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웃는 모습과 한쪽 손을 들며 ‘전국~’을 외치는 모습은 송해의 트레이드 마크다. 사진은 지난 2016년 KBS ‘전국노래자랑’ 세계대회편 녹화를 마친 뒤 송해의 모습. 미국, 브라질, 가나 등 전 세계에서 온 해외 동포가 그와 만났다. /성형주 기자

“고향에 계신 여러분! 그리고 어머니, 내 아들아! 여기, 복희가 왔습니다. 천국~노래자랑!”

MC 송해(95·본명 송복희)는 이번 주 일요일 방송 오프닝을 위해 이렇게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 별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듯, 영원히 마이크를 잡고 있을 것 같은 모습. 이제 깊은 잠에 들어 그의 환한 웃음은 더는 볼 수 없지만, 귓가에 쩌렁거리던 그의 목소리는 남아있다.

KBS 1TV ‘전국노래자랑’의 최장수 MC 송해가 8일 서울 도곡동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송해는 딸의 신고로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지난 3월 코로나 3차 접종 후 돌파 감염을 극복한 그는 지난달 건강 이상으로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해 나흘 간 치료받은 후 퇴원했다.

1988년부터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맡은 그가 마치 전 국민에게 외치듯 “전구우욱~”을 선창하고 “빰 빰빰 빰빰 빰~빰~” 하는 악단의 연주가 나오면 시청자들은 조건반사처럼 “빠라밤 빠라밤 빠라밤빰 빰빰 빰빰~”을 따라 부르곤 했다. ‘일요일의 남자’이자 ‘전 국민의 오빠’였다. 지난 4월 말엔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되기까지 했다.

송해(본명 송복희)

황해도 재령 태생인 송해는 어릴 때부터 끼 많은 개구쟁이였다. 해주예술전문학교에 입학해서 성악을 공부했다. 1951년 1·4후퇴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월남했다. 연평도에서 미 군함을 타고 부산에 도착한 송해는 바다를 건너며 ‘바다 해(海)’ 자를 예명으로 썼다. 1955년 창공악극으로 데뷔했다. 1970년 TBC 동양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웃음의 파노라마’, MBC ‘웃으면 복이 와요’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코미디언으로 활약했다.

송해에겐 ‘큐카드’(방송 대본)가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원고 수십 장은 미리 외워두고, 그 지역 흥(興)은 몸으로 끌어냈다. 녹화 전날부터 악단과 함께 동네에 내려가 주민들과 정담(情談)을 나눴다. 동네 목욕탕이나 사우나에 들러 주민들과 가까워지는 것이 30년 넘게 이어진 그의 ‘의례(儀禮)’다. 온갖 ‘지역 먹방’은 물론, 가끔 무대에서 펼쳐지는 기행(奇行)도 송해를 만나면 즉석 스탠딩 코미디 무대로 바뀐다. ‘미스터트롯’(2020)의 스타 임영웅, 이찬원, 정동원, 김희재, 김수찬은 물론 ‘미스트롯’(2019)의 송가인, 국악 소녀 송소희, 오마이걸 승희 등도 전국노래자랑이 낳은 스타다.

몇 시간씩 서서 진행하느라 온몸엔 파스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퉁퉁 부은 다리를 연방 주물러야 했지만, 그에겐 언제나 넉살과 편안함이 있었다. 상대의 어떠한 부탁도 마다하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가 이들에게 배운다고 믿었기 때문. “만 세 살부터 백열다섯 살 되시는 분까지 만나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정말 배우는 게 많아요. 이 순간에도 제 이야기를 경청하시는 분들이 저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거예요.”(2021 ‘송해의 인생 티비’)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전국 팔도 안 다녀 본 곳이 없는 그였다. 평양도 가고, 금강산도 갔다. 하지만 고향 땅만큼은 밟아 보질 못했다. 6·25 전쟁 당시 통신병으로 근무했던 송해는 과거 방송에서 “휴전 전보를 내가 쳤는데 그걸 치고 고향에 못 가게 됐다. 내가 돌아갈 길을 내가 끊은 셈이다”라며 탄식했다. 어머니와 헤어지기 전, “걱정 마세요. 이틀 뒤에 오겠다”고 했지만 평생 다시 보지 못했다. 송해가 2015년 발표한 노래 ‘유랑청춘’은 그 당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

안경 낀 얼굴로 항상 웃음 가득한 모습이었지만 그늘을 공개하기도 했다. 영화 ‘송해 1927′(2021)에서 그랬다. 1974년부터 진행했던 KBS 교통 전문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를 중도하차한 건 1986년 당시 대학생이던 아들 창진씨의 오토바이 사망 사고 때문이었다. 송해는 “사고 직후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들의 ‘아버지, 살려줘’ 하는 마지막 한마디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2018년엔 평생을 함께하자던 아내 석옥이씨마저도 곁을 떠났다.

2015년 kbs '나를돌아봐' 프로그램에서 생전의 아내 석옥이씨에게 결혼 63년 만에 무릎을 꿇고 프로포즈하는 송해. 송해는 1952년 결혼 당시 어려운 형편에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결혼한 것이 마음에 남았었다고 했다. /KBS

일요일마다 그는 출연진에게 “땡”과 “딩동댕”을 건넸다.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보세요. 땡, 땡, 땡 세 개 합치면 딩동댕 아니겠소. 우리 인생도 그런 거야.’ 인생도 끈기 있게 물고 늘어지면 언젠가 성공한다는 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날 그의 별세를 애도하며, 1등급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윤 대통령은 “희극인 송해 선생님의 별세 소식에 슬픈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대중문화예술인의 권익 보호에도 힘쓰시며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에 매진하셨다”면서 “일요일 낮마다 선생님의 정감 어린 사회로 울고 웃었던 우리 이웃의 정겨운 노래와 이야기는 국민 마음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라며 명복을 빌었다.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고(故) 송해의 빈소에 금관문화훈장이 놓여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8일 별세한 송해의 빈소를 찾은 방송인 유재석, 조세호가 고인을 애도하고 있다. 송해의 장례는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葬)으로 치러지고 장례위원장은 엄영수 코미디언협회장이 맡았다. 또 코미디언 석현, 김학래, 이용식, 최양락, 유재석, 강호동, 이수근, 김구라, 김성규 KBS 희극인실장, 고명환 MBC 희극인실장, 정삼식 SBS 희극인실장이 장례위원을 맡는더. /사진공동취재단

유족으로는 두 딸 숙경·숙연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3호실로, 장례는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으로 치러진다. 장지는 대구 달성군 송해공원 뒷산. 먼저 세상을 뜬 아내 석옥이 여사가 잠들어 있는 곳으로,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 부부가 함께 안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