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나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말썽 부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매일 떠오르거나 ‘나는 나쁜 엄마’라고 자책하게 된다면 육아 우울증을 앓는 것일 수 있다. 초기 양육 과정에서 생겨나는 육아 우울증은 분노와 좌절·무력감을 불러오며 이로 인해 육아에 어려움이 생기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부모는 스스로 책망 말아야

육아 우울증의 원인으로는 힘든 육아 현실과 경력 단절에 대한 불안감, 주변으로부터의 도움 부족 등이 꼽힌다. 육아 상담을 위해 찾아온 부모 중 1716명에게 ‘아기를 키우며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물어봤더니 엄마들의 경우 ‘힘들다’(78%·이하 복수 응답), ‘어수선하다’(57%), ‘우울하다’(49%), ‘울적하다’(42%), ‘막막하다’(39%)고 호소했다. 아빠들도 ‘어수선하다’(48%), ‘힘들다’(47%)는 응답이 많았다. 육아 우울증을 의심할 수 있는 감정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 ‘아기와 좀 더 친밀하고 따뜻한 감정을 갖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다’는 응답이 엄마 61%, 아빠 76%에 달했고 ‘가끔 아기가 나를 힘들게 하려고 일부러 일을 저지르는 것 같다’는 답은 엄마 76%, 아빠 89%나 됐다. ‘내가 문제 있는 부모’라는 응답도 엄마 26%, 아빠 6%였다.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아이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줘야 하는 양육은 그 자체로 전쟁이다. 요즘 2030 엄마들은 직업과 성취를 독려하는 문화에서 자랐고 경력 단절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공부와 일에 매진하느라 살림은 많이 배우지 않았는데 양육 과정은 과거에 비해 세밀하고 복잡해져 신경 쓸 것들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몇몇 매체를 통해 ‘아기가 잘못되는 것은 부모 책임’이라는 생각이 과도하게 확산되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일부 영상으로 접하게 되는 소위 모범 가정 내지 ‘능력맘’의 모습은 무의식적인 비교를 거치면서 우울감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부모 상당수가 남들이 지적하지 않는데도 높은 목표 설정과 압박감을 경험하곤 한다. 아기가 밥을 잘 먹지 않으면 ‘내가 잘 못 먹여서’라고 생각하거나, 말이 조금만 늦게 트여도 ‘내가 말을 건네주지 않아서’라고 책망하는 식이다.

◇항우울제, 수다 떨기, 외출하기

김수연 아기발달연구소장

육아 우울증에 걸리면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 순간적으로 아기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돌연 문제 행동을 하기도 한다. 몸이 쑤시고 간혹 무감각한 듯하며 지속적인 피로감과 함께 멍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엄마가 우울증을 심하게 앓는다면 아빠도 겪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상담 과정에서 만난 일부 아빠들은 “우울해하는 아내를 위해 가사나 육아를 도왔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고 스스로 능력 없는 남편이라 느껴져 함께 무기력증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부족한 수면과 운동 부족, 대충 때우는 끼니 가운데 끝없이 밀려드는 일거리는 엄마들에게 출구가 사라진 듯한 느낌을 준다.

‘욱’하는 감정과 함께 자주 우울감이 찾아온다면 전문가 상담을 통한 항우울제나 안정제 처방이 크게 도움 될 수 있다. 약물 복용을 꺼리지 말고 적극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방법도 있다. 심신이 지칠 때 반나절 정도 아이를 맡기고 외출해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가족이나 지인이 있다면 좋겠다. 아내가 불만을 토로할 때 남편은 눈을 들여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여 이해와 공감을 표시하고 다독여준다. 그래도 우울감이 들면 친구나 지인에게 잠시 전화로 수다를 통해 고민을 나누면 기분 전환이 된다.

나 홀로 끊임없이 힘든 일이 밀려든다면 잠시 ‘10분 타이머’ ‘20분 타이머’를 켜놓고 숨 돌릴 시간을 부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당일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기는 이미 많은 외부 자극을 받았기 때문에 한 시간 정도 나이에 맞는 교육용 영상을 틀어줘도 뇌 발달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나만의 시간을 갖겠다’는 생각은 바쁜 육아 중 오히려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아기가 잠들면 그 옆에서 비슷한 자세로 잠시 잠들어보자. 일어나면 스트레스가 좀 풀릴 것이다. 창가 근처 바닥에 누워 유리창을 열고 아기와 함께 10분 정도 햇볕을 쬐면 비타민D가 합성돼 우울감을 떨치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