환기는 여덟살 위 시인 김광섭을 존경했는데, 1970년 그가 타계했다는 ‘가짜 부고’를 듣고 뉴욕에서 그린 그림이 이 작품이다.

임화 시집 ‘현해탄’, 이태준 소설집 ‘황진이’, 엄흥섭 소설집 ‘길’ 출판 기념회도 1938년 3월26일 오후5시반 명치제과 3층에서 열렸다. 회비는 1원이었다. 명치제과 끽다부는 문화예술인들의 살롱이자 충무로 일대 카페와 식당, 서점을 산책하며 모던을 즐기던 ‘혼부라’당(黨)의 아지트 역을 했던 셈이다.

◇참고자료

이태준, 장마, 조광, 1936년10월

박현수, 식민지의 식탁, 이숲,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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