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좀비물 ‘지금 우리 학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좀비물 ‘지금 우리 학교는’(이하 ‘지우학’)이 6일까지 넷플릭스 시리즈 글로벌 1위(플릭스패트롤 기준)를 9일째 질주하고 있다. 총 12화, 상영 시간은 12시간이 넘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하려면 식음을 전폐하고 봐도 꼬박 한나절인 분량. 회사원 김경수(35)씨는 넷플릭스를 구독 중인데도, ‘지우학’을 53분짜리 유튜브 요약본으로 봤다. 그는 “처음엔 ‘정주행’을 시도했지만 지지부진한 이야기 흐름을 못 이겨 중도 포기했다”고 했다. 그가 본 요약 영상은 7일 오후 2시 현재 조회 수 461만회를 기록 중이다. OTT 플랫폼마다 영상 콘텐츠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 안 보면 대화에서 소외될 것 같지만 전부 다 보기엔 너무 길다 싶을 때 요즘 젊은 세대는 유튜브 요약 영상을 찾는다. 화제작일수록 요약 영상들도 인기다<그래픽>.

◇'정주행’ 대신 ‘요약 주행’

“‘지옥’이 유행이라니 트렌드는 놓치지 말아야겠는데 긴 시간을 투자하긴 어려웠어요.” 대기업 직장인 최선아(32)씨는 총 6화, 5시간짜리인 ‘지옥’을 41분짜리 영상으로 ‘요약 주행’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옥’은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로는 처음으로 작년 11월 첫 공개 직후부터 넷플릭스 글로벌 1위를 차지했던 드라마다. ‘쇼트폼(short-form)’ 동영상에 익숙한 젊은 세대 특성에다, ‘FOMO(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증후군’으로까지 불리는 유행 민감성도 ‘요약 주행’ 인기에 한몫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김하경

우후죽순 만들어지는 ‘오리지널 콘텐츠’의 품질이 시청자들 눈높이를 만족시킬 만큼 고르지 않아 작품 인기와 따로 가는 것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물리학 전공 대학생 문모(27)씨는 지난해 말 넷플릭스 히트작이었던 SF 시리즈 ‘고요의 바다’를 55분짜리 요약본으로 봤다. 그는 “명색이 SF인데, 불시착 위기의 우주선 안에서 헬멧도 안 쓰는 걸 보고 있자니 도저히 몰입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극적 긴박감이나 메시지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드라마의 설정상 ‘구멍’을 못 참는 까다로운 시청자들에게도 ‘요약 주행’은 좋은 탈출구다. 기복이 심한 콘텐츠 품질과 관련, 창작자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해주는 대신 관리 자체는 느슨한 넷플릭스의 제작 관행을 지적하기도 한다. 창작자와의 궁합이 잘 맞아떨어지면 ‘오징어 게임’ 같은 히트작이 나오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화제작은 요약 영상도 덩달아 인기

화제작일수록 요약 영상의 수요도 크고, 전문 유튜버들이 앞다퉈 요약본을 내놓는다. ‘디즈니+’가 내놓은 ‘완다비전’은 총 9화, 6시간 분량이지만, 27분으로 요약한 영상이 조회 수 221만회를 기록 중이다. OTT 오리지널 영화도 화제작은 요약 영상 조회 수도 함께 증가한다. 2시간 28분짜리 ‘돈룩업’을 23분으로 요약한 영상은 161만명이 봤다. 이 영화는 이번 주에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긴 시청 시간(지난주까지 3억6000만 시간) 기록을 세울 것이 확실시되고, 각종 영화제에도 단골 수상 후보로 오르는 좋은 작품이지만, 일부 시청자는 2시간 반 넘는 영화를 ‘요약 주행’ 하고 싶은 유혹을 피해가지 못했다.

‘요약 주행’의 유행에 대해서는 “우려”와 “새 기회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엇갈린다. 독립 영화 제작자인 임철희 전 ROI필름 대표는 “유튜브로 요약본을 본다는 것은 시나리오 대신 시놉시스만 읽는 격”이라며 “관객들이 콘텐츠를 진심으로 향유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반면 고려대 김형민 교수(미디어학부)는 “콘텐츠 홍수 시대에 ‘요약 주행’은 젊은 세대 입장에선 합리적인 소비 형태”라며 “창작자 입장에선 ‘스낵 컬처’라는 관점에서 짧고 핵심만 담는 영상물이라는 트렌드를 활용해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도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