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오스모 벤스케. /서울시향

불운은 홀로 오지 않는다. 지난해 연말로 서울시향 임기가 끝난 핀란드의 명지휘자 오스모 벤스케(70) 역시 그랬다. 그는 미국 미네소타 오케스트라를 20년 가까이 이끌면서 베토벤·말러·시벨리우스 교향곡 음반들로 전 세계 음악계를 사로잡았던 거장이다.

지난 2020년 서울시향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면서도 의욕적인 프로그램들을 계획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팬데믹 시기와 임기가 겹치는 바람에 공연들이 연기되거나 온라인 연주회로 대체되는 비운을 겪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연말에는 낙상(落傷) 사고까지 겹쳤다.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그는 “골반이 완전히 부서지고(totally shattered) 오른쪽 어깨도 부러질 만큼 부상이 심각해서 큰 수술을 받았다. 당초 의사들은 회복에 6개월 정도 걸릴 거라고 예상했지만, 다행히 회복 속도가 빨라서 기쁘다”고 했다.

그가 서울시향을 지휘하기 위해 올해 처음 내한했다. 이번엔 음악감독이 아니라 손님이라고 할 수 있는 객원 지휘자 자격이다. 고국 핀란드의 국민 작곡가인 시벨리우스(1865~1957) 특집으로 꾸몄다는 점이 이채롭다. 24~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는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6번과 바이올린 협주곡(협연 리사 바티아슈빌리), 30~31일 예술의전당에서는 같은 작곡가의 교향곡 2번과 바이올린 협주곡(협연 엘리나 베헬레)을 들려준다. 그로서는 ‘작별 인사’와도 같은 공연들인 셈이다.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모두 들어있지만, 1904년 초연 당시 오리지널 버전(30~31일)과 1905년 개정판(24~25일)으로 판본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 감상의 기회가 된다.

서울시향은 2015년 지휘자 정명훈이 물러난 뒤 그가 취임할 때까지 5년 가까이 음악감독이 공석(空席)이었다. 벤스케는 “취임 당시에는 음악감독이 없었기 때문에 서울시향만의 스타일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유럽 순회 공연에서 서울시향은 좋은 연주를 들려줬고 환경이 다른 여러 공연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경험을 통해 한 단계 성장했다”는 따뜻한 덕담을 보탰다. 1953년생인 그는 동갑내기 지휘자 정명훈과 함께 올해 칠순을 맞았다. 당분간 감독직은 맡지 않을 계획. 벤스케는 “이제 내 인생의 마지막 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모든 걸 완벽하게 하려고 했다면, 다음 30년은 지휘자로서 음악에 대한 사랑을 더 많이 보여주기 위해 애쓰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