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출근길에 연보라색 오동나무꽃이 핀 것을 보고 ‘아니, 벌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도감엔 오동나무가 이팝나무와 같이 5~6월 꽃이 피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4월말 벌써 만개한 것이다. 몇번 망설이다 2일 아침 출근길에 버스에서 내려 이 오동나무꽃을 담아보았다.

꽃이 만개한 오동나무. 2일 아침 서울 아현초등학교 앞.

오동나무는 현삼과 나무로, 쭉 뻗은 줄기에다 연보라빛 꽃송이를 매단 모습이 아름다운 나무다. 열대와 아열대, 난대지역에서 보라색 꽃이 아름다운 자카란다(Jacaranda)를 가로수·정원수로 널리 심는데, 보라색이 연하긴 하지만 오동나무도 가로수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오동나무 꽃은 통꽃 형태인데 손가락 두 마디 정도 길이고 통통하다. 꽃이 지고 난 자리에 달걀 모양의 껍질을 가진 열매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동나무는 오각형의 어른 얼굴만한 큼직한 잎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나무 중 가장 잎이 크다고 한다. 오동나무는 이 큰 잎사귀 덕분에 빠른 속도로 자라며 몸집을 불릴 수 있다. 15~20년이면 쓸 만한 재목으로 자란다. 과거 여자의 결혼 적령기에 딱 맞다. 그래서 오동나무 하면 딸을 낳으면 시집갈 때 장롱을 짜 주려고 심는 나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오동나무. 꽃송이 안쪽에 점선이 없다.

오동나무는 재질이 부드럽고 습기·불에 잘 견디며, 가공도 쉽고, 좀벌레도 잘 생기지 않는 성질이 있다. 가구를 만드는 재료로 아주 좋은 장점을 두루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장롱이나 상자, 문방구, 장례용품 등 주로 생활용품을 만드는데 쓰였다.

다른 나무들이 넘볼 수 없는 오동나무의 장점은 소리를 전달하는 성질이 좋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거문고, 비파, 가야금 같은 악기를 만드는 데 쓰였다. 박완서의 단편 ‘오동의 숨은 소리여’는 작가가 악기 재료로 오동나무를 염두에 두고 제목을 붙인 것 같다. 이 소설 주인공은 아내와 사별하고 무기력하게 장남집에 얹혀 사는 노인이다. 그는 우연히 젊은 여성의 볼맞춤을 받고 ‘싱그러운 울림’을 느낀다. 그러면서 아직 자신의 노구(老軀)에 이런 감각이 남아 있는 것에 놀라면서 가슴 설렌다. 그 대목은 다음과 같다.

<아가씨는 한술 더 떠서 김 노인의 목에 팔을 감고 볼에다가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중략) 그러나 뒷맛은 오래도록 짜릿하고 감미롭고 그리고 포근했다. 그런 느낌은 얼마 만인지, 아니 생전 처음 같았다. 그는 소년처럼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자신 속에 그런 감각이 남아 있다는 게 더 신기했다. (중략) 그런 별볼일 없는 늙은 몸이건만 얼마나 신기한가. 꽃이 피면 즐겁고, 잎이 지면 서러운 걸 느낄 능력이 정정하니. 그 밖에도 아직 깨어나지 않은 소리가 또 있을지 누가 아나. 아직도 밝혀내지 못한 비밀이 남아 있는 한 그의 목숨은 그에게 보물단지였다.>

우리나라에는 오동나무와 참오동나무 두 종류가 있다. 두 나무를 구별하는 방법은 꽃송이 안쪽에 자주색 점선들이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점선들이 많이 나 있으면 참오동나무, 없으면 오동나무다. 이 중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는 점선들이 많은 참오동나무다. 그냥 오동나무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이지만 드물다.

참오동나무. 꽃송이 안쪽에 자주색 점선들이 많다.

벽오동(碧梧桐), 개오동 등은 오동나무와 과(科·Family)가 다른 나무들이지만 잎이 비슷해 오동이란 이름이 들어가 있다. 벽오동나무는 오동나무와 잎이 매우 비슷하고 줄기 색깔이 푸르기 때문에 벽오동이란 이름을 얻었다. 초여름에 원뿔 모양의 꽃차례에 노란빛의 작은 꽃들이 수없이 달린다. 가을로 접어들면 익어 가는 열매 모양이 정말 신기하다. 작고 오목한 껍질의 가장자리에 쪼글쪼글한 콩알 크기의 열매가 3~4개씩 붙어 있다. 주로 중부 이남 지역에 심고 있는데 서울 마로니에공원에 제법 큰 벽오동나무가 자라고 있다.

벽오동나무 줄기와 열매. 줄기 색깔이 푸르다. 오목한 껍질의 가장자리에 콩알 크기의 열매가 3~4개씩 붙어 있다.

개오동나무도 오동나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목재로 쓰임새가 떨어져 붙인 이름이다. 개오동나무도 오동나무와는 다른, 능소화과에 속하는 나무다. 본래 고향은 중국이지만, 고궁에 노거수도 있으니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심었다고 할 수 있다. 비교적 곧은 줄기, 큼직한 잎새는 오동나무와 비슷하며 종 모양의 꽃송이들이 원추형으로 달리는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연한 노란색 꽃이 피는데다, 결정적으로 열매 모양이 확실하게 다르다. 오동나무의 열매는 달걀 모양인데, 개오동나무 열매는 마디가 없는 가늘고 긴 막대 모양이다.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입구에 상당히 큰 개오동나무들이 있다.

개오동나무 꽃.

개오동나무와 비슷하지만 꽃이 아름답다 하여 꽃이라는 접두어가 붙은 꽃개오동나무도 있다. 미국 원산으로, 1910년 전후로 미국 선교사가 들여와 전국에 심은 나무라고 한다. 꽃개오동나무는 꽃이 거의 흰색이고 열매가 가늘고 긴 점이 특징이다. 인천수목원에 가면 굉장히 큰 꽃개오동나무를 여러 그루 볼 수 있다.

꽃개오동.
만개한 오동나무꽃. 2일 아침 서울 아현초등학교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