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영화제 마켓(ACFM) 주최로 열린 '2022 아시아콘텐츠어워즈(ACA)' 행사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배우 박은빈이 레드카펫으로 입장하고 있다. 이날 박은빈은 ACA 여자 배우상을 받았다. /연합뉴스

이쯤 되면 ‘영화제 속 OTT 영화제’다.

넷플릭스, 디즈니+, 왓챠, 웨이브, 티빙 등 국내외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미공개 시리즈들이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 상영)로 영화관 대형 스크린에 걸렸다. 상영 뒤 감독·배우가 참석하는 ‘관객과의 대화’(GV)가 열리면 사람들은 밤이 깊어도 떠날 줄 몰랐다. 영화제 개막 뒤 6~8일 첫 사흘간 가장 많은 시선이 쏠린 관객 참여 프로그램 야외극장 오픈토크는 8차례 중 6차례가 OTT 작품. 예술·독립영화에선 만나기 힘든 스타 배우들이 호명돼 무대에 오르면, 1000여 석을 꽉 채운 관객들의 열띤 환호가 쏟아졌다. 자리를 못 잡은 사람들은 무대 주변에 몰려서서 저마다 핸드폰을 들어 사진 찍기 바빴다.

◇”관객 반응 뜨거워” 9편으로 상영 확대

티빙 스릴러 시리즈 '몸값'의 배우 장률, 전종서, 진선규(왼쪽부터)가 지난 5일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레드카펫을 통해 입장하고 있다.(위 사진) 아래 사진은 '몸값' 속 배우 진선규, 전종서, 장률.(왼쪽부터) /뉴스1·티빙

부산영화제는 지난해 넷플릭스 ‘지옥’ 등 3편을 공개하며 OTT 시리즈 상영 ‘온 스크린 섹션’을 처음 만들었다. 기존 영화와 러닝타임을 비슷하게 맞춰 초반 1~3화를 한꺼번에 상영한다. 올해 이 섹션 상영작은 9편으로 늘며 본격적으로 영화제 핵심 프로그램이 됐다. 시리즈 상영 극장은 매진 행렬. 한 예로 전종서·진선규가 주연한 티빙 시리즈 ‘몸값’은 예매 시작 수시간 만에 3회차가 매진되며 1회차 상영을 추가로 마련, 총 4회차 1600여 석이 전석 매진됐다. ‘몸값’은 충격적 반전의 동명 단편영화를 리메이크한 독특한 스릴러다.

6일 부산영화제 야외극장에서 열린 OTT 디즈니+ 신작 '커넥트'의 오픈 토크 행사에서 출연 배우 고경표, 김혜준, 정해인과 연출을 맡은 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관객들을 향해 한 눈을 가리며 웃고 있다. 극중 초인적 재생 능력을 가진 주인공 '동수'(정해인)는 빼앗긴 한쪽 눈을 통해 연쇄살인마 '진섭'(고경표)이 보고 있는 것이 보일 때 마다 한 쪽 눈을 가린다. 이날 오픈토크 역시 부산 영화의전당 야외극장 객석 약 1000여 석이 꽉 찼다. /부산국제영화제

칸과 베네치아영화제에 단골로 초청되는 일본 감독 미이케 다카시는 배우 정해인, 고경표, 김혜준과 함께 만든 디즈니+ 시리즈 ‘커넥트’로 처음 부산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초인적 재생능력을 가진 남자의 눈이 연쇄 살인마에게 이식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그는 “OTT 드라마로 영화제에 초청될 거라곤 생각도 못해서 와 보니 더 기쁘다. OTT 작품이라 해도 영화제에서 상영하고 관객과 만나는 형태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도 알게 됐다”고 했다.

30여 년간 100여 편 넘는 작품을 만들어온 ‘장르 영화 장인(匠人)’ 미이케 타키시 감독은 칸 영화제에 4차례 공식 초청됐으며, ‘대부’ 시리즈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본 영화감독”으로 언급한 바 있다.

◇OTT 신작 스타들 가는 곳 마다 ‘구름 관객’

지난 7일 부산영화제 오픈토크에 참여한 티빙 ‘욘더’ 출연진 정진영, 이정은, 한지민, 신하균과 이준익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신하균, 한지민, 이정은, 정진영이 출연한 티빙(파라마운트)의 SF ‘욘더’는 천만영화 감독 이준익의 첫 시리즈 연출작이자 SF 도전작. 관객 행사와 오픈토크 등 강행군을 이어간 이 감독도 “설마 OTT 시리즈로 부산영화제에 오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소설가 김장환의 원작소설 ‘굿바이 욘더’를 드라마화한 시리즈 ‘욘더’는 안락사가 합법화된 2032년, 죽은 아내가 업로드된 기억의 형태로 가상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 뉴스 기자 남편이 알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를 그린다. 기억과 존재의 구분, 삶과 죽음의 경계에 관한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물음을 애닲은 사랑 이야기의 그릇에 담고 수준높은 CG로 잘 포장해 보는 재미가 있는 드라마로 만들어냈다.

주말 관객이 몰린 8일 토요일. 사람으로 가장 붐빈 행사는 야외극장서 열린 영화제 마켓(ACFM) 주최의 아시아콘텐츠어워즈(ACA) 시상식이었다. 아시아 전역의 TV와 OTT 콘텐츠 중에 선정해 주는 상. 일본에 온라인 생중계되고 걸그룹 니쥬가 오프닝 공연을 맡았다. 여자 배우상을 받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배우 박은빈은 “큰 사랑을 보내주신 전 세계 시청자분들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관객’이 아니라 ‘시청자’다.

부산영화제 허문영 집행위원장은 “이전엔 OTT 시리즈에 대한 영화인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지만, 갈수록 ‘또 다른 영화의 영역으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해 상영 때 관객의 반응이 굉장히 뜨거워 올해 더 확대하게 됐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홍보관에도 영화제 관객들 몰려 신작 ‘붐업’

넷플릭스 부스에서 전시물을 살펴보는 방문객들. /연합뉴스

영화제 기간 OTT 브랜드들이 만든 홍보관들도 붐비고 있다. BIFF 광장의 웨이브 브랜드 부스 ‘다이빙 존’엔 8일까지 약 3000명이 방문했다. 아이돌 출신 배우가 출연한 새 시리즈 ‘약한 영웅 Class1′의 미니 토크쇼와 드라마 ‘트레이서’의 임시완, 고아성 깜짝 방문 등으로 관객을 흡수했다. 티빙의 브랜드 부스는 새 시리즈 ‘몸값’을 활용한 셀프 포토 이벤트 등 참여 프로그램을 제공했고, ‘욘더’의 미디어 아트 전시도 따로 준비하면서 2500여 명이 몰렸다. 넷플릭스는 아예 카페 한 곳을 통째로 빌려 신작 시리즈 및 영화 전시 공간으로 운영했다.

◇한석규 주연 중년 멜로부터 MZ세대 생활밀착형 SF까지

전여빈, 나나 주연의 밀레니얼 세대 생활밀착형 SF 시리즈 '글리치'. 호러와 코미디, SF판타지와 밀레니얼의 팍팍한 사회 생활 이야기가 맛깔나게 뒤섞여 있다. /넷플릭스

부산영화제의 OTT의 바람에는 이유가 충분하다. 영화제 입장에선 ‘온라인 플랫폼으로 확장되는 영화의 모습을 빠르게 반영한다’는 명분으로 관객의 관심을 끌 접점을 넓히며 예술영화 중심 영화제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편이 되고 있다. OTT들로선 시리즈 초반부를 맛보기로 보여주면서, 스타 배우들을 앞세워 소문을 퍼뜨릴 절호의 기회다. 올해 부산에서 OTT 시리즈는 더 이상 곁가지 조연이 아니라 영화제의 당당한 주연으로 부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OTT 시리즈 상영작은 9편. 티빙(파라마운트)은 감성 멜로 SF ‘욘더’와 반전 가득한 독특한 개성의 스릴러 ‘몸값’을, 디즈니+는 ‘커넥트’와 ‘피의 저주’를. 넷플릭스는 시리즈 ‘글리치’, ‘썸바디’ 등 각 두 편씩의 신작을 부산영화제에서 선보였다. 왓챠는 한석규·김서형 주연 중년 멜로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웨이브는 아이돌 출신 등 신예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성장극 ‘약한영웅 Class 1′을 가져왔다. 아직 플랫폼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1990년대 중반 인기를 끌었던 TV시리즈 ‘킹덤’(1994)의 최종편 격인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킹덤: 엑소더스’도 국내 관객과 처음 만났다.

넷플릭스는 김유정 주연 ‘20세기 소녀’, 오스카 감독상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의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의 연대기’ 등 단독 공개 오리지널 영화도 부산영화제에서 상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