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필하모닉의 지휘자 야프 판 즈베던이 서울시향 차기 음악 감독으로 선임됐다. 10년간 그가 이끌었던 홍콩 필하모닉이 2019년 ‘올해의 오케스트라’에 선정되는 등 탁월한 오케스트라 조련사로 꼽힌다. /서울시향

뉴욕 필하모닉의 음악 감독인 네덜란드 지휘자 야프 판 즈베던(61)이 서울시향 차기 음악 감독으로 선임됐다. 계약 기간은 2024년부터 5년. 서울시향은 “내년 7월부터 감독 지명자 자격으로 악단을 지휘할 예정이며, 공식 취임하는 내후년부터는 매년 8~12회씩 서울시향과 연주할 것”이라고 4일 밝혔다.

뉴욕 필하모닉은 레너드 번스타인·주빈 메타·로린 마젤 같은 명지휘자들이 이끌었던 미 정상급 오케스트라. 보스턴·시카고·필라델피아·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흔히 ‘빅 파이브(Big 5)’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미 정상급 악단의 감독이 한국 오케스트라 수장이 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15년 지휘자 정명훈의 사임 이후 정체 상태에 있던 서울시향으로서는 단숨에 재도약을 노리는 승부수인 셈이다. 손은경 서울시향 대표는 “한국은 K팝·영화·드라마에 이어서 클래식 분야에서도 촉망받는 아티스트들의 산실로 주목받고 있다”면서 “서울시향도 최정상급 지휘자의 영입을 통해서 세계적 오케스트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차기 감독인 판 즈베던은 18세 때 네덜란드 명문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의 최연소 악장으로 임명된 바이올리니스트 출신. 1979~1995년 악장으로 재직하다가 번스타인의 초청으로 독일 베를린에서 악단 리허설을 맡으면서 지휘자로 변신했다. 그 뒤 네덜란드 라디오 필하모닉·미 댈러스 심포니 등을 이끌었다.

2019년 그라모폰 '올해의 오케스트라'에 선정된 홍콩 필하모닉과 지휘자 얍 판 즈베던.

특히 2012년부터 10년간 홍콩 필하모닉의 음악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16시간 가까이 걸리는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전곡 연주 같은 굵직한 기획으로 세계 음악계의 조명을 받았다. 홍콩 필은 이 실황 연주와 음반으로 2019년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의 ‘올해의 오케스트라’에 선정됐다. 서울시향으로서는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 조련사’를 영입한 셈이다. 2017년에는 뉴욕 필의 음악 감독으로 취임했지만 2024년을 끝으로 물러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1997년 아내와 함께 자폐 아동 가정을 돕기 위한 ‘파파게노 재단’을 설립하는 등 적극적인 사회 봉사 활동으로도 유명하다. 파파게노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새잡이꾼의 이름. 오페라에서 침묵을 지켜야 하는 시련을 겪는다는 점에서 재단 이름을 착안했다. 실제로 판 즈베던의 아들도 자폐증을 지니고 있다. 2016년에는 자폐 아동과 청소년들이 상주하면서 음악 수업과 직업 훈련을 받을 수 있는 ‘파파게노의 집’도 건립했다. 취미는 권투. 코로나 기간 30㎏ 가까이 감량했다고 지난해 외신 인터뷰에서 밝혔다.

서울시향 도약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하지만 난관도 있다. 일부 단원은 ‘판 즈베던이 서울시향을 지휘한 적이 없는데 명성만 믿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실제로 판 즈베던은 KBS교향악단과 경기 필하모닉 등을 지휘했지만, 아직 서울시향과는 호흡을 맞춘 적이 없다. 재도약일까 충돌의 전조일까. 이번 발표로 서울시향은 또다시 기로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