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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사기, 절도, 폭행. 종합선물세트네. 이래서 내가 너희를 혐오하는거야.”

심은석 판사(김혜수)가 ‘죄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라고 싸늘하게 말한다. 그 눈빛엔 눈꼽만한 자비도 느껴지지 않는다. 전국 판사 3000여명 중 소년법원 판사는 20여명 수준. 단 20여명의 판사가 매년 3만명 이상 소년범 사건을 재판한다. 소년부 판사는 사건을 신중하게 검토해 죄에 맞는 처분을 결정하고, 처분 이후에도 소년범이 그 안에서 잘 적응하는지 법정 밖 삶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생각보다 업무 범위가 넓고 단순히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움직일 수 없는 일이다. 넷플릭스 국내 제작 오리지널 드라마 ‘소년심판’의 제작진과 배우들은 22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그동안 보여지지 않았던, 안다고 믿으며 무관심했던 소년범죄의 여러 측면을 깊숙이 보여주려 했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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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신념이 충돌하는 소년법정

소년범을 혐오하는 심은석 판사(김혜수)가 한 지방법원 소년형사합의부로 부임한다. 그의 별명은 ‘심판’. 소년범을 만나고, 소년범을 담당하는 판사들의 각기 다른 신념과 입장들이 부딪힌다. 김혜수는 자신이 연기하는 심은석 판사에 대해 “사람들이 ‘형량이 이 정도는 돼야지’하고 동의할 정도로 냉철하게 엄벌을 내린다”고 했고, 배우 김무열은 자기가 맡은 차태주 판사에 대해 “소년범을 가족처럼 동생처럼 대하며, 교화될 거라 믿고 바른 길로 이끌려 애쓰는 인물”이라고 했다. 반면 배우 이성민이 연기하는 부장판사 강원중은 “니들 그렇게 해봤자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잘못된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지 현실적으로 고민하는 베테랑”. 영화 ‘기생충’의 배우 이정은이 맡은 또 다른 부장판사 나근희는 “지연되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 생각하고, 사적인 요소는 배제한 채 쏟아지는 소년범죄의 판결 속도를 강조”하는 인물이다. 이정은은 “혜수씨와 얼굴을 마주하면 눈동자가 너무 크고 신념으로 가득차 내가 흔들릴 때가 있었다”며 웃었다. 김혜수는 “확고한 신념으로 한 순간도 물러서지 않고 대립한다. 폭발 직전의 활화산을 보는 느낌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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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뒷편, 소년범의 삶 자체가 드라마

배우 김무열은 “참관했던 소년법정 안의 굉장히 무거웠던 공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 신중함이 캐릭터 구축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판사가 들어와 착석하고 첫 마디를 떼기까지의 고요함도 무거웠어요. 범죄자인 아이는 유죄 처분이 내려지면 들어왔던 문과 다른 문을 통해 보호시설로 갑니다. 아이 인생의 갈림길처럼 보였어요. 소년법정에서 내리는 판사의 결정이 과연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인가 싶을 만큼 비현실적으로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예민한 소재인 만큼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큰 과제였다. 김민석 작가는 “아이들 혹은 피해자 입장에 몰입하지 않았나, 가해자 입장에서 변론하고 있지 않나 경계하면서 썼다”며 “소년법원 판사들은 단순히 처분을 내릴 뿐 아니라 법정 밖 아이들의 삶에도 관여하는 점이 인상깊었다. 그 자체로 드라마였다”고 했다. 홍종찬 감독은 “범죄와 폭력성 등이 부각되는 걸 지양했다. 연출자는 배우와 호흡을 맞추며 깊이 빠져들 수 밖에 없으니, 너무 세게 가는 건 아닌지 작가와 계속 소통하면서 균형을 잡으려 했다”고 말했다. “얽힌 실타래를 푸는 것 같은 작업이었어요. 깊숙이 들어가야 했고요. 소년을 둘러싼 가족과 가정, 사회, 우리 사회가 움직이는 시스템의 근본적 부분까지 들여다보려 했습니다.” 김 작가는 “누군가는 이 드라마를 범죄물이나 법정물로 분류하겠지만, 난 가족극이라 생각하고 접근했다”고 했다. “소년범죄 한 건이 터지면 얼마나 큰 파장이 이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 받는지에 집중했어요.”

22일 제작발표회를 연 넷플릭스 국내 제작 오리지널 드라마 '소년심판'의 배우, 제작진. 왼쪽부터 김무열(차태주 판사 역), 김혜수(심은석 판사 역), 홍종찬 연출, 김민석 작가, 이정은(나근희 부장판사 역), 이성민(강원중 부장판사 역). /넷플릭스

◇”강력범은 1%뿐… “정말 아이들만의 문제일까”

배우 김혜수는 “소년법원 판사들을 실제 만나면서 소년범죄 중 강력 범죄는 1% 정도라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보통 사회면 뉴스를 통해 소년범의 강력범죄만 접하고, 그게 다라고 생각하잖아요. 갈수록 지능적이고 충격적이어서 더 부각되고…. 하지만 그런 강력범죄는 1% 뿐이라면, 나머지 99%는 어떻게 해야 하죠?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배우 이성민도 “이 문제가 과연 아이들만의 문제일까 끊임없이 생각했다”고 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미성년자 아이들의 죄가 순전히 아이들만의 책임일까요. 그렇다면 누구의 문제일까요. 어른으로서, 또 우리 사회는 어떤 책임감을 가져야 할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촬영했습니다.”

소년범을 연기한 배우들은 대부분 오디션으로 뽑힌 신인 혹은 신인급이다. 홍 감독은 “연기가 거의 처음인 친구들과 좀 더 자유롭게 날 것 그대로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고 했다. “소년법정 참관 때 보니 아이들의 말투나 입은 옷, 손짓과 몸짓 등 개성이 다들 너무 달랐어요. 재판이 진행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이 살아온 삶과 보호자와의 관계 등에 대해 많은 상상을 하게 됐고요. 그 수많은 색깔을 어떻게 연출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배우들을 뽑았죠.”

드라마 ‘소년심판’은 25일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