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권현진 기자 = 가수 정태춘, 박은옥 부부가 26일 오후 서울 용산 CGV에서 열린 ‘아치의 노래, 정태춘’ 언론시사회 무대 인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서정성과 사회성을 모두 아우르는 음악으로 한국적 포크의 전설이 된 정태춘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2022.4.26/뉴스1

“여기 계신 기자 분들은 저희 노래가 굉장히 생소하실 거고, 저희 두 사람에 대해서도 잘 모르실 거예요.”(가수 박은옥)

26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아치의 노래, 정태춘’(5월 18일 개봉) 시사회. ‘시인의 마을’ ‘촛불’ ‘사랑하는 이에게’ 같은 주옥 같은 노래들을 남긴 부부 가수 정태춘(67), 박은옥(64)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아내 박은옥은 예의 반듯한 목소리로 “노래는 10~20대 시절에 가장 사랑했던 곡들을 평생 기억하고 좋아하게 된다. 영화를 보시고 여러분이 무엇을 느끼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무척 궁금하다”고 말했다. 데뷔 45년 차인 가수 정태춘이 장편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태춘은 “특별한 평가나 미화 없는 가수의 일대기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의 말처럼 모든 세대는 가수 정태춘에 대해 서로 다른 추억을 지니고 있다. 흘러간 ‘7080 노래’를 사랑하는 세대는 서정적인 포크 가요를 불렀던 부부 가수로 기억하지만, 민주화 세대에게는 거리와 광장에서 사회 참여적 노래를 불렀던 저항 가수로 남아 있다. 어쩌면 박은옥의 말처럼, 2000년대생 젊은 세대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일지도 모른다.

가수 정태춘의 삶과 음악을 다룬 다큐멘터리‘아치의 노래, 정태춘’. 그가 장편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NEW

2019년 전국 순회 공연 장면이 다큐의 출발점. 이들 부부의 28곡을 113분 분량의 다큐에 빼곡하게 담아서 ‘극장에서 보는 포크 콘서트’ ‘음악으로 떠나는 추억 여행’ 같은 재미가 있다. 가수 정태춘은 1978년 데뷔 음반을 낸 뒤 이듬해 방송사 10대 가수상의 신인상을 받을 만큼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노래가 있으니 발표했을 뿐, 음반을 낸 뒤에도 직업 가수가 되겠다는 마음이나 활동 계획은 없었다”는 그의 말은 덤덤하기 이를 데 없다.

‘워낭소리’ 프로듀서 출신 고영재 감독이 연출한 이번 다큐는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삶과 음악을 정확하게 이등분한다. 전반부의 방점이 서정적인 포크 가수에 찍힌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저항 가수의 면모가 부각된다. 역시 1987년 6월 항쟁이 그 분기점이다. 노동운동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던 정태춘은 그 뒤 시위 현장에서 통기타를 들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정태춘은 “제게 노래는 언제나 일기(日記)인데, 이전까지는 개인적 일기였다면 점차 사회적 일기로 변해간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시절 급진적이었던 예술가가 보수화하는 경우는 적지 않지만, 정태춘은 정반대라는 점에서도 무척 이례적이다.

서정적 포크 가수와 저항 가수라는 정태춘의 두 얼굴은 때로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공연 도중 정태춘이 정치적 발언을 이어가자, 관객 두 명이 “노래를 들으러 온 것”이라며 거세게 항의하며 퇴장하는 장면도 다큐에 그대로 담겼다. 시사회 직후 간담회에서 정태춘은 “때때로 공연장이나 행사장에서도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두 모습 가운데 하나만 기대했다면, 다큐를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2012년 이후 10년 가까이 창작 활동을 중단했던 정태춘은 최근 다시 작곡 작업에 들어갔다. 그는 “한 달 전부터 다시 쓰고 있는데 8곡을 썼다”면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