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야 레즈네바. /한화클래식

최근 세계 음악계에서 주목받는 러시아 소프라노 율리야 레즈네바(33)의 고향은 극동 사할린섬. 지구물리학을 전공한 부모님이 근무했던 연구소가 사할린에 있었다.

다음 달 3~4일 내한 공연을 앞둔 그는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부모님은 모두 모스크바에서 공부하셨지만, 극동 지역의 천연자원 탐사와 분석을 위해서 사할린 근무를 자원했다”고 말했다. “굳이 구분하면 아버지는 현장 탐사, 어머니는 자료 분석에 가까웠지만 함께 근무한 직장 동료”라며 “연구소에서는 먼저 전입한 어머니가 직장 상사였다”며 웃었다. 사할린에서 태어난 덕분에 어릴 적부터 한인(韓人) 친구들과 뛰어놀고 동네 시장에서 구입한 매운 김치를 즐겨 먹은 것도 추억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다섯 살 때부터 성악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레즈네바가 음악적 재능을 드러내자 부모님은 딸의 교육을 위해서 모스크바행(行)을 결심했다.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성악을 모두 전공한 것도 특징. 그는 2010년 영국 로열 앨버트홀에서 로시니의 오페라에 출연하면서 세계 음악계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1990년대부터 고음악계를 주도한 여가수들이 경력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시점에서, 레즈네바는 동년배 가수 중에서 가장 젊은 편이면서도 가장 뚜렷한 존재감을 지닌 존재”(음악 칼럼니스트 이준형)라는 평을 받는다.

보통 소프라노라면 베르디나 푸치니 오페라의 비극적 여주인공을 떠올리지만, 레즈네바의 장기는 따로 있다. 바흐·헨델·비발디 같은 바로크 음악과 모차르트·로시니의 오페라들이다. 그는 “리듬감이 넘치고 유연하고 자유로운 즉흥 연주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바로크 음악은 재즈를 닮았다. 노래할 때에도 상상력을 발휘하고 모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도 공통점”이라고 했다. 러시아는 냉전 시절부터 전통적인 클래식 강국으로 꼽혔지만, 상대적으로 고음악 분야에서는 약점을 보였던 것이 사실. 그는 “러시아에는 바로크 전통이 척박했고 대중적 인기도 적은 편이었지만, 모스크바에서 성악 선생님들이 선물한 바흐의 오라토리오와 헨델 아리아 음반을 들으며 바로크 음악의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는 선배 성악가는 소프라노 조수미와 이탈리아 출신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 그는 “조수미와 바르톨리가 지휘자 카라얀 앞에서 노래한 비디오 테이프가 집에 있었는데, 조수미의 목소리는 순수하면서도 천사 같았다(angelic)”고 했다. 조수미와 바르톨리를 보면서 성악의 꿈을 키운 후배가 그 반열에 오른 셈이다. 레즈네바는 12월 3~4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내한 공연에서 명문 고음악 단체인 베네치아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헨델과 비발디의 오페라 아리아들을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