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또 아이돌 이야기다. 왜 사십대 중반의 칼럼니스트가 신문에 또 아이돌 이야기를 하는가가 불만인 독자도 계실 것이다. 어쩌겠는가. 이 지면을 나에게 허락한 것은 조선일보다. 나는 아이돌을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아이돌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외람되지만, 모든 것은 독자 여러분이 감내해야 할 몫이다. 사실 아이돌 이야기는 알면 알수록 인생에 도움이 된다. 중장년인 당신이 아들딸 혹은 후배들과 대화 소재를 늘리기 위한 가장 좋은 주제이기도 하다.

아이돌 덕질을 하다가 깨달았다. 아이돌 덕질을 하다 보면 결국 선호하는 멤버가 생기게 마련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멤버를 뽑아 보니 그룹 내에서도 미소가 가장 밝고 기분 좋은 멤버들이었다. 여기서 그들의 이름까지 밝힐 수는 없다. 아이돌 고유명사 구분에 혼란을 겪고 있는 당신이라면, 그들의 이름까지 밝히는 것은 지나친 지적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뉴진스라는 그룹의 존재를 어제 알게 된 사람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멤버가 민지라는 사실까지 밝힐 생각은 없다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내가 좋아하는, 미소가 밝은 멤버들은 하나같이 오랜 유학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혹은 교포였다. 납득이 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미소를 짓는다. 우리로서는 다소 과할 정도로 활짝 웃는다. 한국인은 사용법을 잊어버린 근육을 어린 시절부터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장착된 미소다. 한국에서만 산 한국인은 훈련받은 아이돌도 그런 미소를 짓지 않는다. 편견이라고? 지금 스마트폰으로 당신의 대외용 미소를 촬영해 보시라. 그렇다. 그건 기껏해야 웃어줄까 말까 망설이는 표정 정도에 불과하다.

몇주 전 한국을 방문한 재미교포 감독 앤드루 안을 만나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는 OTT 서비스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는 영화 ‘파이어 아일랜드’를 연출한 남자다. 만약 당신이 디즈니플러스를 구독하고 있다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퀴어 로맨틱 코미디로 다시 창조한 이 영화를 꼭 보시길 권한다. 여튼 나는 그와 인터뷰를 진행한 뒤 활짝 웃으며 함께 셀카를 찍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역시 교포의 미소를 따라갈 수는 없다. 미소는 역시 미제다.

한국이 미소의 나라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미소의 나라’ 타이틀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태국에게 어차피 상대가 되지 않는 영역이다. 미소의 나라가 될 수도 없다. 유아 시절부터 대외용 미소를 훈련해온 미국인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요즘 셀카를 찍으며 미소를 연습하고 있다. 더 잘생겨질 수는 없지만 더 기분 좋은 인간이 될 수는 있기 때문이다. 이게 내가 뒤늦게 아이돌 덕질을 하다가 발견한 교훈이다. 아이돌에 과몰입하는 중년 남자의 셀카로 연습한 미소가 점점 발전하는 과정은 내 인스타그램으로 확인해 보시길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