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여러 연구를 통해 보행기를 오래 탄 아이들은 전혀 사용하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걸음마 시기가 오히려 늦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결과를 접한 부모들은 아예 보행기를 쓰지 않기로 결정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실제 그렇게 했다가 ‘보행기가 없으니 육아가 더 힘들어졌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아기에게 무리가 되지 않으면서 적절하게 보행기를 사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보행기·소서·점퍼·그네

아기 보행기는 원형 내지 사각형 틀에 천 소재 등으로 의자를 설치하고 바퀴를 달아 아기가 밀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든 육아 보조 장치다. 과거에는 백일 등에 친척이나 지인으로부터 선물받는 경우가 많았다.

※생후 6개월 이후, 1회 20분 내외 사용, 낙상·머리 부딪힘·장난감 삼킴 등 안전사고 주의/ 자료=김수연의 아기 발달 백과

그런데 보행기는 이름과 달리 오래 사용하면 보행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아기가 보행기에 앉은 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까치발 자세로 다리를 뒤쪽 방향으로 차게 되는데, 이는 아기가 걸을 때 사용하는 다리의 운동과는 반대 방향이다. 즉 보행기 없이 그냥 서서 걸을 때는 허벅지를 앞쪽을 향해 들어 올려 발을 성큼 내딛는 동작부터 시작하게 된다. 보행기를 쓸 때와 그냥 걸을 때 아이가 쓰는 다리 근육이 다른 것이다. 생후에 아기는 한동안 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배밀이와 네발 기기를 익히는 등 걸음마에 필요한 근육들을 스스로 키워나간다. 보행기에 의존하다 보면 이런 과정이 늦어질 수 있다.

만약 보행기에 탄 채 고꾸라지면 크게 다칠 수 있다. 따라서 계단이 있거나 경사진 곳, 집 안에서도 바닥이 낮아지는 현관 입구 쪽이나 베란다 쪽에는 가지 못하도록 조치해둬야 한다. 보행기에 탄 아기는 눈높이가 높아지고 손을 뻗어서 닿는 반경이 확장된다. 탁자나 식탁에 있는 깨지는 물건이나 뜨거운 식기는 치우는 것이 좋다.

보행기는 장점도 상당하다. 아이가 보행기에 타고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으므로 호기심 충족에 도움이 된다. 아기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울 때 태워서 달랠 수 있고 부모가 잠시 주방일을 하거나 화장실에 가기에도 수월하다. 통상 보행기의 아기 가슴팍에 접시를 두면 앉아서 식사가 가능하다.

요즘엔 바퀴 고정 장치를 두거나 의자 높이 조절 장치가 있는 제품이 많다. 아예 바퀴를 없애고 의자 주변 고정 틀에 각종 장난감을 걸어둔 것은 ‘소서’(saucer)라고 부른다. 아이 몸통을 탄력 있는 줄에 매달아 제자리 뛰기를 유도하는 제품 종류는 ‘점퍼’(jumper)다. 이들 제품은 혹시라도 부착된 장난감에 의해 아기가 다치거나 몸을 흔들다 균형을 잃고 벽 등에 머리를 부딪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하루 3~4회, 20분씩 사용

이런 보행기류(類)는 생후 6개월이 지나서 태우는 것이 좋다. 아직 고개나 허리를 가누지 못할 때 수직으로 앉혀 놓으면 몸에 무리가 가고 자세가 삐뚤어질 수 있다.

보행기는 얼마나 자주 쓸까. 필자는 1회에 20분 정도씩, 하루 3~4회 활용하면 좋다고 본다. 보행기 위에서 달리는 경험은 아기가 속도감을 느낄 수 있고 재미가 있다. 균형 감각 발달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아기가 아직 기어 다니지 못할 정도로 근육 발달이 덜 된 상태라면 아기의 발이 땅에 닿지 않도록 의자 높이를 높여서 앉혀 놓는 것도 방법이다. 일단 발이 땅에 닿으면 무리해서라도 밀고 나아가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공중에 매다는 그네도 안전에 신경 쓰면서 부드럽게 흔들어주면 아기가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낄 수 있고 귀 안의 전정기관(몸의 위치와 운동을 감지해 뇌에 전달하는 기관)에 좋은 자극을 줄 수 있다. 그네 제품은 6개월 전이라도 부모가 주의를 기울이는 가운데 활용할 수 있다.

바퀴가 없는 소서 제품도 아기가 근육 발달이 덜 돼 있다면 1회 20분을 넘지 않는 게 좋다. 소서에 앉은 아기는 고개를 들고 팔을 올리는 동작이 많아 오랜 시간 머무르면 무리가 갈 수 있다. 의자 높이를 조절해서 장난감들이 아기 가슴 밑에 위치하도록 해주면 좋다. 점퍼를 통한 제자리 뛰기 동작도 과하면 몸에 무리가 갈 수 있으므로 적절히 사용하도록 하자. 보행기를 타지 않을 때는 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기를 엎어 놓으면 고개 들기, 배밀이, 소파 잡고 일어나기 등 걸음마 단계로 나아가는 근육을 스스로 키워나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