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 사무실에서 시작해 광고계 대세가 된 신우석 ‘돌고래유괴단’ 대표. 그의 꿈은 “수족관에서 쇼하는 돌고래를 풀어주는 것”이다. ‘돌고래방생단’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장련성 기자

온라인 쇼핑몰 할인 광고인데 대표가 납치되는 설정(쓱닷컴 ‘공공대작전’). 대표는 유지태, 납치범은 공유·공효진·양동근이다. 게임 광고(브롤스타즈)에 등장한 이병헌은 ‘밈’으로 회자되는 자신의 흑역사를 들춰낸다.

블록버스터급 초호화 캐스팅과 뜬금포 전개. 광고 패러다임을 바꾼 ‘핫’한 제작사 ‘돌고래유괴단’의 작법이다. 이들이 만든 삼성전자 웹드라마 ‘고래먼지’(2018)는 동영상 누적 조회 수 약 7000만을 기록하며 ‘칠천만 광고’ 시대를 열었다. 작년엔 서울영상광고제 ‘올해의 프로덕션’, ‘대한민국 광고대상 금상’ 등을 휩쓸고, OTT 업체 러브콜을 받아 영화와 시리즈도 제작 중이다. 작년 말엔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자체 콘텐츠 제작력 강화를 위해 인수했다. 신우석(40) 대표가 밝힌 독창적 행보의 추진체는 ‘아싸(아웃사이더)의 힘’이다.

-회사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안 멋진 회사일수록 사명을 거창하게 지으려 하지 않나. 멋지게 짓고 싶지 않아 이상하게 지었다. 돌고래, 유괴단. 전혀 연결점이 없어 조합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예측 불허 전개는 그의 삶도 마찬가지. 일반 궤도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강남 키즈’였지만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집이 망했다. 고교 졸업식 땐 빚쟁이들이 몰려 왔다. “’가난 배틀’서 져본 적이 없다. 잃을 게 없는 삶 덕에 ‘지금 여기서 후회 없이 마음 가는 대로 하자’는 도전정신이 생겼다.”

-광고 전공자가 아니던데.

“고졸이다. 당시 대학생들 보니 대학 생활의 낭만이라 해서 놀더라. 굳이 대학 가서까지 놀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원래 꿈은 소설가. 책벌레였다. 펜과 종이만 있으면 되는, 돈 안 드는 창작자란 점이 맘에 들었다. 스무 살 때 영화 하는 친구 부탁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영화는 엎어졌지만 영화판을 알게 됐다.”

제대 후 2007년 영화에 관심 있는 친구 다섯과 회사를 차렸다. 사무실은 인천 인하대 근처 옥탑방. 밤엔 가림판을 바닥에 깔고 특수효과용 그린 스크린을 이불 삼았다. 유튜브, 엠군, 판도라 TV 등 동영상 플랫폼이 우후죽순 생길 때였다. 플랫폼에 영상물을 올려 영업 창구로 삼았다. “빚더미에 올랐지만 하나는 지켰다. 돈 못 벌어도 광고주 상관없이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영상을 만든다는 것.” 이 기조는 지금도 그대로다. 신입 사원 채용 때 ‘광고주에 굴하지 않고 과업을 달성할 수 있는 자’라는 조건을 단다.

신우석 대표‘천만광고’

-광고와 연이 어떻게 닿았나.

“젊은 친구들이 열심히 해 기특하다며 주변에서 주는 기회들로 연명하다가 2015년 ‘캐논’ 광고에 참여하게 됐다.” 카메라 광고인데 주인공(최현석 셰프)이 곰에게 잡아먹히는 황당 스토리. 임원 대상 테스트 영상 틀던 날, 싸늘했다. “나중에 보니 실무 담당자가 이건 젊은이들 보는 거라면서 임원진을 설득했더라.” 금요일 밤 유튜브에 광고가 올라오자마자 바이럴 되며 대박을 터뜨렸다. “때론 콘텐츠 만드는 것보다 콘텐츠 알아보는 눈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이후 일감이 몰려 왔다. “우린 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왔는데 기존 광고 업계에선 ‘옆에서 치고 들어왔다’고 하더라. 기존엔 광고주, 대행사, 프로덕션(제작사), 포스트 프로덕션 순으로 갑을병정 관계가 있었다. 우리는 예전부터 시나리오 짜고 영상까지 찍었다. 을병정을 합친, 업계에는 완전히 없던 포지션의 회사가 생긴 거다.”

-경쟁력이 뭐라고 보나.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려 할 뿐이다.

-광고 문법은 어떻게 바꾼 건가.

“기존 문법, 업계 관행, 이해관계를 몰랐다. 오히려 대중의 눈으로 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용기 내서 ‘멍청한 선택’을 해온 것이 결과적으로 광고 문법을 바꾸는 힘이 됐다.”

-반전, 병맛 같은 서브컬처가 성공 포인트로 꼽히던데.

“그건 빙산의 일각이다. 빙산, 즉 스토리텔링 자체가 탄탄해야 일각도 도드라지는 것 아닐까.”

미디어 환경 변화도 새로운 플레이어에겐 기회였다. “TV 광고 시대엔 못해도 눙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지금은 댓글로 실시간 반응이 나온다. 보기 싫으면 광고도 스킵할 수 있는 시대다. 광고도 제대로 된 콘텐츠여야 한다.”

-이병헌·공유·송중기·유아인 등 초호화 캐스팅은 어떻게 가능한가.

“대부분 안 될 것 같다면서 시도조차 안 한다. 막상 작품 가치를 말하면 기꺼이 하는 톱스타들이 꽤 있다. 가수 태연이 게임 광고에 응해주리라곤 나도 생각 못했다.”

-크리에이티브 회사 수장의 소통 법은 어떤가.

“경영자로서 자질이 부족하다. 지금까지 쌓은 우리 색깔을 무너뜨리지 말자는 일념만 있다. 현재 들어오는 프로젝트의 20%만 소화하고 있지만 ‘몸집 안 불린다, 외부 영입 안 한다’가 원칙이다. 조감독들이 매주 가상 광고주를 대상으로 PT 하는 ‘PT 데이’가 있다. 일종의 도제 시스템이다.”

-꼰대인가.

“꼰대를 위한 꼰대 짓을 해선 안 되겠지만, 꼰대 소리 들을까 봐 행동을 못 해선 안 된다. 그게 더 꼰대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어떤 지점에 반응하는 걸까.

“하나는 확실하다. 대중은 절대 우매하지 않다는 것. 특히 2022년 한국 대중은 정말 예리하다. 댓글 보면 이건 모르겠지 하고 숨겨 놓은 유머 코드까지 다 찾더라.”

얼마 전 서울대 강의에서 말했단다. “하고 싶은 것 나타났을 때 지금 쥔 트로피를 과감히 내려놓고 자퇴하라. 인생에서 ‘겁’을 지우면 최선을 선택할 수 있다. 그걸 못해 차선, 차차선을 선택하면 후회가 쌓인다.” 그가 당장 하고 싶은 건 뭘까? “수족관에서 쇼하고 있는 돌고래를 바다에 풀어주는 것. 회사 이름 지을 때 농담 삼아 한 꿈이었는데 진짜 실현할 수 있을 만큼 벌었다. 하하!” ‘돌고래방생단’ 개봉 박두를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