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씨는 450년 역사의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악장. 28일부터 내한 공연을 앞둔 그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고향 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마스트미디어

현존하는 가장 오랜 역사의 오케스트라는 어디일까. 1570년 창단한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는 1548년 설립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더불어 1~2위를 다투는 명문 악단이다. 독일이 통일 왕조를 이루지 못하고 여러 궁정으로 나뉘어 있던 시절의 역사적 산물이다. 4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악장이 한국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30)씨다.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의 감독이자 담임이라면, 지휘자의 왼쪽 곁에서 연주하는 악장은 팀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 매년 180여 회의 오페라와 콘서트를 소화하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는 3명의 악장을 두는데, 그 가운데 최연소 악장이다. 오는 28일부터 이 악단의 첫 내한 공연을 앞두고 이씨와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서울 출생의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2016년 닐센 콩쿠르에서 우승한 전형적인 ‘영재 출신’ 연주자. 하지만 2013년부터 독일 베를린의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진로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그는 “어릴 적부터 솔리스트(독주자)가 전부라고 생각하고서 공부했는데, 오케스트라와 오페라의 중심인 베를린에서 다양한 공연을 접하면서 ‘독주(獨奏)는 바이올린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베를린에서 베르크의 오페라 ‘보체크’를 처음 보면서 성악보다도 오케스트라의 사운드에 충격을 받았다. 당시 악단이 ‘평생 직장’이 된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였다. 2017년 이 악단에 입단한 그는 이듬해 종신 재직권(tenure)을 받았다. 그가 말하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장점은 짙고 어두운 음색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 그는 “다른 영미권 오케스트라들이 밝고 화려한 현대적 사운드를 추구한다면, 상대적으로 우리 악단은 특히 현악에서 고유한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클래식 음악의 본산인 유럽에서도 한국 여성 악장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악장 김수연,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악장 박지윤 등이 대표적이다. 이씨는 “동양인이나 여성이라는 외적인 요인은 더 이상 장벽이 되지 않는 시대가 되고 있다. 문화적·언어적 장벽을 스스로 얼마나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매년 180회 가운데 60여 차례 악장으로 무대에 서는 이씨는 남은 시간에는 실내악이나 독주 활동을 병행한다. 그는 “바이올린 독주가 내 소리를 듣는 일이라면 악장은 다른 단원들의 소리를 듣는 일에서 출발한다”면서 “그렇기에 나만의 소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독주와 합주 사이에서 음악적 균형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지휘 크리스티안 틸레만)는 28일 롯데콘서트홀과 30일 예술의전당에서 브람스 교향곡 전곡(4곡)을 들려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