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 영화

데이미언 셔젤(38) 감독과 음악 감독 저스틴 허위츠는 ‘라라랜드’로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나란히 감독상과 음악상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동갑내기 단짝. 하버드대 룸메이트 시절부터 ‘위플래쉬’와 ‘라라랜드’까지 줄곧 호흡을 맞췄던 이들 콤비가 이번에는 할리우드 100년 역사를 아우르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최근 개봉한 신작 ‘바빌론’을 통해서다.

이들이 택한 시대는 ‘광란의 1920년대(Roaring Twenties)’. 1차 대전이 끝난 직후 장밋빛 낙관 속에서 예술과 대중문화가 만개한 시대상을 도입부의 흥청거리는 할리우드 파티 장면으로 고스란히 보여준다. 술과 약물, 재즈와 욕망까지 모든 것이 넘쳐흐르는 첫 장면은 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위대한 개츠비’와도 묘하게 닮았다. 물론 ‘바빌론’이 훨씬 적나라하고 퇴폐적인 편이지만. 35분에 육박하는 긴 파티 장면을 통해서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 뜨고 싶다는 욕망에 불타는 신인 여배우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 등 영화 주인공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다.

실제로 1920년대는 영화와 재즈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분기점이 됐던 시기. 대사를 자막으로 처리하던 무성(無聲)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넘어가는 이행기였고, 빅 밴드(big band) 재즈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바빌론’이 유성 영화의 탄생을 알렸던 기념비적 영화인 ‘재즈 싱어’(1927년)에서 출발해서 그 시기를 반추하는 뮤지컬 영화 ‘싱잉 인 더 레인(1952년)’으로 끝나는 구조인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동시에 인기 배우였던 콘래드가 고풍스러운 대사 처리 때문에 서서히 관객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모습을 통해서 변화의 시기에 명멸할 수밖에 없었던 스타들의 운명을 보여준다. “당신의 시대는 끝났지만, 스타는 천사나 영혼들처럼 영원할 테니…”라는 할리우드 연예 기자의 충고는 영화의 메시지를 압축한 명대사다. 허위츠는 자신의 장기인 빅 밴드 재즈를 주조(主潮)로 삼으면서도 전작 ‘라라랜드’의 선율을 절묘하게 변주해서 슬쩍슬쩍 녹여 넣는다.

그런 의미에서 ‘바빌론’은 할리우드 100년사에 대한 이야기이자 영화와 소리의 결합 방식에 대한 집요한 탐구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매트릭스’, ‘터미네이터’와 ‘아바타’의 주요 장면들을 보여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영 시간이 3시간 8분에 이르는 데다 감독의 자의식 과잉 때문에 대중적 확장성에 한계가 있는 점은 단점. ‘바빌론’은 오는 3월 아카데미 음악상·의상상·미술상 3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다른 부문은 몰라도 음악상만큼은 가장 강력한 후보작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