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황후 엘리자베트'.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후가 되고 싶으냐?”

이 질문에 바이에른 왕가의 열여섯 살 말괄량이 소녀 엘리자베트의 마음은 요동친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독일 6부작 드라마 ‘황후 엘리자베트’의 첫 장면이다. 당초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약혼하기로 예정됐던 건 언니 헬레네. 하지만 첫 만남에서 황제는 언니가 아니라 여동생 엘리자베트에게 대번 마음을 빼앗긴다. 황제와 엘리자베트는 결혼을 약속하지만, 황제의 어머니는 급작스러운 ‘며느리 교체’에 노발대발한다. 게다가 영불(英佛) 연합군과 러시아의 크림 전쟁부터 급진적 혁명의 기운까지. 오스트리아 제국은 그야말로 일촉즉발 위기다. 과연 소녀는 무사히 황후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황후 자리(44년)를 지킨 엘리자베트(1837~1898)가 안방과 극장의 여주인공으로 돌아왔다. 넷플릭스 드라마에 이어서 최근 극장 개봉한 영화 ‘코르사주’ 역시 그의 비극적인 삶에 초점을 맞췄다. 독일 바이에른 왕가 출신으로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가 본명. 하지만 지금도 오스트리아에서는 ‘시시(Sisi)’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사랑받는다.

사후 120년이 지난 황후가 여전히 재조명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소설이나 영화 못지않게 드라마틱한 삶이다. 엘리자베트는 허리 치수가 19인치를 넘는 법이 없었던 절세미인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1898년 스위스 제네바 호숫가에서 이탈리아 무정부주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지고 말았다.

다음으로 두 차례 세계 대전 이전에 아름답지만 서서히 저물어가는 세기말의 빈을 상징하는 이름이라는 점이다. ‘코르사주’를 연출한 오스트리아 여성 감독 마리 크로이처의 말처럼 “시시는 모차르트와 더불어 오스트리아 최고의 관광 자원”으로 꼽힌다.

마지막으로 황후 자신이 다층적이고 입체적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와 그리스 고전을 즐겨 읽고 하이네풍의 낭만적 자작시를 썼으며 승마와 사격도 즐길 만큼 진취적인 여성이었다. “시대를 앞서간 황후가 대중문화의 조명을 받고 있는 것”(뉴욕 타임스)이라는 분석이다.

영화 코르사주. 그린나래미디어


넷플릭스 드라마가 전통적인 궁중 사극에 가깝다면, 지난해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초청작인 ‘코르사주’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황후의 삶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코르사주(corsage) 자체가 허리를 강하게 죄는 여성 의상을 뜻한다. ‘코르사주’의 주연을 맡은 여배우 비키 크립스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진짜 고문 도구라서 제대로 숨 쉴 수도 없고 감각마저 사라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때마침 엘리자베트 황후의 초상화는 서울에서도 만날 수 있다. 3월 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빈 미술사 박물관 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이다. 출구 직전의 전시실에 남편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초상화와 나란히 걸려 있다.

작품5 - 요제프 호라체크, ‘엘리자베트 황후’(1858). /빈미술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