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에 둘려 있는 띠지는 구매 직후 버려지는 운명을 맞곤 한다. 출판사들은 유명인의 추천사나 저자의 수상 실적 등을 적어 작은 광고판으로 띠지를 활용하지만, 독자 입장에선 책 읽는 데 걸리적거리는 종이로 인식되는 것. 하지만 이런 홍보용 띠지도 디자인 작품이 되면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강원 속초 동아서점에선 지난 15일부터 9월 3일까지 ‘띠지 경연대회’가 열리고 있다. 책갈피로 쓰지 않는 한 버려지는 띠지의 존재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취지. 책 홍보를 담당하는 마케터들이 직접 디자인한 띠지들이다. 지역의 작은 서점이지만, 민음사와 문학동네 등 수도권 대형 출판사 13곳이 참여해 출판사별로 2종씩, 종당 20권 수제작한 한정판 띠지를 휘감은 책을 판매한다.
매대에 놓인 책들의 띠지는 디자인부터 소재까지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박지영 작가의 ‘고독사 워크숍’(민음사)엔 검은색 띠지 위에 포스트잇 크기의 편지 봉투가 붙어 있어 책을 살 때 띠지 속 편지부터 찾게 된다. 김훈 작가의 ‘저만치 혼자서’(문학동네)는 갈색 마끈으로 세로 방향이 묶여 있다. 그 중앙에 손글씨체로 쓰인 문구 라벨이 붙어 있어 마치 소포를 받는 것처럼 꾸며놓았다.
독특한 디자인의 띠지들 가운데 ‘노력형’도 보인다. 수오서재에서 출간한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는 이 출판사 직원 한 명이 4일 동안 직접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볼펜으로 문구를 썼다. 마음산책은 평소 띠지를 거의 활용하지 않는 곳이지만, 이번 대회를 위해 원고지 디자인의 띠지를 따로 제작했다.
각 출판사 매대 옆에 세워져 자사의 책을 소개하는 동물 캐릭터들도 볼거리. 동아서점에선 경연대회를 시작하기 전에 출판사별로 원하는 동물을 신청받아 홍보용 캐릭터를 만들었다. 사계절은 대표작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에 등장하는 두더지를 골랐고, 까치 출판사 옆엔 까치 캐릭터 등신대가 세워져 있다. 이 밖에 쿼카, 고양이, 수달, 공작 등의 동물들이 각 출판사의 홍보 마스코트 역할을 하고 있다.
경연대회지만 시상식은 따로 없다. 동아서점 김영건 대표는 “경쟁보다는 즐겁게 띠지 축제를 벌이는 모습으로 기획한 행사”라고 했다. 서점을 찾는 손님들 반응은 긍정적이다. 김 대표는 “띠지를 책이랑 같이 가져가도 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고, ‘이런 띠지는 소장해도 괜찮겠다’는 품평도 나온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