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간 ‘나를 위한 노래(출판사 마음산책)’를 펴낸 작가 이석원. /박상훈 기자

명반을 남기고 은퇴한 음악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밴드 언니네이발관 출신 이석원(51)을 부르는 수식어다. 그가 최근 신작 산문집 ‘나를 위한 노래’를 냈다. 지난 7월 출판사 마음산책 의뢰로 관객 1300여 명 앞에서 ‘관계’ ‘선택’ ‘창작’에 대해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음악인이던 시절 그가 만든 곡은 청자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홍익대 인근에서 만난 그는 “이 책만큼은 나를 위한 노래와도 같았다”고 했다. “긴 슬럼프를 벗어나게 해줬고, 저를 완전히 다시 태어나게 해줬죠.”

그간 그의 인생 경로는 사실 슬럼프와 거리가 멀어 보였다. 1994년 PC통신 시절 이석원은 온라인 음악 동호회에서 가상의 밴드 ‘언니네이발관’ 리더인 척했고, 초보인 기타 실력이 탄로 나기 직전에서야 사람을 모아 실제 동명 밴드를 결성했다. 시작은 엉뚱했지만, 2008년 낸 5집 ‘가장 보통의 존재’로 이듬해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대상 격인 ‘올해의 앨범’을 차지했다. 15만 장이 팔려나갔다. 당시 인디 밴드로는 경이로운 판매량. 하지만 이들은 돌연 2017년 6집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이석원은 작가로도 성공적인 길을 걸었다. 2009년 첫 산문집 ‘보통의 존재’를 시작으로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등을 서점가 베스트셀러에 올린 것. 하지만 “음악을 그만둔 뒤 병적인 헛헛함이 찾아왔다. 매일 출근하듯이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오픈 시간에 들어가 몇 시간 동안 옷을 사들였다”고 했다.

설상가상 “코로나 기간을 거친 뒤엔 글마저 쓰기 싫어졌다”고 했다. 그렇게 의욕 없이 지내던 올해 4월, 이번 책의 재료가 된 강연 의뢰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강연료나 벌어서 또 옷이나 사야지”란 심보로 받아들였지만, 자신의 앞 순서로 무대에 선 임경선 작가의 모습에 “가슴이 끓어올랐다”고 했다. “무대가 싫어 음악을 그만뒀었는데, 다른 사람이 마이크 든 걸 보고 막 뛰어올라가고 싶고, 반갑더라고요.”

그는 특히 “강연 중 청중이 ‘인간관계 손절 잘하는 법’을 가장 많이 질문한 게 공감이 많이 갔고, 위로가 됐다”고 했다. “저 역시 남 눈치를 많이 보며 살아왔거든요. 정신과 상담을 받을 때도, 처방약 효과가 없어도 좋다고 거짓말하며 의사 기분을 맞췄죠. 저처럼 태생적으로 타인과 불편해지는 게 싫은 사람이 분명 있는 거예요.”

이석원은 “누가 누구를 ‘잘 안다’고 하는 걸 보면 힘이 든다.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유독 깐깐하다”고도 했다. “300페이지짜리 책을 읽다가도 자기 맘에 거슬리는 문장, 단어 하나만 나와도 책을 덮는다 말하는 사람들이 늘었죠. 사람들은 사실 타인을 볼 때 보고 싶은 것만 본단 사실이 좀 무서워요. 타인에게 수정할 기회를 주지 않는 거잖아요.”

그는 “이 책을 계기로 다시 노래를 써 나갈 힘을 얻었다. 내년 중 한두 개라도 발표하는 걸 목표로 곡을 쓰고 있다”고 했다. 다만 “무대에는 서지 않을 거다. 언니네이발관도 다시 할 의미를 못 느낀다. 그건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밴드”라며 “창작자 이석원으로 새 곡을 내고 싶다”고 했다. “언니네이발관 2집 작업을 함께 했던 이상문이란 친구가 세상을 떠난 지 20주기 되는 내년 기일에 맞춰 곡을 내고 싶어요. 그 녀석을 위한 곡이랄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저를 위한 곡이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