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뮤지컬 음반을 발표한 소프라노 임선혜. 해외에서 30여 장의 음반을 펴낸 정상급 성악가다.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오전은 보통 성악가가 목소리를 아끼는 시간대. 하지만 소프라노 임선혜(46)는 15일 오전 11시 서울 신사동 복합문화 공간 오드포트에 도착하자마자 연달아 세 곡을 불렀다. 그런데 곡목이 독특했다. 평소 즐겨 부르는 바흐의 종교곡이나 모차르트의 오페라 아리아 대신, 피아니스트 문재원의 반주에 맞춰 뮤지컬 삽입곡을 부른 것이다.

조지 거슈윈의 뮤지컬 ‘스트라이크 업 더 밴드(Strike Up the Band)’에 실린 ‘내가 사랑하는 사람(The Man I Love)’에선 재즈의 흥겨운 리듬감을 담아 노래했고, 독일 뮤지컬 ‘엘리자벳’의 ‘나는 나만의 것’은 원어인 독어로 소화했다. 마지막으로 인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히트곡 ‘생각해(Think of Me)’에서는 당초 부르던 음보다 한 음을 높여서 불렀다. 노래를 마친 임선혜는 “아직 시차 적응이 덜 되어서 세 시간 자고 나왔는데, 오늘 피아니스트가 하이 C(높은 도)를 부르게 하시네요”라며 웃었다.

임선혜는 르네 야콥스와 필립 헤레베헤 등 유럽의 바로크 거장들과 협연하는 고음악 전문 소프라노. 그런 그가 이번엔 뮤지컬 음반을 펴냈다. 음반 제목은 이날 부른 거슈윈의 곡명에서 따온 ‘내가 사랑하는 사람’. 지금까지 해외에서 30여 장의 음반을 녹음했지만, 국내에서 독집 음반을 펴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뮤지컬 음반도 물론 처음. “고음악에서 출발해 예술 가곡과 현대음악에 이어서 뮤지컬까지 광폭(廣幅)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소프라노”(음악 칼럼니스트 이상민)라는 평이 실감 났다. 임선혜는 이날 음반 발매 기념 간담회에서 뮤지컬 작업을 ‘음악 인생의 즐거운 피크닉’에 비유했다.

돌아보면 언제나 뮤지컬은 임선혜 곁에 있었다. 서울대 음대 재학 시절에는 레너드 번스타인의 인기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합창 파트를 맡아서 사전 녹음에 참여했다. 2015년 뮤지컬 ‘팬텀’ 한국 초연 당시에는 여주인공 크리스틴 역을 맡았다. 지난해만 그는 ‘팬텀’으로 34차례 무대에 올랐다. 임선혜는 “노래를 시작할 무렵에는 창부터 트로트까지 모든 방면의 노래를 다 해보고 싶었는데, 정작 성악을 선택한 뒤에는 이 길(클래식)에 전념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다”고 말했다. 클래식과 뮤지컬을 부를 적에는 창법의 차이도 생기게 마련. 그는 “(소프라노들은) 오히려 낮은 저음을 부르는 게 어렵다. 그래서 한두 음을 높여서 부르면 감정을 과장하거나 날카로운 소리로 변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이번 뮤지컬 음반에는 지난해 영국 BBC 카디프 성악 콩쿠르 우승자인 바리톤 김기훈과 플루트 조성현, 클라리넷 김한 등 클래식 음악계의 올스타들이 ‘초대 손님’으로 참여했다. 임선혜는 “제 음반인데 거꾸로 ‘주객전도’가 될까 봐 살짝 걱정”이라며 웃었다. 음반 발표 이후에는 다시 본업인 바로크로 돌아가 바흐의 ‘결혼 칸타타’ 등 독일의 바로크 칸타타 음반을 녹음할 예정.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뮤지컬을 묻자 그는 주저 없이 번스타인과 거슈윈의 작품들을 꼽았다. “오페라와 뮤지컬 분야에서 모두 걸작을 남겼고 두 분야 사이의 중요한 가교(架橋)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답변에서 임선혜의 음악적 야심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